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이스라엘 건국 이야기

이스라엘 건국 이야기 01 - 이주의 시작

순돌이 아빠^.^ 2010. 6. 13. 14:03

이스라엘 건국 이야기 - 이주의 시작

 

1881년 3월13일, 러시아 혁명가들이 짜르 알렉산드 2세를 암살하자 짜르를 암살한 사람이 유대인이라는 얘기가 퍼지면서 반유대주의가 강화됩니다. 실제로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유대인이기는 했구요. 이런 상황 속에서 유대인에 대한 살인, 강간, 폭행 등의 사건이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됩니다.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학대는 학교 입학을 제한하거나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빼앗기도 합니다. 또 1891~1892년 사이에 약 2만 명의 유대인이 모스크바에서 추방됩니다. (Benny Morris, [Righteous Victims], Vintage, 2001, 16쪽 참고)

 

1894년에는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파리주재 독일 대사관에 편지가 한 통 전달되었는데 그 편지에 프랑스 육군의 기밀이 들어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이 편지를 쓴 것이 유대인 장교인 드레퓌스라고 지목하고,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합니다. 드레퓌스 사건을 두고 이것이 반유대주의라는 입장을 가지고 드레퓌스를 구명하려는 운동과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반유대주의적 주장을 강화하는 운동이 모두 거세게 일어납니다.

 

이렇게 반유대주의가 계속되자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운동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혁명운동으로,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켜 폭압적인 짜르 체제를 바꾸자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다수 민족의 언어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동화되자는 입장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에게 특정한 지역에 자치권이 주어진다면 그곳이 팔레스타인이든 어디든 가서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곳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치주의자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유대인 정착지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식의 유대인 운동 가운데 하나가 시오니즘 운동입니다. 시온(Zion)은 성경적 의미로 예루살렘을 말하며, 유대인 사이에는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종교적 열망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오니즘(Zionism)이라는 말은 1885년 유대인 작가인 나탄 비른바움(Nathan Birnbaum)이 만들어낸 말로, 유대인이 박해와 학대를 받고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 시온으로 돌아가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시오니즘 운동은 종교적인 운동이 아니라 세속적인 유대 민족주의 운동으로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팔레스타인 식민화와 유대 국가 건설이라는 식민주의 운동입니다.

 

 

"시오니즘은 인종주의다"

 

1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반유대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으로 일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 때 러시아를 중심으로 ‘시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호베비 시온(Hovevi Zion)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1887년에는 몇 개의 호베비 시온 조직들이 연합해서 ‘시온의 사랑’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바트 시온(Hibbat Zion)을 만들게 됩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빌루임(Biluim)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성서의 구절 ‘오 야곱의 가문이여, 야훼의 빛을 받으며 걸어가자’에 나오는 단어들의 첫 글자를 연결한 합성어입니다. (토마스 이디노풀로스, [예루살렘], 그린비, 2002, 175쪽 참고)

 

1882년 7월 첫 빌루임이 팔레스타인에서 농업 노동자로 일을 시작해서 1884년에는 자신들의 정착촌을 건설합니다. 유대인들이 이주 해 오자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 정부는 1882년에 유대인들의 이주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 시킵니다. 하지만 1888년에 영국의 압력 때문에 유대인 이주 제한 정책은 완화됩니다.

<표> 1878년 오스만제국의 팔레스타인 주민

종교별 주민

주민 수

비율

무슬림

386,320

88%

기독교

40,588

9%

유대인

13,942

3%

전체

440,850

100%

출처 : 홍미정,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의 역사’, 홍성태 엮음,

[전쟁국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정책], 문화과학사, 2007, 56쪽

 

이렇게 19세기말부터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주 운동이 시작되었으나, 많은 수의 이주민들이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떠납니다. 19세기 말의 유대인 이주 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거지요. 그리고 아랍인들 측에서는 오스만 투르크 정부에 유대인 이주를 제한해 달라는 요구를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