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베네수엘라라는 나라에서 35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엘 시스테마’라는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기록입니다. 11명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30여 만 명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합니다.
삶의 기회들
함께 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은 주로 가난한 동네 출신이지요. 자신이 태어난 곳이 가난한 동네라고 해서 그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자신들의 동네는 길을 가다 까닭 없이 총에 맞고, 총격전이 시작되면 침대 밑에서 자야하고, 학교에도 총알이 날라 오는 곳입니다. 마약과 폭력이 넘치는 곳이지요.
한 어머니는 학교 가는 아들에게 ‘엄마가 해 줄 수 없는 것을 거리에서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알았지?’라고 당부합니다. 한 쪽의 사람들은 휴가철이 되면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한 쪽의 사람들은 아이들이 길을 나설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어야 하는 셈이지요.
아주 큰 쓰레기 매립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린이/청소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쓰레기를 뒤집니다. 엘 시스테마는 이곳의 사람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기 위해 활동을 시작하는데, 한 사람이 ‘사회 복지 차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 교육을 한다’라고 하더라구요.
흔히 사회 복지 하면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먹어야 하고 치료 받아야 하지요. 그리고 더 좋은 사회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까지 꿈과 희망을 심는 사회겠지요. 누군가 건네 준 밥이 희망을 만들기도 하지만 희망이 자신의 밥을 만들기도 하니깐요.
‘엘 시스테마’에서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을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피아노, 바이올린, 트럼펫 등 여러 악기를 손에 쥐지요.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 나오듯이 오케스트라는 혼자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소리를 냅니다. 내가 소리를 잘 내기 위해서도 옆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요.
어떻게든 남들에게 이겨야 하고, 1등을 해야 하고, ‘남’이란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을 의미하는 사람들에게는 함께 어울려 소리를 내는 것이 낯선 일일 수도 있을 겁니다. 내 소리가 내 옆 사람의 소리보다 커야 하는데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내 소리를 낮춰야 하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요.
음악과 즐거움
클래식 음악하면 뭔가 양복 빼 입은 사람들이 조용히 숨죽인 채 우아한 소리를 듣는 것쯤으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하 클래식이란 게 꼭 그런 건 아니구나’라고 하실 겁니다.
잘 하는 놈이 노력하는 놈을 못 이기고, 노력하는 놈이 즐기는 놈을 못 이긴다고 했던가요?
연주를 하다 지휘자가 신이 나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연주자가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도 모자라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추며 관객들과 어울리고, 연주자들 위로 수많은 꽃잎이 쏟아지는 장면을 보면 연주자고 지휘자고 할 것 없이 모두 음악의 즐거움을 통해 하나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많은데 악기가 모자라 종이로 악기 모형을 만들어 음악을 배우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잘 연주해서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학교에 가고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는 것 이전에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즐길 줄 아는 거지요. 다른 게 좋은 게 아니라 음악 그 자체가 좋은 겁니다.
만화 [피아노의 숲]에서 카이가 음악을 그 자체로 즐긴다면 슈우헤이가 카이를 이기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과 같지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탁구가 빵 만드는 것 그 자체를 좋아한다면 구마준이 김탁구를 이기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사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것도 아닌 사는 것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어제, 오늘 베토벤 교향곡 9번의 3악장이 좋아서 3악장만 몇 번 듣고 있습니다. 좋은 연주란 작곡가가 그려 논 음표를 잘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 마음을 듣는 이에게 잘 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가 음악을 통해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것도 음악이 음표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졌기 때문이겠지요. [엘 시스테마]에서처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노래를 하고, 그 노래가 사람을 울릴 수 있는 것도 음악이 콩나물 대가리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기 때문이겠지요.
희망이란 것
어제 밤 11시가 넘어 삐리릭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문자가 왔어요. 동네 사는 한 분이 커피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구요. 어디냐고 문자를 보내니깐 우리 집 쪽으로 오고 계시다고 해서 부랴부랴 커피를 타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동네 놀이터로 갔습니다. 잠깐 얘기가 오가는데 그 분이 물으시더라구요.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요?”
“그럴 때도 있지요”
“외로울 때는 어떻게 해요?”
“그냥... 잠도 자고... 근데 혼자 지낸 게 오래 돼서...”
“맞아요. 꼭 혼자 있다고 외롭고, 같이 있다고 안 외로운 건 아닌 것 같아요...”
가을을 기다리는 늦은 밤, 외로운 마음과 함께 얘기를 나누다 집으로 왔습니다. 내내 이 생각, 저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뭐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다만 바램이라면, 늦은 밤 불쑥 찾아와 커피 한 잔 나누자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더라구요.
영화를 보고 나니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잘 나고, 가진 것과 아는 게 많아서가 아니라 모든 게 채워지고 갖춰지지 않은 속에서도 친구를 찾고, 행복을 찾고,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는 것도 많고 책도 많이 읽고 사회문제에 대해 이것저것 판단도 잘 하시는 데 그 마음속에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깊게 깔려 있는 분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됩니다. 안타깝지요. 저리 많은 능력을 가졌고, 말도 잘 하고, 똑똑한 데 정작 자기 마음 하나 편안히 할 수 없을까 싶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남들 위에 올라서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게 말을 통해서든 힘을 통해서든 말이죠. 왜냐하면 외롭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받고 싶고, 시선을 받으려면 높은 곳에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지요.
두려운 사람은 행복을 느끼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혹시나 다칠까 상처 받을까 싶어 음악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인생이든 그 무엇에도 깊이 빠지지 못하지요. 그저 멀찍이 서 팔짱낀 채 이러지 저러니 훈수만 두려고 합니다. 누구도 무엇도 믿지 않는 사람이 되기도 하구요.
외롭고 두려운 자신을 감추기 위해 남들 앞에서 더 과장해서 말하고, 더 강하게 말하고, 더 큰 소리로 말하게 되지요. 위험을 느낀 뱀이 사람을 물듯이 말입니다.
바다가 아무 말 없이 온갖 물을 품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넓고 깊기 때문이겠지요.
희망이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요? 다른 이를 향해서는 넓은 마음을 갖고, 더 나은 삶을 향해서는 강한 힘을 갖는 것.
음악을 마음으로 즐기되, 더 잘 즐기기 위해서라도 오랜 시간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실력을 키우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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