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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10. 7. 1. 21:12

1. 기억

 

1990년~1991년 겨울, 대학 입학식을 하기 전부터 난 선배들과 함께 데모질 하러 다녔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그리고 1991년 1월 어느 날, 나는 단과대학 학생회 사무실에서 테레비를 봤습니다. 뉴스에서는 미국이 이라크를 두들겨 부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폭격으로 불타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전... 지금 생각하면 아주 부끄럽게도... 그저 그 장면을 아무 생각 없이 무덤덤하게 바라 봤습니다. 그저 남의 일이었던 거지요...

 

2002년의 어느 날, 인도의 한 가게에서 스프라이트를 사 먹고 있었습니다. 더운 날 사먹는 스프라이트는 얼마나 맛나던지... 가게 라디오에서는 부시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하는 얘기가 흘러 나왔습니다.

어처구니없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 보고 악의 축이라고 하는 건지... 뻔뻔하기가 기네스북감입니다.

 

2. 분노

 

이 책을 읽으며 분노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전 평화를 원하지만 분노 없이는 평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분노합니다.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굶기도 병들게 하고 눈물짓게 한 것에 분노합니다.

 

나는 분노합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직 거짓말로 일관했던 정부들과 정치인들과 언론들과 지식인들에게 분노합니다.

 

3. 범죄

 

이 책은 1990년부터 시작된 미국+영국+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와 군사공격에 관한 기록입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재침공을 앞두고 2002년에 나온 책이죠.

 

경제 제재야말로 대량 살상 무기다. 1991년 3월 제3차 걸프전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러 이라크를 방문한 유엔 조사단은 폭격 때문에 이라크는 “산업화 이전 시대”로 되돌아갔다고 결론지었다...경제 제재 때문에 이라크는 많은 기본 생필품을 수입할 수도 없다. 군사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살충제와 비료도 수입 금지 대상이다...바그다드 주재 유엔 구호담당 프로그램 부국장인 파리드 자리프는 최근에 이렇게 주장했다. “연필에서 탄소를 추출해 비행기에 덧칠하면 레이다에 걸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연필도 수입할 수 없다. 나는 군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이라크 학생들에게 연필을 줄 수 없다니 매우 혼란스럽다.” - 328~329쪽

 

식량, 의약품, 상하수도 시설 등의 부족과 파괴 그리고 수없이 뿌려댄 열화우라늄탄은 이라크인들에게 영양실조를 퍼뜨렸고, 의사들은 죽어가는 환자를 보고서도 치료할 약이 없어 손을 놓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영국+유엔이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때려잡겠다고 10년 넘게 진행한 경제제재와 군사공격. 물론 그들이 때려잡은 것은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아무 죄 없는 멀쩡한 이라크인들.


 


미국+영국+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와 군사공격의 영향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이라크 어린이

 

이라크의 유아 사망률

연도

5세 이하

1세 이하

1960

171

117

1970

127

90

1980

83

63

1990

50

40

1995

117

98

1998

125

103

1960년에서 1990년 사이의 사망률 추세에 근거해서 유니세프는 1991년부터 1998년까지 5세 이하 어린이 약 50만 명이 추가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 296쪽

 

암이 열화우라늄 노출이 가져오는 유일한 의학적 문제는 아니다. 만약 열화우라늄이나 파편이 임신한 여성의 혈관에 들어가면, 태반을 관통하면서 태아에 손상을 끼칠 수 있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서는 선천성 기형아 수가 증가해 왔다. 예를 들어, 살마 알-하피스 박사는 무릎이나 눈, 귀 등이 없는 유전적 기형아들의 숫자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316쪽

 

4. 지난 일

 

물론 누구는 이런 일들이 이미 지난 일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곁에서 바라봐야 했던 이들에게도 이런 일들이 과연 그저 지난 일일까요? 치료할 약도 돈도 없이 암으로 죽어가는 이들에게도 과연 그저 지난 일일까요?

고야, <1808년 5월 3일>

 

설사 우리가 그것을 그냥 ‘지난 일’이라고 부르더라도 지났기 때문에 잊어도 되고, 지났기 때문에 끝난 일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요?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고, 현재는 미래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 제국주의 전쟁으로 죽어간 이들, 죽어가고 있는 이들, 앞으로 죽어갈 이들.

 

저녁이 되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려고 모여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남성들은 얼른 자리를 떴다. 되도록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방공호에 몸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지역에서 온 피난민들에게도 자리를 내주려면 그래야만 했다. 어머니․할머니․갓난아이․어린이․십대 들은 맹렬한 공습 속에서도 그나마 안전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미군의 스마트탄 두 발이 아마리야 방공호 환기구에서 새나오는 불빛을 발견했다. 출입구가 봉쇄된 탓에 온도가 화씨 900도[섭씨 약 482도]까지 치솟았다. 이라크인 4백 명 이상이 죽었다. - 228~229쪽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부시,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등이 있어야 할 곳은 우아한 난민 구호 기금 마련 행사장이 아니라 감옥입니다. 미국과 영국과 유엔은 이라크인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감추어졌던 진실들은 밝혀져야 합니다. 권력과 자본의 나팔수로 이라크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은 이제라도 반성문을 써야 합니다.

 

오늘이든 1년 뒤든 100년 뒤든, 언제까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