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가끔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현수막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들의 주된 내용은 때려잡자 빨갱이, 무찌르자 김정일 식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런 현수막을 내 건 것이 월남전 참전 전우회나 고엽제 피해자들의 단체일 때는 참 안타깝습니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행사를 하고 있는 한국군
술집 화장실에 갔다가 이상한 남자가 자신을 껴안은 경험을 갖고 있는 여성은 다른 공중 화장실에 갈 때도 혹시 또 이상한 남자가 있는 건 아닌지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두려운 일을 겪고 나면 그 후유증이 마음에 크게 남는 거지요. 소설 [하얀전쟁],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 이경영이 베트남 전쟁 후유증으로 있지도 않은 소리를 듣고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모습과 같은 거지요.
그래서 전쟁이라는 특히 베트남 전쟁이라는 전쟁사에서도 잔혹한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호전적이게 되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현수막도 전쟁 후유증은 아닌지 싶은 거지요.
저는 이명박도 싫고 김정일도 싫지만 둘이서 치고 박는 것도 싫습니다. 지들이야 전쟁 나면 어딘가로 내빼겠지만 무지랭이들이야 꼼짝없이 당해야 하니깐요. 전쟁을 직접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터지면 어차피 힘없고 돈 없는 것들이 제일 먼저 죽게 되잖아요. 베트남 전쟁에도 귀하신 부잣집 도련님들이 달려가신 것이 아니라 없는 놈들이 떠밀려 갔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전쟁을 겪은 분들은 더더욱 남들이 전쟁을 하자, 한 판 붙자고 할 때 오히려 ‘야, 내가 전쟁을 직접 겪었잖아. 그런 거 이제 제발 그만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란 말야!’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거지요. 일본 식민지 시절을 겪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본이라는 말만 나와도 몸서리를 치듯이 말입니다.
뻥 치시네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베트남 침략 이후 미국과 한국은 전쟁 영웅 만들기에 바빴습니다. 자신의 패배를 감추고 싶어 하듯 말입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보다 더 많은 폭탄을 베트남에 퍼 부었다고 하죠. 지금도 베트남과 한국에 수백만의 피해자를 대대로 남기고 있는 고엽제도 무한정 뿌려 댔구요. 베트남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라오스 지역까지 쑥대밭을 만들었지요. 그렇게 무작정 죽이고 불 질러 댔지만, 미국은 결국 베트남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미국 제국주의의 패배가 희망으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진 거죠. 누구라고 알았겠습니까? 미군들에 비하면 덩치도 작은 베트남인들이 소형화기를 들고 덩치 큰 침략자들을 몰아 낼 수 있었을 줄을...
베트남을 침략했다 쫓겨난 미국
베트남에서 쫓겨난 이후 미국은 대규모 전쟁 대신에 대리전쟁이나 소규모 전쟁을 벌였죠. 대리전쟁으로 유명한 것은 소련에 맞서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던 것과 좌파 운동을 짓누르기 위해 과테말라, 엘 살바도르, 니카라과 등지에서 우익 군사조직들을 지원했던 거죠.
예전에 있었던 기억나는 사건 하나는 어느 날 아침 뉴스에서 미군이 파나마에 들어가 노리에가 장군을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했다고 하더라구요. 파나마라는 말이 낯설기도 하고 그래서 그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의 옛 친구인 노리에가가 파나마 운하에 대한 운영권을 넘기라는 요구에 협조하지 않자 파나마를 침공했던 거더라구요.
베트남 침공 패배의 경험과 소련의 존재는 미국의 행동에 제약이었죠. 하지만 시간도 조금 흐르고 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은 곧바로 이라크를 침공하기 시작합니다. 베트남에서의 패배를 잊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지요.
그러면서 자신은 어느새 백만 탄 왕자가 됩니다.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백인의 의무’를 내세웠다면 이제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산’을 위해 나섰다고 하지요. 이라크를 비롯해 그들이 말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세계를 지켜 주겠다는 겁니다. 굳이 나서고 싶지 않지만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면 책임감을 안고 나서겠다고 뻥 치시는 거죠. 지들이 테러리스트이면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홉슨이 [제국주의론]이란 책에서 영국 제국주의가 어떻게 경제 이익과 관련 있는지를 드러내 보였고, 이어 레닌 등이 단순한 이익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팽창 과정으로써의 제국주의를 설명했지요. 한 국가라는 무대는 너무 좁은 거에요.
요즘 한국에서 동네마다 대형 수퍼들이 들어오려 하고 동네 작은 수퍼들은 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대형마트 때문에 매상이 떨어져 죽겠는데 이제는 동네 구석구석까지 대기업 수퍼가 들어온다고 하니깐 이대로 죽을 수 없다가 된 거지요. 이 일만 봐도 자본의 팽창 욕구는 때와 장소,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돈만 된다면 어디든 가고, 무슨 일이든 하는 거죠. IMF 때 나라 살리자고 금 모으기 운동해서 결국 큰 돈을 번 것은 대기업들이지요.
삼성과 같은 거대 자본들이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 하듯 몇몇 거대 자본들이 미국 정부를 주무르고, 국가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도 하고 WTO나 IMF와 같은 국제기구도 만들고 그러는 거죠. UN이 무능력한 허수아비가 된 것은 반기문이 사무총장이어서가 아니라 미국이 돈과 힘으로 UN을 주물럭거리기 때문이지요.
자본주의 경제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일 것 같지만 그건 이론 속에서나 있는 일이고 실제로는 큰 자본과 힘센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힘을 이용해 지키는 거지요. 하다못해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 하청 업체의 관계를 보세요. 그게 어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지.
제국주의는 좀 거칠고 부담스러운 말이니 좀 근사하고 우아한 말로 꾸민 것이 ‘세계화’라는 말입니다. 건설회사에 세금 퍼주기 위해서 미분양 아파트 사들이면서 남들에게 눈치 보이니깐 ‘경제 안정’이라는 말로 꾸미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세계화는 인권이나 정의나 평화의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를 의미하지요. 자본은 국경을 넘어 마음대로 움직이지만 사람들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지요. 그리고 세계화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주먹과 돈으로 이루어지는 거죠.
소련과 같은 경쟁자가 없는 마당에 이제 거칠 것이 없습니다.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가 변신을 하듯 자신을 가리고 꾸몄던 옷을 확 찢어 버리고 벌거벗은 채 세계 곳곳, 구석구석 뻗어나가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국가나 제도, 조직, 문화 등이 있으면 때로는 한방에, 때로는 조금씩 부수면서 나아가는 겁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만들고 노예를 부리며 덩치를 키웠던 자본주의가 제 버릇을 여전히 못 버리고 있는 거지요. 아니, 제 버릇을 못 버린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놈은 본래 영국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듯이 힘으로 세계 곳곳에서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놈이지요.
사자는 사슴과 같은 약자를 잡아먹지만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먹다 먹다 배가 터질 때까지 멈출 줄 모릅니다. 아~~~ 이래서 과식하다 배가 터져 봐야 그 때 적당히 먹고 정신 차릴 것 그랬어 하며 후회하겠죠.
그러다 보니 평화를 원하는 사람, 자유를 원하는 사람, 인권을 원하는 사람, 정의를 원하는 사람, 소중한 가족을 지키고 싶은 사람, 내일도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은 사람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설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까닭도 모른 채 전쟁 통에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이 마음 아플 때 우리는 우리의 눈동자를 총알에 머물지 말고 총을 쏜 사람에게로 돌려야겠지요. 참혹함과 고통의 지구별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행복의 지구별에서 우리 함께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반반무마니, 콜라 써비스는 기본
존 벨라미 포스터가 쓴 [벌거벗은 제국주의Naked Imperialism]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미국과 전쟁 관해 말을 합니다. 미국이 언제 어디서 왜 전쟁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이 자본주의와 어떻게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면서 제국주의 이론에 대해서도 곳곳에서 말합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하듯이 사례 반, 이론 반인 셈이지요.
양념 반, 후라이든 반뿐만 아니라 무도 많이 달라구요?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미국 제국주의의 역사를 읽다보면 ‘아하, 지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는 대강 이렇게 돌아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구요.
콜라 써비스는 없냐구요? 프랑스 식민지에서 해방된 베트남을 미국이 왜 어떻게 먹으려고 했고, 베트남인들과 어떻게 전쟁을 했는지와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조선을 미국이 왜 어떻게 먹으려고 했고, 한반도에서 어떻게 전쟁을 했는지를 천천히 비교해 보는 것도 우리의 사고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두 전쟁에 대해서 미국이 어떤 말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요. 민감한 주제라구요? 설마 김빠지고 뜨뜨미지근한 콜라를 원하시는 건 아니겠죠? 씨어~언하고 톡 쏘는 콜라라야 제 맛입니다.
미국 산 아이폰과 제국주의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아이폰 가지고 놀면서 제국주의니 자본주의니 전쟁이니 하는 골치 아픈 말은 잊어버리라고 하지요. 재미와 편리함이 최고지 이성이 어떠니 철학이 어떠니 하는 것은 퀴퀴한 냄새나는 뒷방에 처박으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가 마르크스에 대해 여러 번 얘기하는 것을 두고 누구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미국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재미나게 살고 싶고 편리함을 누리고 싶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도 알고 싶고 뭔가 좋은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도 쌓고 싶어 한다는 걸요.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고 하고 세상일에 눈 감지 않으려는 여러분들이 있으니깐 이명박이 언론을 장악해서 우리를 세뇌시키고, 우리를 멍청이로 만들려고 해도 그게 쉽지 않은 일이 된 걸 거구요.
제가 직접 보진 않았지만 이 책은 한국말 [벌거벗은 제국주의]로 번역․출판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 두껍지 않고 여러 꼭지로 나눠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읽기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알고 싶다는 분, 사는 게 바빠서 잠깐 책을 놓고 계셨던 분뿐만 아니라 평소에 ‘좌파니 맑스주의자니 말은 많이 들었는데 그 인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라는 물음을 가지셨던 분들이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마지막 장을 덮고 책의 맨 앞에 이런 말 적었습니다.
안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모르면서 세상을 바꿀 수도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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