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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연못]을 보고

순돌이 아빠^.^ 2010. 4. 24. 11:52

 

하얀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짙은 목련이 흐드러진 봄날,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영화 시작을 앞두고 둘러보니 저를 포함해 모두 3명이 [작은연못]을 보기 위해 앉아 있었습니다.  

 

 

 

 

까닭도 모른 채

 

“도대체 누가 쏘는 거여”
“빨갱이들이 쏘겄제”
“미군이 쏜다는디”
“미군이 머한다고 우릴 쏘겄어”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피난을 떠났습니다. 솥이며 쌀이며 지고 아이는 안고 그렇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피난을 떠났지요. 그러다 미군을 만났습니다. 미군은 이들을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붙들어 두지요. 피난민 행렬 위를 떠다니는 비행기를 보면서 미군이 우리를 실어 나르려고 사람 수를 세고 있다는 생각도 가집니다.

 

하지만 이어진 것은 폭격과 사격입니다. 더운 날 철길 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우왕좌왕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보지만 살길이라고는 마땅찮게 팔다리 잘려가며 죽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있던 다리 밑으로 모이지요. 우리를 살려 줄 거라고 일어나 미군에게 다가가던 사람은 제일 먼저 총을 맞습니다. 그렇게 미군은 조선인들을 하나 둘 쏴 죽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게 간단합니다. 전쟁이 터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 촌구석에 무슨 일이 있겠냐던 사람들에게 피난을 가라고 한 것도 미군이었고, 이들이 더 이상 남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몰살을 시킨 것도 미군이었지요.

 

영화는 1950년에 충북 영동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 억울한 죽음을 겪은 생존자들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6.25, 전쟁, 미국과 관련 됐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받았죠. 기가 막힌 일입니다. 억울한 일을 겪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나마 노근리 학살은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까지 왔지만 알려지지 않고, 말하지도 못한 미군과 한국군, 경찰이 저지른 범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범죄자들과 그들의 후예들이 여전히 한국의 정치․경제․언론․문화 업계를 주름잡고 있으니 힘없는 무지랭이들이야 가슴이 문드러지고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도 살려면 참아야했겠지요.

 

다른 영화 같은데서 보면 사람들이 갑자기 한 사람에게 몰려가 냅다 두들겨 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맞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하지요.

 

맞는 것은 좋다. 그런데 왜 맞는지 이유나 알고 맞자.

 

사람이란 게 그런 거겠지요. 알고 싶은 거에요. 말하고 싶은 거에요. 그만큼 당장에 나에게 불이익이 오고 고통이 와도 진실은 목마른 거지요.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이 너라도 살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꼭 전하라고 하는 거구요.

 

다시는 전쟁이...

 

영화 보는 내내 울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청소하시는 분이 들어 왔는데도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구요. 억울한 죽음, 가려졌던 진실이 제 마음을 흔들었겠지요.

 

올해로 6.25가 60년이 되었네요. 그리 길지 않은 세월 전에 수백만의 사람이 이 작은 땅에서 죽어간 전쟁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미국+남과 북은 휴전선을 중심으로 온갖 무기를 배치해 놓은 채 으르렁대고 있구요.

 

이런 상황에서는 작은 명분 하나로 큰 일 벌이기 딱 좋습니다. 가스가 가득찬 방에는 라이터 불꽃 하나가 큰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거지요.

 

 

불과 십 여 년 전에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려다 그만 뒀던 일이 있었지요. 일이 터졌다 하면 수백만이 죽을 거라고 예상을 했고, 미군 피해가 많을 것 같아 클린턴 정부가 폭격을 포기 했었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두드리면 북한도 죽기 살기로 싸울 테고, 원하든 원치 않던 한국군도 북을 향해 총을 쏴 대겠지요. 모자 삐딱하게 쓰고 헬렐레 하던 예비군들도 갑자기 전쟁 준비에 들어갈 거구요. 저 같은 민방위도 당장에 소집 되겠지요.

 

한반도에서 또 전쟁이 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저 영화 속 사람들이 그렇듯이 ‘에이 뭔 일이 있겠어? 설마...’하면서 실제로 전쟁이 터져도 많은 사람들은 실감을 하지 못하지요.  검은 구름이 몰려와도 가만히 있다가 비가 쏟아져야 우산을 펴는 것과 같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역사가 될 겁니다. 60여 년 전에 있었던 일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있다면 그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라는 거겠죠. 이미 오래 전에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일제 식민지 시대를 기억하고 그 때 있었던 일들의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오늘의 우리가 역사 속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오늘의 우리가 내일을 만들 거구요.

 

오랜 세월 아팠던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고 우리에게 낯익은 많은 배우들이 잠깐잠깐 얼굴을 내밀면서 힘들게 만든 영화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예술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게 만든 작품입니다.

 

온갖 일에 바쁘시겠지만, 언제 어디서 이 영화가 걸렸다 사라질지 모르니 얼른 서두르셔서  꼭 한 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작은연못] 보기 운동이라도 일어나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