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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고

순돌이 아빠^.^ 2010. 5. 19. 12:10

 

오랜만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다시 봤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블러디 선데이’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영국에 대항하는 아일랜드인의 투쟁과 역사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영국이 고상한 귀족 이미지를 풍기는 것은 이명박이 어린이날에 어린이들에게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보듯이 영국은 아일랜드를 지배하면서 운동 경기도 불법 집회라고 지랄 대고, 사람 죽이기를 여름 밤 모기 죽이듯이 하지요. 펜치로 손톱 뽑는 고문 정도는 그들의 생활 문화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니 아일랜드인들이라고 가만있겠습니까. 치고 박고 싸우는 거지요. 무기고를 털고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지요.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인 밀고자가 생깁니다. 해방군이 어디 있는 지를 말하게 되지요. 밀고자를 직접 처형하게 되면서 밀고자와 어릴 때부터 함께 지냈던 주인공은 ‘조국이란 것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이길 바래’라며 중얼거립니다.

 

아일랜드인들의 투쟁에 계속되자 영국이 내어놓은 안은 아일랜드의 일부를 그대로 영국령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자치령으로 한다는 겁니다. 이를 놓고 그렇게라도 해야 된다는 입장과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싸웠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이 있지요.

 

지금도, 한국에서도 벌어지는 일입니다. 정치를 놓고도 그렇고 개인 인생을 놓고도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정의이고, 어디서 멈춰야 하고, 언제 더 밀고 나가야 하는 걸까요?

 

곧 한국에서 지방 선거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더 힘을 얻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을 찍어야 한다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다른 게 뭐 있냐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을 찍어야 한다는 분도 계시지요. 또 어떤 분은 이런 자본주의 부르주아 선거판에 끼어든 것 자체가 개량주의라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도 싫다고 하시는 분이 계시지요.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좌파인데 개량주의라고 하는 것이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구요? 민주당이 중도 우파 쯤 된다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중도 좌파 쯤 되는 거지요. 이들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하자는 건 아니잖아요. 문제 많은 자본주의를 좀 바꿔보자는 거지요. 이 정도를 놓고 빨갱이니 뭐니 말씀하시는 건 정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이스라엘이 식민지배는 계속하되 약간의 자치권을 주겠다고 했던 오슬로 협정.

왼쪽부터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아일랜드 민족해방운동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요,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쪽과 그건 너무 이상적이고 꿈으로만 가득 찬 얘기라며 현실을 생각한다면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라고 하는 거지요.

 

영화 속 주인공인 형이 후자의 입장이라면 동생은 전자의 입장이지요. 그래서 말다툼을 하며 형이 동생에게 ‘넌 너무 이상주의자야’라고 하니깐 ‘아니야 내가 현실주의자인 거야’라고 하지요. 이자놀이를 한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쪽과 그들이 군자금을 대고 있으니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는 거지요. 아마 일제시대 조선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이렇게 나뉘었었겠지요.

 

주인공이 영화 막판에 ‘무엇에 반대하는 지는 말하기 쉬워도 무엇을 정말 원하는 지를 말하는 것은 어려운 거야’라고 하는 말이 기억에 크게 남습니다.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무언가를 해 보신 분들은 이 말에 더욱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 같이 팔레스타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영화 속 이야기가 오늘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계속 하실 거구요.

 

영화가 ‘해방을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이에게 영광을’이라고 말하고 마치면 보는 사람도 속 시원할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게 ‘그래 저게 현실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을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이에게 영광을’이라고 말하게 만듭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영화는 그나마 현실을 단순하게 드러낸 거고, 막상 그런 일에 뛰어들면 상황은 영화보다 더 복잡하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조지 부시는 인생을 참 편하게 삽니다. 동지가 아니면 모두 적이니깐요.

 

요즘 몸이 자주 아픕니다. 어디 병이 든 게 아니라 천날만날 배드민턴을 치러 다녔더니 어깨가 아팠다가 팔이 아팠다가 허리가 아팠다가 요즘은 무릎과 다리가 아픕니다. 오래 치신 분들 말씀이 초반에는 온몸이 돌아가며 아플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동안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렇게 되는 거라며.

 

인생도 세상도 그런 거겠죠. 하다보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지만, 그렇게 쑤시고 아픈 게 또 인생이고 세상인가 봐요. 쑤시고 아프더라도 멈추지 말고 조금씩 더 나아가라고 용기라는 말이 있는 것일 테구요.

 

5월18일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분노하며 싸웠던 이들에게 고맙다는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켄 로치의 영화는 정말 좋습니다. 모두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고 감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