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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 장가나Haifa Zangana의 [남편 잃은 이들의 도시City of Widows]

순돌이 아빠^.^ 2010. 4. 18. 13:52

 

올해는 한반도에서 큰 전쟁이 있었던 해로부터 60년이 지나는 때입니다. 환갑이 되는 셈이지요. 한 삶이 오고가는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그 큰일을 겪고서도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전쟁으로, 전쟁 준비로 이익을 보는 자들이 이 사회를 쥐락펴락하기 때문이겠지요. 전쟁의 참혹함마저 잊고 사는 것은 물론이요 6․25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틈만 나면 북한과 한판 붙자는 식으로 나오거나 난리통에 빠져 있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고 그러는 거지요. 나에게 이익만 되면 전쟁이든 뭐든 나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전쟁 좋아하는 자들만 골라 어디 세상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무인도에 보내서 저들 좋아하는 전쟁 실컷 하면서 살라고 하고 싶습니다. 

 

해방군과 점령군

 

6․25와 이라크를 생각해 보면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 자기 이익을 위해 똘마니 쯤 되는 국가들을 데리고 전쟁을 벌였지요. 미국은 한반도와 이라크에서 자신을 해방군이라고 했습니다. 해방군이라며 들어온 미군은 닥치는 대로 폭탄을 퍼붓고, 아무나 쓸어 모아 죽이고, 여성들을 강간하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사람들을 끌어다 감옥에 가두고 고문 했지요. 미국에 협력하는 자들은 협력의 대가로 부와 권력을 쥐게 되었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들. 사진_셀림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60년 전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했던 일과 같은 짓을 2003년부터는 이라크에서 했다는 겁니다. 달라진 것은 한반도로 몰려 올 때는 북한과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구해주겠다고 했고 이라크로 몰려갈 때는 사담 후세인과 테러리즘으로부터 구해주겠다고 했지요. 이라크에서는 특히 여성들을 구원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비르는 마흐무디야 지역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14살 소녀였습니다...한 이웃 사람은 ‘아비르의 부모가 아비르에게 치안 상황이 좋지 않으니 더 이상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아비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청소를 하며 지냈고 정원에 있을 때면 미군들이 그를 자주 봤습니다. 아비르는 예뻤고, 제 아내의 얘기로는 미군들이 계속 그녀를 지켜봤다고 합니다. 제가 아비르의 아버지에게 이 얘기를 했지만, 그는 아비르는 아직 어린애라며 걱정 없다고 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미군들은 집에 남자라고는 아버지 밖에 없으니 쉽게 아비르를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 117~119쪽

 

2006년 3월12일, 미군들은 그의 집으로 쳐들어 가족들을 죽이고 아비르를 강간한 뒤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습니다. 이런 일이 숱하게 벌어져도 미국은 언제나 사건을 은폐합니다. 그러다 이런 일들이 세상에 알려지면 마지못해 시인을 하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우발적인 사고니 해당 군인의 심리 상태가 어떠니 합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미국의 점령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이라크인들. 사진_셀림

 

미군의 태도는 조선을 점령했던 일본군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범죄는 우발적인 사건도, 병사 개인들의 이상한 심리 상태도 아닌 지배자이자 점령군으로써 점령당한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인 폭력과 학대입니다. 성 범죄의 성격상 피해자가 범죄 사실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동안 이라크에서는 얼마나 많은 아비르가 있었겠습니까. 이 책의 맨 앞, 첫 마디를 ‘아비르를 기억하며’로 시작하는 것도 이라크 여성들을 해방 시키겠다고 했지만 현실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온갖 범죄를 저질렀던 미국 때문이겠지요.

 

이라크 여성으로써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 했던 저자가 ‘식민주의 페미니스트(colonial feminist)'라며 다른 여성과 여성단체를 욕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겁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도 그랬듯이 2003년 침공 전에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할 명분으로 여성해방을 내세웠습니다. 여기에 일부 이라크, 미국, 영국 여성들이 적극 나섰습니다.

 

쉽게 말해 미국이 미국 NGO들에게 돈을 주면, 그 NGO들은 이라크 여성과 여성단체에 돈을 주며 키웠죠. 그러면 이라크 여성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잔혹함에 대해서 증언했고, 미국은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억압 받는 이라크 여성들을 구출하러 가자! 나를 따르라!!!’를 외쳤죠.

 

그렇게 해서 시작한 전쟁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여기저기서 여성들은 폭탄에 맞고 총에 맞고 죽었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온갖 두려움 때문에 집 밖을 나서기도 어려워졌고 어려운 살림살이는 언제 펴질지 알 수 없었죠.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니 전쟁 시작 이후 성매매가 늘어났지요. 까닭도 모른 채 아부 그라이브와 같은 감옥으로 끌려가 온갖 성적․육체적․정신적 학대와 고문을 받았습니다. 이게 여성 해방입니까?

 

놀라운 것(?) 가운데 하나는 한국의 일부, 그 가운데서도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미국식 식민주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라크 여성들은 늘 울고 두려워하고 침묵하는 존재이고, 자신들이 구원의 손길이 되겠다는 거지요. 물론 구원의 손길이 되겠다는 생각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이라크, 이라크인, 이라크 여성

 

작가가 이 책에서 이라크의 역사와 전쟁, 저항에 대해 얘기하면서 강조했던 것 또한 이라크 여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겠다는 겁니다. 20세기 초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이라크인과 이라크 여성들은 조직을 만들고 사람들을 교육하면서 자유와 해방을 위해 싸웠습니다. 아랍과 이라크 하면 이슬람만 떠올리기 쉽지만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 많은 아랍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좌파 운동이 활발했습니다.

 

이라크전쟁 석유전쟁_그림_라투프

 

1958년 7월14일, 이라크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정부를 뒤엎고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한국에서는 군인들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면 박정희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집트의 사례가 그렇듯이 군인이라고 해서 우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58년 혁명은 이라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육․의료․주택 등 사회복지와 시민들의 자유는 확대되었지요. 영국의 손아귀에 있던 석유에 대한 국유화가 시작되었지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가 활짝 피었습니다.

 

하지만 이 꼬라지를 미국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겠지요. 몇 년 전에 이라크 옆에 있는 이란에서 모사데크 정권이 들어서고 석유를 국유화하자 이란 군인들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경험이 있는 미국이지요. 이라크에서는 바아쓰 당이 정권을 뒤엎고 권력을 잡습니다. 이 권력은 나중에 사담 후세인의 손에 들어가게 되구요.

 

사담 후세인이 권력을 잡은 뒤 1980~1988년까지는 이란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회가 망가졌지요. 1990년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과 영국은 곧바로 이라크를 두들겨 부수며 경제봉쇄에 들어갔습니다. 계속되는 폭격도 문제지만 13년 동안 계속된 경제봉쇄, 즉 이라크가 외부와 수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결과는 이라크인들을 고통에 빠뜨렸지요. 2003년부터는 또 다시 이라크로 쳐들어갔구요.

 

침공이 시작되고 미국이 이라크 정부를 장악하자 이라크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항했습니다. '이라크 민족 기초 회의INFC(Iraqi National Foundation Congress)‘와 같은 연합 조직을 만들어 집회를 열고 점령을 중단하라고 하고 정부에 수감자 석방을 요구했지요.

 

공무원들은 일부러 제대로 일을 안 했고, 예술가들은 조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지요. 블로거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고 보고 있는 것들을 그 때 그 때 인터넷에 올려 세상에 알렸습니다. 온갖 언론들이 미국 정부의 발표를 베껴 쓰고, 미국과 꼭두각시 이라크 정부가 언론인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감옥에 가두는 동안 말입니다.

 

여러차례 미군과 큰 전투를 벌였던 마흐디 군. 사진_셀림

 

이라크인들은 무장 투쟁도 열심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시장 같은 곳에서 폭탄을 터뜨리며 이라크인이 이라크인을 죽이는 것을 열심히 보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력 공격의 75% 가량이 점령군을 향한 것이었고 17%정도가 이라크 정부군, 8%정도가 불특정 이라크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정당, 사회단체, 개인들이 집회를 열고 교육을 하고 잡지를 만들고 시를 썼습니다. 점령 중단과 인권 보장을 요구한 거지요. ‘이라크 여성의 의지IWW(Iraqi Women's Will)'와 같은 단체가 그 사례입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성은 폭탄을 들고 점령군을 향해 달려가기도 합니다.

 

오랜 전쟁과 독재 정권의 영향으로 많은 이들이 이라크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은 외국에서 ‘점령에 저항하는 이라크 민주주의자들IDAO(Iraqi Democrats Against Occupation', '민족 언론과 문화를 위한 이라크인 위원회ICNMC(the Iraqi Committee for National Media and Culture), 이라크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연대SIUI(Solidarity for an Independent and Unified Iraq) 등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구요.

 

다시 이라크

 

2003년 2차 침공부터 시작하면 8년째이고, 1991년 1차 침공 때부터 생각하면 20여년 가까이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전쟁과 봉쇄, 점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 이미 끝난 거 아니냐구요?’ 지난 몇 년 한창 이라크를 두들겨 부술 때에 비하면 폭격과 총격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끝난 걸까요?

 

여전히 미군은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고, 그들은 이라크인들에 대한 어떤 사과나 보상, 진상규명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부시와 블레어와 같은 전쟁범죄자들은 버젓이 고개를 들고 세상을 활보하고 있구요. 설사 외부인들이 이라크를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진실과 정의를 향한 이라크인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이파 장가나Haifa Zangana의 [남편 잃은 이들의 도시City of Widows - 전쟁과 저항에 관한 한 이라크 여성의 기록An Iraqi Woman's Account of War and Resistance]는 이라크의 남성과 여성들이 지난 1백 여 년 동안 전쟁과 독재 때문에 어떻게 고통 받아 왔고, 또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 왔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지난 1백여 년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 살아갈 역사의 뿌리가 될 거구요. 

 

책을 덮으며  감동 때문에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모르고 지냈다고도 싶고, 이래서 역사를 알아야 하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라크와 이라크 여성의 역사와 저항에 대해서 아시고 싶으신 분들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면 저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화운동을 한다면서 평화라는 것을 곱게 잘 차려진 밥상 위에 놓인 우아한 꽃 정도로 여기는 분들에게, 어디에서 어떻게 평화의 꽃이 피어나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마르고 차가운 땅을 뚫고 새순이 돋듯 피터지고 울부짓는 인간의 삶 속에서 평화의 꽃은 피어나겠지요. 비바람 없는 따뜻한 온실 속이 아닌.

 

제목만 알려 줘도 될 것을 굳이 책을 제본해서 영국에서 우편으로 보내준 아그네스에게는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땀 흘리고 싸우고 있는 이라크인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요르단에서 만났던 이라크 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