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건국 이야기 - 이스라엘 건국은 유엔의 결정을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을 1947년 유엔 분할안에 두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유엔의 결정은 정당하다는 생각과 유엔이 요구했으니 이스라엘의 건국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엔 분할안의 내용과 채택 과정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이제 막 탄생한 유엔에게 과연 현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917년 발푸어 선언을 비롯해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중동 지역에 대한 분할 지배 그리고 유엔의 분할안까지 모두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의 건설이라는 현지 주민의 요구는 무시한 채 외부 세력들이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좌지우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UNSCOP가 팔레스타인 현지 조사를 나갔을 때 아랍인들이 UNSCOP의 활동을 못 마땅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표> 팔레스타인의 지역별 인구 분포(1946년, 단위 %) | ||
지역 |
팔레스타인인인 |
유대인 |
아크레(Acre) |
96 |
4 |
바이산(Baysan) |
70 |
30 |
베에르셰바(Beersheba) |
99 |
<1 |
가자(Gaza) |
98 |
2 |
하이파(Haifa) |
53 |
47 |
헤브론(Hebron) |
99 |
<1 |
자파(Jaffa) |
29 |
71 |
제루살렘(Jerusalem) |
62 |
38 |
제닌(Jenin) |
100 |
0 |
나블루스(Nablus) |
100 |
0 |
나자렛(Nazareth) |
84 |
16 |
람라(Ramla) |
78 |
22 |
라말라(Ramallah) |
100 |
0 |
사파드(Safad) |
87 |
13 |
티베리아스(Tiberias) |
67 |
33 |
툴카렘(Tul-Karem) |
83 |
17 |
출처 : Ilan Pappe, [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 oneworld, 2007, 295쪽 |
게다가 영국이 신탁통치를 중단하겠다고 했을 때 그 다음에 이어질 단계는 유엔에 의한 팔레스타인의 미래 결정이 아니라 아랍인과 유대인을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의해 구성되는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의 건설이었습니다. 결국 시오니스트들이 미국을 움직이고, 미국은 유엔을 움직여 권한에도 없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둘째, 분할된 영토와 인구에 관한 것입니다. 유엔이 유대인 국가에게 할당한 땅은 전체 팔레스타인의 약 56%인데 당시 유대인이 소유하고 있던 땅은 전체 팔레스타인의 약 6%였습니다. 전체 팔레스타인 인구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32%였습니다. 그리고 이 32% 가운데 2/3 가량은 1920년 이후에 이주해 온 사람들입니다. 또 유대인 국가에게 주어진 땅의 80%는 아랍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이었고, 유대인이 소유한 땅의 비율은 11% 정도였습니다.
<표> 팔레스타인의 지역별 토지 소유 비율 분포(1945년, 단위 %) | |||
지역 |
팔레스타인인인 |
유대인 |
국가 또는 기타 |
아크레(Acre) |
87 |
3 |
10 |
바이산(Baysan) |
44 |
34 |
22 |
베에르셰바(Beersheba) |
15 |
<1 |
85 |
가자(Gaza) |
75 |
4 |
21 |
하이파(Haifa) |
42 |
35 |
23 |
헤브론(Hebron) |
96 |
<1 |
4 |
자파(Jaffa) |
47 |
39 |
14 |
예루살렘(Jerusalem) |
84 |
2 |
14 |
제닌(Jenin) |
84 |
<1 |
16 |
나블루스(Nablus) |
87 |
<1 |
13 |
나자렛(Nazareth) |
52 |
28 |
20 |
람라(Ramla) |
77 |
14 |
9 |
라말라(Ramallah) |
99 |
<1 |
1 |
사파드(Safad) |
68 |
18 |
14 |
티베리아스(Tiberias) |
51 |
38 |
11 |
툴카렘(Tul-Karem) |
78 |
17 |
5 |
출처 : Ilan Pappe, [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 oneworld, 2007, 295쪽 |
게다가 서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감귤 농사 등 농작물 생산에 적합한 땅은 상당 부분 유대인 국가에게 주어지고, 산과 언덕 지역은 상당 부분 아랍 국가에게 주어졌습니다. 56%가 주어진 유대인 국가의 인구 비율은 유대인이 499,000명, 아랍인이 438,000명이었습니다. 또 팔레스타인 남쪽 네게브 지역의 경우는 유대인 인구가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도 유대 국가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전체 1천개가 넘는 아랍인 마을 가운데 400개 이상이 유대 국가 안에 남게 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인구의 68%를 차지하고 있고 토지의 87% 가량을 소유하고 있던 아랍인에게는 팔레스타인 땅의 42%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랍인들은 부모의 부모 때부터 팔레스타인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아랍 국가로 주어진 지역은 818,000명의 아랍인과 1만 명 가량의 유대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구 구성 비율, 토지 소유 비율, 거주의 역사성 등을 따져도 유엔의 분할안은 정당하지 못하며 시오니스트들의 요구를 현실에 강요한 결정이었습니다. 만약 유엔의 분할안대로 2개의 국가가 세워지려면 아랍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의 절반 이상을 잃게 될 것입니다. 또 유대인 국가에게 주어진 땅에 살고 있는 40만 명 이상의 아랍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정치권력의 지배를 받거나 아니면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이주를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홀로코스트와 유대인 국가 건설에 관한 문제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던 AAC(앵글로-아메리칸 조사위원회)의 경우도 그렇고, UNSCOP의 경우도 그렇고 조사단원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열악한 난민촌 상황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여론과 정치를 움직였던 힘 가운데 하나도 홀로코스트와 유대인에 대한 동정적 여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오는 질문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보상을 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해야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만약 난민들이 새롭게 이주할 지역이 필요했다면 새 이주 지역으로 서유럽 국가나 미국이 되지 않고 왜 팔레스타인이 되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유대인 학살 과정에 개입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을 학대하고 억압했던 것은 유럽과 러시아 등인데 말입니다.
결국 유엔의 분할 결정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고, 유대인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고 내세우는 시오니스트들의 주장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이렇게 유엔의 결정 자체가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스라엘의 주장대로 ‘유엔’의 결의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가정한다면,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조건 없는 귀환을 할 것인지 아니면 보상을 받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유엔 총회 결의안 194호도 이스라엘은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난민에 관한 결의안은 지금까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엔의 결정과 관련해 아랍인들이 유엔의 결정을 받아들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나 국제 문제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조지프 나이의 <국제분쟁의 이해>
1947년에 유엔은 팔레스타인의 분할을 권고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랍인들로서는 유엔의 분할 계획을 받아들였다면 더 좋을 뻔했는데 그들은 이를 거부했다....실로 아랍인들이 유엔의 1947년 계획을 받아들였다면 이스라엘에서 더 많은 지역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조지프 나이, [국제분쟁의 이해 - 이론과 역사], 한울, 2000, 248~249쪽.
만약 유엔이 그의 분할 안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어떠한 시도를 하려 했다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오직 군사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엔이 분단계획을 제안했으면 유엔은 그것을 강제로라도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을 가졌어야 했다. 아랍의 적개심 앞에서 도덕적 힘이나 설득은 유엔의 해법을 수행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전득주, [세계의 분단 사례 비교 연구], 푸른길, 2004, 285쪽
이러한 주장에 대해 먼저 말씀드릴 것은 분할안 채택 당시 그어졌던 분할선은 눈에 띄는 국경을 가진 것도 아닌 그냥 가상의 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전쟁이 벌어져 1949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만든 휴전선이 생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지프 나이는 역사를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아랍인들에게는 이 결의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땅과 거주의 문제 모두 아주 불리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엔의 결정 자체가 아무런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랍인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받아들여야할 이유도 없는 결의안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과연 아랍인들이 유엔의 결정을 받아들였다면 그나마 나머지 땅이라도 갖게 될 수 있었을 거냐는 겁니다. 조지프 나이의 판단은 당시 상황에서 시오니스트들의 영토 팽창 계획을 고려하지 않아, 시오니스트들이 유엔의 결정을 그대로 수용한 채 머물렀을 것이라는 가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대인-아랍인 양측 모두 유엔 결의안을 받아들였을 경우 시오니스트들이 곧바로 영토를 확장한다는 것은 국제적 압력을 고려해야 하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48~1949년의 전쟁 과정도 그렇고, 이후 1967년 전쟁의 과정을 봐도 시오니스트들은 얼마든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을 겁니다. 즉, 아랍인들이 유엔의 결의안을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그 땅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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