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49_ 팔레스타인에 다시 갈 거냐구요?

순돌이 아빠^.^ 2010. 4. 4. 13:49

 

(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49_ 팔레스타인에 다시 갈 거냐구요?

 

한국에 와서 인터넷으로 와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살람알레이쿰’ ‘알레이쿰살람’이 오가며 반갑게 서로를 확인 했습니다. 통화 음질이 좋아도 문제인 것이 마치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고 버스를 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오래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전화라서 요금이야 얼마 나오지 않으니 돈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있을 때는 서로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느낄 수 있으니 영어와 아랍어가 짧아도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직 말로만 해야 하니 길게 통화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말이 몇 마디 안 되더라구요. 그제야 우린 팔레스타인과 한국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이 실감 되었습니다.

 

눈위에 쓴 안녕 와엘

  

추석도 함께 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뵈러 부산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이합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이합은 지금까지 살면서 바다에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했습니다. 데이르 알 고쏜에서 보면 저 너머 보이는 곳이 텔아비브이고, 텔아비브가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인데도 20년 가까이 살면서 바다라고는 안 가 본 거지요.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갈 수 없으니깐 눈앞에 두고도 못 가는 겁니다.

 

저는 이합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어서 이합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갈 수는 있었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습니다. 데이르 알 고쏜에서 텔아비브로 가는 가까운 길을 두고 툴카렘-라말라-예루살렘을 돌아 텔아비브로 갔으니 말입니다. 이합이 언젠가 꼭 팔레스타인의 서쪽, 지중해 푸른 바다에 손을 담글 수 있는 날이 오길 빕니다. 혹시라도 한국에 오게 되면 해운대와 태종대도 보여 주고 싶구요.

 

 

이합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아마도 아랍어로 글을 써서 번역기를 통해 영어로 바꿔서 보냈나 봅니다. 저희가 떠난 뒤에 데이르 알 고쏜에서 고립 장벽에 반대하는 집회가 있었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사람을 끌고 갔다며 사진도 함께 보내 왔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인터넷 검색도 해 봤습니다. 와엘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주고 올 걸 그랬나 싶었습니다.

 

새로 태어난 알라의 아기

 

참, 예루살렘의 알라한테서도 이메일이 왔었어요. 새로운 아기가 태어났다구요.

 

하루는 눈이 많이 왔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눈 구경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일부러 사진기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산도 찍고 나무도 찍고 길도 찍었지요. 눈 위에 보고 싶은 친구들 이름 하나 하나를 적어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찍은 사진은 팔레스타인으로 보냈지요.

 

암요 다시 가야지요

 

팔레스타인 갔다 오니 몇몇 사람이 또 언제 외국 나갈 거냐고 묻습니다. 아직은 비행기를 탈 계획이 없습니다. 몇 달 만에 한국에 왔는데 벌써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을 리 없지요.

 

그럼 언젠가 팔레스타인에 다시 갈 거냐구요? 암요. 당연하지요. 그동안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갔다면 다음번은 다른 것을 다 떠나서도 사람들 보고 싶어서 갈 거에요.

 

위즈단과 니달은 결혼해서 잘 사는지, 와엘은 좀 더 건강해졌는지, 마흐무드는 새 애인이 생겼는지, 슈룩은 그 큰 목소리 여전한지, 아부 마흐무드의 허리는 좀 괜찮은지, 아셈의 대학은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세 꼬마 자매는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가야지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나부끼는 팔레스타인 깃발 

 

얼마 전에 깜짝 놀란 일이 있었어요. 교보문고에서 친구를 기다리느라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다가와서 말을 거시려고 하더라구요. 순간 제가 아는 분인가 했더니 모르는 분인 것 같아 그 분이 사람을 잘못 보셨나 보다 했어요.

 

그런데 ‘저기 혹시 팔레스타인 활동하시는 미니씨 아니세요?’ 하시는 거에요. 제가 깜짝 놀란 이유는 그 때 제가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도 저를 알아보신 거에요. 그분은 저를 아는데 저는 그 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죄송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더라구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그 분이 한국에서 팔레스타인과 관련해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건데 어떻게 했냐고 그러시더라구요. 보통 시민들은 물론 사회운동 안에서도 팔레스타인은 낯선 주제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시라는 거지요.

 

드물지 않게 받는 질문입니다. 다른 일도 많은데 왜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 이런 일을 하는 게 어렵지 않았느냐 등등입니다. 여러분도 제게 팔레스타인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시다구요?

 

제게 팔레스타인

 

먼저 팔레스타인은 제게 세상을 보여 줬습니다. 그동안 한국 밖에 모르던 저에게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해야 하고 알아야 할 문제가 또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줬지요. 그동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구요.

 

팔레스타인, 전쟁, 점령 이런 말들에 관심을 갖게 되니깐 중동,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미국 이런 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구요. 저도 제 인생에 그럴 일이 있을 줄 몰랐는데 이라크니 아프가니스탄이니 레바논이니 하는 말들이 담긴 책도 읽게 되었고 관련된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구요.

 

이렇게 세상을 보니 정말 세상의 많은 것들이 서로 얽히고 섥혀서 돌아가더라구요. 미국은 석유가 많은 중동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이스라엘은 미국에 시비를 거는 것들이 있으면 레바논이든 시리아든 이집트든 어디서든 전쟁을 벌이지요.

 

이렇게 국제사회와 전쟁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그동안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던 6․25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6․25가 남북한뿐만 아니라 당시 국제 정세에서도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구요.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와 한국의 광주항쟁에 대해 함께 알아보고 싶구요.

 

두 번째는 팔레스타인이 제게 할 일을 주었습니다. 이번에 팔레스타인 가서 다시 느낀 것은 눈앞에 펼쳐지는 많은 일들에 대해 대강은 알겠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더라구요.

 

팔레스타인과 한국을 이으며 서로의 자유와 평화를 빌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희미하던 것을 조금 더 뚜렷하게 알아야 싶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팔레스타인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저도 생각할 수 있고, 한국 사람들한테도 이러저러 해서 우리가 팔레스타인과 함께 하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니깐요.

 

예전에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강연을 가게 되었어요. 제 강연을 들으셨던 한 선생님이 자기 학생들한테도 얘기를 해 주면 좋겠다고 해서 가게 된 거지요. 처음에는 한 반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6학년 전 학년을 대상으로 방송 수업을 하는 거에요.

 

강연 마치고 제 쿠피예를 둘러쓴 초딩

 

가기 전부터 걱정이었어요. 초딩은 처이었거든요. 과연 초등들과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면 어디 있는지 알기나 할지 싶었어요. 게다가 마주보고 하는 것도 아니고 각반 2명만 저와 함께 방송을 하고 나머지는 교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으니 약간 남감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동안 여러 번 여기저기서 강연을 한 것 가운데 그날 강연이 저에게 가장 감동이었어요. 두루마리 휴지에 물이 스미듯 아이들의 마음에 다른 이의 아픔이 스며든다는 게 느껴지더라구요. 팔레스타인인들이 내게 말했던 것, 내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거라는 생각이 다시 들더라구요. 나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 말입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이 제게 사람을 보여 줬습니다. 그저 뉴스 기사 속에 한 줄로 지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아파하고, 꿈을 꾸고, 울고 웃는 사람의 모습을 제게 보여 줬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냐구요?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저도 익숙해지기도 하고 둔감해 지기도 했던 가 봐요.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조금씩 무뎌졌었거든요.

눈위에 쓴 팔레스타인 해방 

 

그럼 지금은 많이 달라졌냐구요? 아니요. 예전과 크게 다르진 않아요. 다만 앞으로 제가 팔레스타인에서 보고 느낀 것처럼 한국에서 살면서도 가난하다고 여자라고 장애인이라고 어린이라고 업신여김 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사람 있으면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더 생각하려고 노력하려구요. 많이 빠르게는 아니어도 조금씩 천천히 깊이 있게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와 팔레스타인이 인연을 맺은 건 신문에 난 사진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진이 저를 팔레스타인으로 이끌었고 지난 몇 년간 잘 했든 잘 못 했든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일을 하게 만들었네요. 사랑이 갑자기 찾아오듯이 인연이라는 것도 그렇게 갑자기 찾아와 제 곁에 머무는 가 봐요.

 

사람이란 게 좋은 것을 먹고 나면 남에게도 한 번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인류애니 국제평화니 뭐 이런 거 다 떠나서 제가 팔레스타인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어요. 제가 좋았던 만큼 여러분에게도 이 벅찬 느낌을 전하고 싶네요.

 

어때요? 멀리서 망설이지만 마시고 ‘팔레스타인’이라는 다섯 글자에 다가와 보실래요?

 

 

 

선물. 부재중 통화의 의미를 아세요?

 

한국도 그렇듯이 팔레스타인도 정말 많은 사람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핸드폰으로 무언가 하는 일이 많은 거지요. 한번은 마흐무드가 전화를 걸어서 소리를 한 번 울리고 말고, 한 번 울리고 마는 거에요. 처음엔 얘가 왜 이러나 싶었어요. 장난인가도 싶었구요.

 

한국에서 제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받지 않으면 그 사람 핸드폰에 부재중 연결이 표시되잖아요.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에요. 핸드폰을 영어로 맞춰 놓으면 missed call이라고 뜨지요. 영어로 ‘i miss you'하면 ’내 니 보고 잡다‘가 되잖아요. 부재중 통화는 돈이 안 드니깐 공짜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구요.

 

한국에 있는데 문득 문득 핸드폰 소리가 한 번만 울리고 끊겨요. 마흐무드가 부재중 통화로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