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의 글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프루동입니다. 맑스의 글을 읽어 보면 프루동과 그리 사이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잘 썼다고 하네요.
소유권이 자연의 권리라고 하더라도, 이 자연의 권리는 사회적이 아니고 반사회적이다. 소유와 사회는 서로가 전혀 상용될 수 없는 사정이다. 두 사람의 소유자를 결부시키는 것은 두 개의 자석을 동성의 극에 결부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사회가 붕괴하거나, 아니면 사회는 소유권을 말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프루동, [소유란 무엇인가], 형설출판사, 1994, 65쪽
현대 부르주아적 소유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정치 경제학’의 비판적 분석을 통해서만 답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치 경제학이라는 것은 저 소유 관계들 전체를 의지 관계들로서의 그것의 법률적 표현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실재적 형태에 있어서, 즉 생산 관계들로서 포괄하는 것입니다...프루동은...다음과 같은 대답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 “소유는 절도이다.” - 맑스, ‘P.J. 프루동에 관하여’ 가운데, 선집 3권 23쪽
이런 거지 않을까요? 얼마 전까지 한나라당 대표였던 정몽준의 재산이 1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2002년 월드컵 바람에 대통령 선거까지 나섰던 인물이지요.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 그의 재산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어쨌거나, 누구는 수조원의 재산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는데 누구는 재봉틀 놀리며 일하는 사이 어린 아이를 어디 맡길 방법이 없어 걱정이라고 하지요. 이에 대해 우리는 분노합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부자들만 살기 좋은 더런 놈의 세상...’
그런데 정몽준과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을까요? 왜 딸과 둘이 살고 있는 아빠는 늦은 밤까지 여자 아이를 집에 혼자 둘 수밖에 없어서 걱정을 안은 채 일해도 한 달 100여만 원 남짓 밖에 벌 수 없는 걸까요? 아동 성폭력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불안한 아빠와 아이.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모았다면 고귀하신 분들께서 그만큼 모으는 것은 불가능했겠지요. 자본가가 그만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가진 지위와 힘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것을 빼앗았기 때문이지요. 하나 밖에 없는 아이를 먹이고 키우기 위해 아빠는 열심히 재봉틀을 돌렸고, 아주 작은 대가만 받고 나머지는 자본가들이 가져가는 뭐 그런 거.
너무 부자인 자와 너무 가난한 자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속 터지는데, 그 뿌리를 가만히 보면 일한 자는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일하지 않는 자는 일하지 않고도 남의 것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소유나 재산을 그 많고 적음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런 식의 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 구조를 봐야겠지요.
세계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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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노동의 결과를 자기 것을 만들어 부를 축적하는 사회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죠.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습니다. 각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은 ‘너도 그래? 나도 그래. 우리 서로 힘을 합쳐서 더 부자 되자’하면서 세계은행도 만들고 IMF도 만들고 그러지요.
미국과 그의 똘마니 영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통해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주고 있지요. 전쟁과 남의 노동의 결과를 빼앗아 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구요?
한 발에 수억원씩 하는 토마호크 미사일을 이라크에 열심히 쏘아대신 미국.
그 돈은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흘러 가는 걸까요?
여러분들 자일리톨 껌 하나 씹어도 세금 내지요? 그 세금으로 무기 사서 전쟁하면, 결국 그 돈은 어디로 갑니까? 무기회사로 가지요. 무기 회사로 간 돈은 어디로 갑니까? 주주들한테로 가겠지요. 일해서 돈 벌어 껌 한통 씹었더니 그게 무기로 바뀌고 다시 그 분들의 고귀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지요.
이라크 노동자들이 열라 더운데서 일해서 석유 캐내면 미국과 영국의 석유 기업들이 후루룩 짭짭 하려고 저 난리를 피우는 거 아닙니까?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누가 버는 거지요.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한국은 형님 하시는 일 따라 다니면서 떡 고물 챙기려고 하지요. ‘미국도 걸려 있고, 석유도 있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을까...’하기도 하지요.
국제 정치의 비밀에 정통할 것, 각각의 자국 정부의 외교 활동을 감시하며 필요하다면 그것을 저지할 것 ; 만약 예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힘을 합하여 동시에 탄핵하고, 사인(私人)들의 관계를 규제해야 할 도덕과 정의의 단순한 법칙들을 민족들 교류의 지고의 법칙으로 삼아 시행하도록 할 것. - 맑스, ‘국제 노동자 협회 발기문’ 가운데, 선집 3권 13
좋은 말이죠? 사인들의 관계를 규제해야 할 도덕과 정의의 법칙을 민족들 사이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말 말이에요. 내 주머니 불리겠다고 옆집에 칼을 들고 쳐들어가 강도질을 해서는 안 되듯이 한 국가가 돈 벌이를 위해 다른 국가를 침략해서도 안 되겠지요.
반전운동을 한다거나 평화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아니어도 적어도 ‘네 이웃의 강도는 되지 말자’는 거지요. 경기장에서 만나 같이 즐겁게 공차며 웃는 이웃으로 족하다는 거지요.
영국의 노동자 계급은 프랑스와 독일의 노동자 계급에게 형제애의 손을 내밀고 있다. 그들은, 임박한 소름끼치는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만국의 노동자들의 동맹이 결국은 전쟁을 뿌리뽑고 말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공식적 프랑스와 공식적 독일이 형제 살해에 비견되는 투쟁에 뛰어들고 있는 동안, 노동자들은 양쪽에서 평화와 우의의 보고를 주고받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둘도 없는 위대한 사실이며 한층 밝은 미래에의 전망을 열어 놓는 것이다...이 새로운 사회의 국제적 원리는 평화일 것이다. - 맑스, ‘독일-프랑스 전쟁에 관한 총평의회의 첫 번째 담화문’, 선집 3권 174~175쪽
이 글을 쓴 게 1870년이니깐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44년 전이네요. 우리가 유럽의 전쟁 하면 흔히 1차, 2차 세계 대전을 생각하는데 그 전에도 무수히 많은 전쟁들이 있었고 국가가 있다가 없어지고 국경이 이리 저리 바뀌고 그랬죠.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 ‘싸우자’ ‘죽이자’ 구호를 외치며 전쟁 애호가가 되었지요. 그에 반해 또 많은 이들은 국가나 민족이란 말에 열광하기보다 서로를 죽이고 서로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했구요.
말은 좋은데...
말은 좋은데 어디 하루아침에 세상이 한꺼번에 변하겠냐구요? 당연히 그렇지 않지요. 저는 하느님께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하지도 않고 심판의 날을 믿지도 않습니다. 제가 믿는 건 사람과 세상이라는 게 언제나 변한다는 겁니다. 노력하면 좋은 쪽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나쁜 쪽으로 변하겠지요.
현재의 체제는 노동자에게 온갖 곤궁을 강요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경제적으로 재건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조건들과 사회적 형태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공정한 하루 작업에 대한 공정한 하루 임금!’이라는 보수적 표어 대신에 그들은 ‘임금 제도 철폐!’라는 혁명적 구호를 자신들의 깃발에 써넣어야 한다. - 마르크스, ‘임금, 가격, 이윤’ 가운데, 선집 3권 117쪽
고귀하신 분들이 보시기에 맑스의 사상이 위험한 이유는 이런 말들 때문입니다. 공정한 임금을 받지 말자는 말이냐구요?
요즘 노동자와 자본가(언론에서 말하는 경영계)들이 최저 임금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최저임금을 10원 올려 주겠다느니 말겠다느니 하고 있지요.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도대체 이딴 식의 최저임금으로 어떻게 생활하냐며 니들 같으면 살 수 있겠냐고 따집니다. 최저임금을 팍팍 높이자고 주장하지요.
맞는 말입니다. 이건희든 정몽준이든 정몽구든 최태원이든 지들한테 그 돈으로 살라고 해 보세요. 당장에 ‘나 죽는다’는 소리 나올 겁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소립니다. 비행기 조종사나 공기업 노동자들의 임금보다도 건물과 화장실 청소하는 여성들의 최저임금이 올라야지요.
그런데 임금이란 무엇입니까? 노동자에게 임금이 있다면 자본가에게는 이윤이 있지요.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돈을 태워 담뱃불을 붙일 수 있는 건 이윤이라는 것이 존재 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청소업체 노동자들을 후려쳐 먹는 자본가 없이 노동자들이 알아서 일하고 번 돈을 함께 나눠 쓰면 굳이 임금이란 것이 필요 없겠지요. 말 그대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겁니다.
임금 제도 아래서는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지요. 왜냐하면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를 그대로 받아 버리면 자본가들은 이윤을 챙길 수 없으니깐요. 고도리 칠 때 꼬는 놈이 있어야 따는 놈이 있는 거잖아요.
협동조합에 대해서...
일하는 놈과 챙기는 놈 따로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바꿔 보자고 생긴 것 가운데 하나가 협동조합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생협(생활협동조합)이란 이름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지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길지만 그대로 옮겨 볼게요.
(a)우리는 협동조합 운동을 계급 적대에 기초한 현재의 사회를 변혁하는 힘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한다. 그것의 커다란 공적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이라고 하는 빈궁을 낳는 전제적인 현재의 제도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의 공화주의적이고 다복한 제도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이다.
(b) 그러나 협동 조합 제도는, 개별 임금 노예가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구성하는 왜소한 형태에 한정된다면 결코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할 수 없다. 사회적 생산을 자유로운 협동 조합 노동의 대규모적이고 조화로운 하나의 제도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와 사회의 전반적인 조건의 변화가 요구되며, 이러한 변화는 사회의 조직된 힘, 즉 국가 권력이 자본가들과 지주들에게서 생산자들 자신에게로 옮겨지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다. - 맑스, ‘임시 중앙 평의회 대의원들을 위한 개별 문제들에 대한 지시들’ 가운데, 선집 3권 137쪽
단단하고 깨어질 것 같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대안학교 등을 생각하시고 활동을 하십니다. 저도 이런 저런 인연으로 이와 관련돼서 일하시는 분들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구요.
너는 너, 나는 나. 그리고 우리...
이런 일을 하시는 몇몇 분들의 고민도 그렇고 저의 고민도 그렇고 뭔가 다른 것, 대안이 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끼리끼리’가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습니다. 다른 세계에 쉽게 휩쓸려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끼리끼리’가 필요하기도 하구요. 세상을 훼까닥 바꾸기는커녕 현실에서는 작은 조합 하나 제대로 운영하는데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작은 대안과 큰 사회 구조의 변화가 함께 진행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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