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노동자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고, 많은 학생들은 세상에 존재할 의미가 없는 것처럼 꿈이 없는 공간에서 돈을 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강바닥을 파 헤집는다고 황금이 나올 리 없는데 이상하게도 건설 회사들은 포크레인으로 물과 땅을 헤집는 것만으로도 황금을 얻습니다. 미국의 전투기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집과 도로를 때려 부순다고 보석이 쏟아질리 없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부수면서 주머니가 두둑해집니다.
참 요상한 세상입니다.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고, 있지도 않는 곳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니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열도 받고 대안도 얻고 싶어 합니다. 도대체 이놈의 세상이 왜 이러냐며 분노합니다.
그런데 이 대안이란 것이 묘한 것이어서 혼자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자본가가 노동자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대안이란 것도 언제나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살아갑니다. 문제가 없으면 대안도 없는 거지요. 사랑이란 것이 ‘00에 대한 사랑’이듯이 대안도 ‘00에 대한 대안’인 셈이지요.
이걸 달리 말하면 대안을 얻고 싶으면 바로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가 무언지도 모르고 섣불리 대안만 찾아봐야 빈 그릇에 숟가락질입니다.
자본주의를 바꿔야 된다 또는 바꾸고 싶다는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실수는 자신이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데 내가 자본주의에 대해 모를 리가 있나 싶은 거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나열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사회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노동자를 착취하고, 학생들을 기계로 만들고, 언론을 영혼 없는 주둥이로 만드는 이유와 그렇게 되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무엇’과 함께 ‘왜’를 알아야 ‘어떻게’가 나오는 거니깐요.
열심히 공부하세~
자본주의 사회를 놓고 그 ‘왜’를 알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공부는 학자들이나 하고 시간 남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참된 모습을 바라봄으로써 삶의 방향을 찾으려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칼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은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될 책이기도 하고 ‘우선은’ 별 도움이 안 될 책이기도 합니다.
큰 도움이 될 책이기도 하다는 것은 도대체 자본이란 무엇이고, 그 놈의 것 속에는 어떤 것들이 어떻게 치고 박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돈을 받고 자본가와 교환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이 단순한 한 마디가 안겨주는 세계관의 큰 변화는 ‘아이고 맑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도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물론 맑스만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맑스가 그 말의 의미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대상화된 노동과 살아있는 노동,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잉여가치와 이윤 등의 구분과 이것들의 의미를 말해 줄 때는 ‘아하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우선은’ 별 도움이 안 될 책이라는 것은 앞의 말들이 낯선 분들에게는 이 말들이 사람의 말인 것은 같은데 당최 뭔 소리하는가 싶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론]의 바탕이 되었다는 [요강]은 [자본론]에 비해서 더 말이 어렵고 전체 글의 체계도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 몸에 좋은 음식인데 먹기가 어려운 셈이지요.
참, ‘요강’이 무슨 말이냐구요? 할머니 집에서 밤마다 쓰던 요강은 아니구요, 기본이나 기초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싶습니다. 아니면 ‘따라잡기’ ‘길라잡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구요. 혹시 어떤 분이 정치경제학이나 맑스주의 얘기하면서 ‘그룬트리쎄’라는 이상한 말을 쓰면 이 책을 말한다고 생각하시면 되지 싶습니다. 이 책의 독일말 제목이 ‘그룬트리쎄(이 책에서 말하는 요강)’라는 말로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우짜자고?
이래저래 좋다 치고 그러면 맑스는 자본주의를 분석만하고 대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했냐구요? 이 책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책이지 새로운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는 책은 아닙니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이 없듯 한 권의 책에서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여기저기서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슬쩍슬쩍 비춥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적인 형태 자체는 소멸하는 것이며, 그 자신의 지양의 현실적인 조건들을 생산한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즉, 그것의 경향과 가능성에 따른 생산력 - 부 일체 -의 토대로서의 일반적인 발전, 아울러 교류의 보편성, 따라서 토대로서의 세계 시장...생각되거나 상상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현실적이고 관념적인 관계들의 보편성으로서의 개인의 보편성. - 칼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Ⅱ], 백의, 178쪽
그나마 쉬운 구절이라고 생각해서 옮겼는데, 옮겨 놓고 보니 이 또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네요.
얼마 전에 아이폰이란 것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참 신기하더라구요. 미국의 한 회사에서 만든 기계가 금세 세계로 퍼져 나가고, 한 개인이 만든 버스 도착 안내 프로그램이 아이폰을 통해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더라구요. 아이폰이 인기를 누리자 각 기업들이 아이폰과 연관된 상품을 개발하느라 난립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인터넷을 통해 이런 저런 뉴스를 검색하는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제가 블로그를 만들어서 저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게 되더라구요. 저는 사용하지 않지만 트위터란 놈은 더 빠르게 개인의 생활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한다더라구요. 불과 몇 십 년 전에 군사 목적으로 만들었던 인터넷이란 놈이 기업을 바꾸고 사람을 바꿔 놓고 있지요.
농산물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멀쩡한 식량을 바다에 던져야 할 만큼 세상에는 온갖 물건들이 넘쳐 나고, 사람들은 순간순간 연락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일하는 게 힘들고 늘 혼자인 것처럼 외롭다고 합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이놈의 세상을 어찌 잘만 하면 사치가 아닌 먹고 사는 것에는 큰 걱정 없이, 인생에 대해 토론하고 음악과 미술을 즐기며 어울릴 수 있는 개인이나 사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 조건이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다는 겁니다.
다만 있는 것들이 서로 손을 잡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다보니 아무리 좋은 것들이 있어도 지들 주머니 채우는 쪽으로만 자꾸 쓰이는 게 문제겠지요. 비행기는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할 수도 있고 아이티에 식량을 실어 나를 수도 있는 거니깐요.
제가 머리가 짧아서 제대로 이해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앞의 맑스의 말은 자본주의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준비까지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양’은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가져가는 거겠지요.
조금씩 조금씩
언제부터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본격화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해방 이후겠지요. 우리가 흔히 쓰는 ‘고향’이라는 말에 농촌과 농업의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은 저의 부모님과 그 세대가 농촌 지역 출신이기 때문일 겁니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본격화 되면서 농촌 지역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도시와 공장을 불러 모았죠. 외국에서 차관을 빌려오고 초딩인 저한테까지 저축을 강요하면서 자본의 덩치를 키웠죠. 저희 부모님 세대에서 저축, 절약, 근면 등의 말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초기 발전 과정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박정희와 새마을 운동. 독재자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자신을 꾸몄다.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다보니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나 반자본주의 운동의 역사도 그만큼 짧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일제시절부터 생각하면 한국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하든 꼬뮌주의라고 하든) 운동의 역사가 반자본주의 운동의 역사보다 긴 셈이지요. 무언가 덩치 크고 심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높이 눈앞에 있는데 이놈이 도대체 뭐하는 놈인지 생각할 시간도 그만큼 짧았던 겁니다.
그러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전태일과 그의 동료 노동자들이 40여 년 전에 자본주의가 도대체 뭐하는 놈인지를 아주 힘들게 말했던 것을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공부하면 되겠지요.
[자본론]이니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니 하는 책들을 읽으면 좋겠지만 말도 어렵고 시간도 엄청 많이 듭니다. 힘들다 싶으면 요즘 정치경제학에 대해 쉽게 풀어쓴 책이 몇몇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해 나가면 되겠지요. 지지리도 가난해서 신발과 코트까지 전당포에 맡겨야 했던 맑스가 도서관에 쳐박혀서 오랜 세월 연구한 것을 낼름 하루아침에 집어 삼키기는 좀 거시기 하잖아요.
제가 아직 거기까지 닿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누구든 조금만 천천히, 꾸준히 노력하면 설사 처음에는 사회과학이 뭔지 아무 것도 몰랐던 사람도 얼마지 않아 ‘맑스주의자’라는 것을 무슨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어줍잖은 맑스주의자보다 훨씬 더 지적으로 성장한 자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부터 그리고 우리 모두 힘내자구요.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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