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팔레스타인 갔던 이야기를 늦게나마 쓰기도 하고 고치고도 있는 글)
팔레스타인, 내 가슴에 물든
45_예수가 지난 자리 그곳에 평화가
오랜만에 예루살렘을 찾았고 오랜만에 반갑게 알라를 만났습니다. 늘 시끄럽지만 요즘 한창 예루살렘이 시끄러웠습니다.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알 아크사 사원에 유대인들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몰려 들어갔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알 아크사 사원 지역을 잘라서 유대인 구역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헤브론을 점령한 뒤에 아브라힘 사원를 반으로 잘라서 유대인 구역을 만들었듯이 말입니다.
예루살렘을 가로지르고 있는 장벽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듯 알 아크사를 둘러보는 것이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만, 유대인들의 공격적인 태도 앞에 무슬림들은 긴장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는 알 아크사를 지키자는 호소가 이어졌고, 예루살렘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지역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이 알 아크사로 몰려가서 진을 쳤습니다. 어떻게든 유대인들의 공격을 막아보자는 거지요.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서는 돌과 최루탄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알라는 한창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곳곳의 교통이 모두 통제 돼서 10분이면 가던 길을 1시간씩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라디오가 소중하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라디오를 틀어놔야 오늘은 어느 길이 막혔고 어느 길이 열려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알 아크사의 사례가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사건이라면 이와 달리 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강력한 힘이 예루살렘을 떠돌고 있습니다. ‘조용한 추방’ 정책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살 수 없도록 해서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만들자는 거지요. 48년이나 67년처럼 지금이 전쟁 시기면 과거에 그랬듯이 대규모로 무작정 쫓아낼 수 있겠지만 지금 그렇게 하면 세상이 시끄러울 것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는 거지요.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뉘고,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유대인과 아랍인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67년 점령 이후 이스라엘은 이곳을 예루살렘이라는 하나의 행정단위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은 2등 또는 쫓아내야 할 시민이 되었지요.
3년 이상 외국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나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시청이 전체 세금의 32%를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동예루살렘에서 걷으면서도 예산 집행은 전체 액수의 3% 밖에 하지 않아 생활의 불편함은 계속 되고 있지요. 심지어는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은 쓰레기도 제대로 치우지 않아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짓지 않아서 교실의 인구 밀도는 점점 높아져 가고 있구요. 공립학교가 점점 좁아지면 사립학교에 가야 하는데 사립학교는 등록금이 비싸지요. 가족들이 늘어나면 집을 더 지어야 하는데 건축 허가를 내 주지 않습니다. 허가 없이 집을 지으면 불도저를 가져와 때려 부수구요.
직접 사람들을 쫓아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지난 8월 어느 날 새벽 5시, 이스라엘 군인들이 살림 하눈 씨의 집으로 몰려 와서 망치를 들고 문과 유리창을 깨고 가재도구를 밖으로 끄집어냈습니다. 물론 살림 씨의 가족은 모두 쫓겨 났구요. 지금은 유대인 점령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65세의 살림 하눈 씨는 70여일이 넘게 빼앗긴 집 건너편 도로에서 생활을 하고 있구요.
집을 빼앗기고 길거리 생활을 하고 있는 살림 씨
살림 씨의 집을 빼앗은 유대인이 짐을 옮기고 있는 모습
살림 하눈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점령민들이 차에다 살림살이를 싣고 와서 집안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으니깐 한 사람은 웃으면서 제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한 순간이었지만 그들에게서 인간으로써의 감정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의 땅에 기생하는 바퀴벌레이니 쫓아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거니깐요.
나세르 가위 씨 가족도 8월에 쫓겨났습니다. 지금은 20~25명 가령의 유대인 점령민들이 나세르 씨 가족의 집을 차지한 채 살고 있습니다. 집안에는 무장한 경호업체 직원이 집을 지키고 있구요. 쫓겨나는 과정은 살림 하눈 씨와 비슷합니다.
유대인에게 집을 빼앗긴 나세르 씨와 그의 가족
나세르 씨 가족의 거리 주방
나세르 씨의 가족도 70여 일 동안 빼앗긴 집 바로 건너편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습니다. 점령민들은 집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쫓겨난 이들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고 작정하고 싸움을 걸기도 하구요.
여러분이 동예루살렘을 여행하게 되신다면 유대인식의 검은 모자를 쓰고 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 한 번 보세요. 아마 대부분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빼앗은 걸 거에요.
법적인 투쟁을 할 수는 없냐구요? 물론 팔레스타인인 가운데는 부당한 일을 당해서 소송을 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변호사 비용부터 해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소송을 건다고 해도 이길 확률이 아주 낮기 때문에 없는 돈만 날리는 신세가 되기 일수입니다.
이곳에도 평화가
혹시 여러분 가운데 기독교인이 있어서 성지순례를 오시거든 예수가 죽어간 곳에서 지금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둘러보시면 어떨까요? 기쁨에 찬 표정으로 무리지어 찬송가를 부르며 다니는 기독교인도 많지만 예루살렘에 왔다는 기쁨은 잠깐 접어 두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슬픔에 대해 귀를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게 혹시 예수의 가르침은 아닐까요?
많은 분들이 예루살렘 하면 성으로 둘러싸인, 예수가 십자가를 매고 걸어갔던 올드시티 정도를 생각하는데 올드시티는 예루살렘의 한 부분이고 그 보다 훨씬 큰 지역이 이스라엘 점령 정책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스운(?) 얘기 하나로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인과 교통사고를 일으키면 ‘테러’가 되고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인과 교통사고를 일으키면 ‘단순사고’가 되지요. 테러범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교통사고에 유의해야 합니다.
알라의 가족 일부는 지금 예루살렘 안을 지나는 장벽 너머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길을 따라 금방 가족들을 만나러 갔지만 이제는 빙글빙글 돌아 한참 차를 달린 뒤에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장벽을 쌓으면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을 분리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보면 팔레스타인인과 팔레스타인인을 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라가 일이 있어서 잠깐 어디를 간 사이에 저 혼자서 예루살렘의 올드시티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오늘은 알라의 이모 집에서 자기로 했거든요. 고모 네 부부가 지금은 라말라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집이 비어 있으니깐 언제든지 와서 집을 써도 된다고 해서요.
시장과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 곳을 조금 벗어나 정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오래된 건물과 길들 사이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알 아크사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 봤습니다. 비정치적(?) 감성의 시간도 잠시,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어디를 가나 군인들이 또아리를 틀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군사기지도 아니고 도로도 아니고 사람이 살고 있는 곳곳에 초소를 설치하고 군인들이 무리지어 지키고 서 있으니 이래서야 어디 사람 숨 막혀 살겠습니까.
군인들이 지난 자리 조용한 불빛만
수많은 사람과 군인들을 피해 또 조용한 길을 찾아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몰려옵니다. 수십 명의 군인들이 어깨에 총을 메고 요란스럽게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도 잠시, 군인들이 지나고 나니 올드시티 뒷골목의 밤은 다시 조용한 불빛 속에 잠겼습니다.
군홧발 소리가 지나고 다시 조용한 삶의 시간이 찾아오듯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언젠가 이들에게 조용하고 깊은 평화가 함께 하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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