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셀림을 만나 오랜만에 불광역 근처에 있는 까치 만화방에 가서 오랜만에 [피아노의 숲]을 봤습니다. 가기 전에 불광 시장에서 튀김과 오뎅 국물을 꿀꺽하고 ^.^
[피아노의 숲]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마음 뭉클하고 눈이 찔끔하고 웃기도 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몇몇 만화에서 보듯이 주인공이 시골 어느 이름 없는 학교에 다니다 조금씩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도 대회, 전국 대회를 거쳐 세계로 나아간다는 식의 내용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주인공 카이의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그러니깐 그가 술과 성매매와 폭력이 난무하는 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 당했던 시절을 이겨냈다는 성공담 때문만도 아닐 겁니다.
친구 슈우헤이가 ‘나는...반드시 이길 거야!’라며 연습을 열심히 하고, 제 성질 못 이겨 헤맬 때도 카이는 정말 음악과 피아노를 사랑합니다. 어릴 적, 혼자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혼자 뚱땅거리며 놀다 사랑에 빠진 거였죠.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사람과 피아노의 만남 때문이었을까요... 둘은 늘 함께 다닙니다. 연주를 하던 도중 오래 전 벼락 맞아 불타버린 숲의 피아노를 떠올리며 카이는 생각합니다.
난 피아노를 잃지 않았어. 선생님이 그랬잖아. 그 날부터... 그 순간부터... 숲의 피아노는 나와 함께 있다고... 어쨌든 그건 내 피아노니까. 난 그 때... ‘내 피아노’를... 내 안에 담았어...
그렇다고 카이가 저 혼자 막무가내로 피아노를 익힌 것은 아닙니다. 아지노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불같은 성질, 그러니깐 피아노에 집중하면 신발을 벗는 버릇까지 고쳐가며 피아노를 배웠지요.
그에 비해 아버지가 유명한 음악가인 슈우헤이는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쌓습니다. 하지만 늘 카이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지요. 기본을 잘 익혀 악보대로 잘 치고 곡 해석도 잘 하지만 카이가 가지는 감성과 표현력이 없었던 거에요.
카이의 연주를 듣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째서 카이의 피아노는 이렇게 다른 걸까. 기교나 취향 때문이 아니야... 다른 피아노와 어딘가 달라... 그래, 숲이야! 어둠이 내린 숲을 살며시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나뭇잎들의 속삭임.
물론 만화니깐 사람들의 감동이 크게 표현된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피아노 한 대 가지고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냐 싶을 수도 있구요.
그런데 연주도 아니고, 만화를 보는데도 마치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는 것 같더라니깐요. 카이가 베토벤의 ‘월광’을 치면 월광이 들려오고, 쇼팽의 ‘녹턴’을 치면 녹턴이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아쟁 하나가 사람 마음을 후벼 파기도 하고, 북 하나가 사람을 막 흥분시키기도 하고, 기타 하나가 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보냈던 오랜 연인을 떠올리게 하듯 말이에요. 그런 만큼 월광도 녹턴도 밤에 조용히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정말 그 소리에 빠져드는 것 같아요. 귀로 소리가 들어와 머릿속에 막 여러 장면들을 펼치구요.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사람 속 터지게 한다는 거에요. 예전에 김혜린의 [불의 검]이 한참 사람 속터지게 하더니 또... 지금까지 17권이 나왔는데 15권 2008년, 16권 2009년, 17권 2010년 출간... 뭐 이런 식이에요. 재미난 드라마를 1년에 한번 씩 틀어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ㅠㅠ
오랜만에 쇼팽의 [녹턴]을 듣고 있어요.
외로운 카이를 쉬게 했던 숲 마냥, 카이가 있어 빛났던 피아노 마냥, 숲과 카이와 피아노를 포근히 감쌌던 달빛 마냥 우리들도 누군가를 품고, 누군가의 품속에서 살았으면...
쇼팽의 녹턴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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