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레지엔의 직조공
하이네
침침한 눈에는 눈물도 마르고
베틀에 앉아 이빨을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넣는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첫번째 저주는 신에게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우리는 기도했건만
희망도 기대도 허사가 되었다
신은 우리를 조롱하고 우롱하고 바보취급을 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두 번째 저주는 왕에게 부자들의 왕에게
우리들의 비참을 덜어주기는커녕
마지막 한 푼마저 빼앗아 먹고 그는
우리들을 개처럼 쏘아 죽이라 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세 번째 저주는 그릇된 조국에게
오욕과 치욕만이 번창하고
꽃이란 꽃은 피기가 무섭게 꺾이고
부패와 타락 속에서 구더기가 살판을 만나는 곳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북이 날고 베틀이 덜거덩거리고
우리는 밤낮으로 부지런히 짠다
낡은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넣는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하이네 하면 사랑에 관한 시를 떠올리기 쉽고 독일하면 뭔가 정돈되어 있고 이성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요. 나치는 독일 역사의 삑사리로 정도로, 아니면 ‘독일적이지 않은 것’ 또는 ‘독일이지만 독일이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도 하구요.
케테 콜비츠, <행진>
제가 독일의 역사는 잘 모르겠는데 맑스와 엥겔스의 글에서 보면 독일이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잘 갖춰진 나라인 것도 아니었나 봐요.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 등장하는 슐레지엔 직조공의 봉기에서 봐도 그렇고, 오토 딕스의 작품 속의 독일도 그렇지 않구요. 세상 꼬라지가 그러니깐 어떤 이들은 혁명을 꿈꿨을 거구요.
생각, 생각, 생각
그런데 이 혁명이란 놈이 묘해서 가만 있는다고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처럼 말이에요. 혁명을 하려면 짓눌리던 인간들이 무리지어 나서야 되는데 그러려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고, 새롭게 만들려는 세상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아야겠지요.
지배 계급의 사상들은 어떠한 시대에도 지배적 사상들이다. 즉 사회의 지배적 물질적 힘인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힘이다. 물질적 생산 수단을 제 마음대로 처분하는 계급은 이로써 동시에 정신적 생산 수단도 제 마음대로 처분하며, 그 결과 정신적 생산 수단이 박탈된 계급의 사상들은 이로써 동시에 대체로 지배 계급에 종속된다. - 박종철 출판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 226쪽, <독일 이데올로기> 가운데
우리가 흔히 쓰는 경쟁에서 이기자, 세계시장으로 나아가자,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성, 자유시장 경제, 노후 대비 등은 한국 사회 지배 계급이 만들어낸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규제 완화는 자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노동․환경․소비자 등과 관련된 규제를 없애자는 거지요. 이건희가 이재용에가 마음껏 재산을 물려 줄 수 있도록 하자는 거구요.
노동시장 유연성은 자본이 필요하면 노동자를 썼다가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지 나 몰라라 하고 짜를 수 있는 힘을 말하든지 아니면 더 이상 정규직은 쓰지 않고 모두 비정규직으로 쓰자는 것을 말하지요. 삼성이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감시하고 괴롭힐 자유는 있어도, 삼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는 없는 자유지요.
노후 대비도 지배 계급이 만들어낸 생각이란 것이 당최 뭔 말이냐구요? 노후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험 들고 주식 사고 적금 들고 그래야겠지요. 쉽게 말해 국가나 기업은 그동안 써 먹은 인간들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을 테니 니들의 미래는 니들이 알아서 준비하라는 겁니다.
119 부르기 위해 119보험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건 당연히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고 개인은 이를 위해 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인간의 노후도 마찬가지인 것 아닐까요?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개인의 인생은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면 그건 인간이 인간으로써 가져야 할 의식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까요?
인간은 자신의 생활 활동 자체를 자신의 의지와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다. 인간은 의식적 생활 활동을 가진다. 인간이 직접적으로 그것에 융합되는 규정성이란 없다. 의식적 생활 활동은 인간을 동물적 생활 활동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구별 짓는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하나의 유적 존재인 것이다. 혹은 인간이 바로 유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의식적 존재이며, 다시 말해서 그 자신의 생활이 그에게 있어 대상인 것이다. - 79쪽,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쉽게 말해 세상을 주어진 진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앞에 세상이 주어졌을 때 이 세상에 대해서 생각해 볼 줄 알 때 인간이 인간이 되는 거지요.
함께 살아 좋은 세상
그런데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인간이기를 멈추라고 합니다. 인간이 생산하기 위해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 인간은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거지요. 기계가 명령하고 인간이 거기에 따르는 겁니다.
기계가 인간에게 명령하지 않고 인간이 기계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이 새로운 사회 질서는 어떠한 종류의 것이어야만 할 것인가?
답: 이 새로운 사회 질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산업 및 모든 산업 부분들 일반의 경영을 상호 경쟁하는 개별적 개인들의 수중에서 탈취해야만 할 것이며, 그 대신 이 모든 산업 부분들이 사회 전체에 의하여, 즉 공동의 부담으로 공동의 계획에 의거하여 모든 사회 성원의 참가 하에 경영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사회 질서는 경쟁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연합을 가져다 놓을 것이다...따라서 사적소유도 마찬가지로 폐지되지 않으면 안 되며, 그 자리에 모든 생산 도구들의 공동 이용, 공동의 합의에 의한 모든 생산물의 분배, 즉 이른바 재산 공유제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 329쪽, <공산주의의 원칙들> 가운데
자본주의가 괴로우니 우리끼리 산 속에 들어가서 살자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문제가 많으니 그 자체를 바꾸자는 거지요.
자본주의를 대표할 수 있는 말이 ‘사적 소유’입니다. 노동자가 되어 자본가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 말고는 쌀과 배추를 살 돈을 구할 수 없는 신세로 만드는 것이 사적 소유 때문이지요. 뙤약볕에서 죽어라 열심히 집을 지어도 그 아파트에 들어갈 수 없는 것 또한 사적 소유 때문입니다. 물론 사적 소유를 철폐하자는 것이 각자 가지고 있는 빤쓰까지 함께 쓰자는 것은 아니고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공유하자는 거지요.
집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말이 있지요. 참 좋은 말입니다. 한국 주택 보급률이 100%가 넘고 분양 안 된 아파트가 넘쳐난다고 하니 그냥 모두에게 사는 곳을 나눠주면 되겠지요. 사는 곳으로써의 자기 집에서 살다 죽으면 다른 사람이 거기서 살면 되는 거구요.
주택을 공유하게 되면 전세값 오르는 거 맞춘다고 똥줄 탈 필요도 없을 거구요. 햇빛도 안 들어오는 어두컴컴한 지하방에서 어린 아이들이 천식에 걸려가며 살 필요도 없겠지요. 부자들의 재산을 지켜주는 것보다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국가라는 놈은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보다 부자들의 재산을 지키고 늘리는데 더 열심입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집값이 떨어지면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 마냥 난리를 뽀갭니다. 집값이 떨어지면 ‘위기’고 집값이 오르면 ‘안정’이라고 하는 국가와 언론은 도대체 누구의 입장에서 위기와 안정을 말하는 겁니까?
노동자들이 최저 임금 몇 십 원 올리자고 하면 ‘지금 니들이 미쳤어? 나라 경제를 말아 먹으려고 그래?’하며 민주노총과 빨갱이들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난리지요. 그러면서 있는 것들은 룸싸롱에서 여성들 희롱하며 하루에도 술값으로 몇 백, 몇 천 만 원씩 써 댑니다. 2차, 3차 늴리리 맘보 룰랄라!!!
국가가 세금 거둬서 있는 것들에게 퍼주면, 있는 것들은 관료나 공무원들에게 떡값(그 돈으로 떡 사먹으면 배 터져 죽어요) 돌리고, 떡값 받은 것들은 노동자들 파업하고 철거민들이 투쟁을 벌이면 경찰 특공대를 끌고 가서 때려잡지요. 이게 자본주의고 자본주의 국가이지요. 가난한 자들 때려잡아 부자들 주머니 채우는.
이어지는 세계
물론 많은 사람들은 최저 임금이 오르던 내리던, 재개발한다고 사람들을 쫓아내던 말든 관계없이 삽니다. 내가 내 집 있고 차 있고, 꾸준히 돈 버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거지요. 하지만 그 ‘영광’이 영원할까요? 최저 임금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동안 받던 월급이 내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그나마 표현의 자유가 좀 생기는 가 싶더니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하루아침에 ‘허위 사실 유포 죄’가 널리 퍼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세상은 멈춰 있는 공이 아니라 힘과 힘이 만나는 풍선과 같지요. 이쪽에서 누르면 저쪽이 부풀어 오르고, 저 쪽에서 누르면 이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남의 쪽빡 깨지는 것을 모른 채 하면 언젠가 내 쪽박도 깨지는 법입니다. 한국에 IMF가 또 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지요.
요즘 헝가리 발, 그리스 발 금융 위기라는 말이 떠돕니다. 유럽에서 문제가 생기면 미국으로 영향을 미치고, 미국 주식 시장이 내려앉으면 한국도 폭삭하게 되지요. 이미 세상은 저 혼자 존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남의 쪽박이 한국 사람만이 아니라 세계 사람의 쪽박이 된 거지요. 저 멀리 헝가리 사람의 쪽박이 지켜져야 내 쪽박도 안 부서지는 겁니다. 좋든 싫든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세계로 퍼져 가면서 세상 사람들을 점점 하나로 묶어 주고 있는 거지요.
만국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만국의 무지랭이들이 단결해야 하는 이유가 모두들 고귀한 세계 시민의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힘을 써야 하는 거지요.
한국의 좌파, 사회주의자, 진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도 민족주의 욕만 하지 말고 자신들부터 한국이라는 틀에서 좀 벗어나서 생각해 보라 싶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많은 것은 알겠는데 그 안타까움과 분노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과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이 필요하겠다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슐레지엔 직조공의 외침이 하루 빨리 과거의 일로 되어버리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아무쪼록 우리의 [맑스 엥겔스 저작 선집]이 여러분의 치열한 학습 의지를 배신하지 않게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성의가 게으른 외면에 걸려 좌초하지 않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발간의 말을 대신한다. - 박종철 출판사의 <발간사> 가운데
변화
선집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글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독일 이데올로기> <19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임금 노동과 자본>을 비롯해 <잉글랜드 노동 계급의 처지> <공산주의의 원칙들> <공산주의당 선언> 등 담겨 있지요. 글을 읽다보면 맑스와 엥겔스가 생각은 비슷하지만 문체가 약간 다르다는 것도 느낄 수 있구요.
많은 분들이 한번쯤 들어 보셨을 법한 문장들이 이 책에 담겨 있어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가 나타난다...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공산주의당 선언
참, <공산주의당 선언>(또는 공산당 선언)은 많은 분들이 읽어 보시지는 않아도 들어는 보셨을 만큼 유명한 글이지요. 그리고 공산당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이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고, ‘선언’이기 때문에 다른 글들에 비해 좀 쉽게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그런 만큼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지식이 좀 필요할 수도 있고, 거꾸로 이 글을 시작으로 좀 더 공부를 해 갈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이 글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역사’라는 말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나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닌 셈이죠.
아니면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의도를 감추는 일을 부끄러워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의 무력적 전복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무력적 전복’이란 말을 놓고 그저 무조건 총 들고 싸우자라는 말로 이해하면 약간 곤란할 것 같아요. 자본주의와 폭력, 국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논의한 뒤에 이 문장을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아니면 이 글을 시작으로 사회 변화와 무력에 관한 얘기를 해 봐도 좋을 거구요.
요 며칠 한창 덥더니 비가 내리고 시원해졌습니다. 뜨거운 열정의 순간이 있어야 편안한 삶의 순간이 오듯이 말입니다.
'지배.착취.폭력 > 지배.착취.폭력-책과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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