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가자지구 봉쇄
1) 봉쇄의 시작 - 2007년 6월 이전
(1) 전개과정
1989년 6월부터 이스라엘은 가자 주민들에게 신분증을 발급하여 신분증을 가진 사람만 가자지구를 떠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체포․구금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신분증을 발급하지 않았습니다. 1991년에는 이스라엘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가자 주민들에게 개별 허가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인들이 알 아크사 인티파다를 시작하자 허가 받은 일부 노동자들을 제외한 다른 주민들의 이동을 차단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관제탑을 폭격하고, 2002년에는 활주로를 파괴함으로써 가자 국제공항을 폐쇄합니다. 2004년에는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 사이에 장벽을 건설합니다. 2005년 9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한 이후 2005년 11월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동과 출입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Movement and Access’을 체결합니다. 이를 통해 사람과 물품 이동 조건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2006년 1월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한 이후 3월부터는 이스라엘+미국+EU 등이 외국에서 자치정부와 구호단체 등으로 보내던 모든 자금의 흐름을 차단하며 봉쇄를 강화 합니다.
(2) 사례와 영향 - 아흐마드 씨의 경우
이 사례는 제가 직접 겪은 일로 이스라엘의 봉쇄와 팔레스타인인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포격을 퍼붓던 2006년 2월14일, 가자지구 난민촌에 있는 한 팔레스타인인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날 저녁 7시가 되고 8시가 되자 가족들은 아흐마드 씨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아흐마드 씨는 당시 나이 55세로 이스라엘 지역 수도관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습니다. 허가를 받으면 이스라엘 지역에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거기서 잘 수는 없기 때문에 모든 가자 출신 노동자들은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흐마드 씨도 예외는 아니어서 평소에 저녁 7시쯤이면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9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노동자들이 가자지구로 돌아오는데 이스라엘이 검문소를 닫아거는 바람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군인들과 한판 붙고 나서야 검문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밤 9시에 돌아온 아흐마드 씨가 다시 집을 나선 건 같은 날 밤 11시였습니다. 아흐마드 씨에게 집에서 쉴 시간은 평소에는 4시간, 이날은 2시간 주어졌던 것입니다. 늦게 집으로 돌아와 밤늦게 다시 집을 나서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봉쇄와 검문소 때문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이스라엘 쪽으로 나가는 에레즈 검문소 통과에 1시간이 걸릴지, 5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어 미리 검문소에 나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2) 전면 봉쇄 - 2007년 6월 이후
(1) 전개과정
2007년 6월, 쿠데타에서 실패한 파타는 서안지구에서 하마스를 무시하고 새 자치정부를 구성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미국+EU는 자치정부에 대한 경제 봉쇄를 중단합니다. 반대로 하마스가 파타를 가자지구에서 쫓아내자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모든 검문소를 닫아걸고 전면 봉쇄에 들어갑니다. 2009년 12월에는 이집트가 가자지구와의 국경에 약 10km 길이의 철제 장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굴을 차단할 목적으로 지하 약 18m까지 내려갑니다.
(2) 사례와 영향 : 2007년 6월 - 2010년 7월까지
① 이동
과거에는 가자지구 북쪽에 있는 에레즈 검문소나 남쪽에 있는 가자-이집트 국경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나 이집트 쪽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2007년 6월 이후에는 특별 허가를 받은 소수의 환자 외에는 나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2010년 1-6월까지 3,092명이 이집트로 나갔지만 전면 봉쇄 직전에는 매달 4만 여 명이 이집트로 나갔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외부를 봉쇄하고 있어 가자전쟁 과정에서 가자 주민들은 피난조차 떠날 수 없었습니다.
② 식량
2006년 초 53%, 2008년 초 56%의 가자 주민이 식량 공급 불안정에 시달렸으나 2009년 초가 되면 그 수치가 75%로 올라갑니다. 식량 공급이 불안정하게 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식량의 양을 제한하였고, 주민들의 수입은 감소한 반면 국제 곡물 가격은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전쟁 과정에서 농지를 파괴해 가자지구 자체 식량 생산량도 줄었습니다. 밀과 같은 필수 식료품도 수입을 제한하여 유엔의 팔레스타인 난민 지원 기관인 UNRWA도 지원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가축 수입 제한으로 육류 가격도 상승하였습니다.
가자지구-이집트 사이의 땅굴을 통해 가축을 수입하기도 하지만 가축을 위한 의약품 수입을 가로막아 가축 질병이 증가하였습니다. 2009년 현재 150만 가자 주민 가운데 약 1백1십만 명이 UNRWA나 세계식량계획WFP으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습니다.
분유․야채․커피 등도 수입을 제한하였으며, 조리용 가스 수입이 줄어 식료품 가공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가난과 실업 등의 이유로 구입하는 식료품의 질이 떨어졌고, 좋지 않은 식량 상황은 특히 어린이․임산부․환자 등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③ 경제
트럭 화물량을 기준으로 보면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화물이 2007년 1-5월 사이 1일 평균 583대 분량이던 것이 2009년 5월에는 1일 평균 123대, 6월에는 1일 평균 99대 분량으로 감소하였습니다. 수입량의 대부분은 식량이며 산업․농업․건축 관련 자재들은 수입 차단하였습니다. 전면 봉쇄 이전에는 매일 약 70대의 트럭이 수출품을 싣고 가자를 떠났으나, 2007년 6월 전면 봉쇄 이후 2010년 6월까지 수출품을 싣고 떠난 트럭은 모두 259대입니다.
일별 평균 수입 화물량 (단위 : 트럭/대) | |||||||||||
2007년 |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631 |
562 |
479 |
538 |
475 |
230 |
160 |
131 |
83 |
98 |
96 |
100 |
2008년 |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80 |
77 |
148 |
87 |
79 |
90 |
219 |
155 |
176 |
123 |
23 |
35 |
2009년 |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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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127 |
132 |
115 |
123 |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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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묘목․가축․연료 등의 수입을 차단하여 모든 농업 분야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꽃과 딸기 등 일부 품목을 제외 하고 모든 수출이 봉쇄되어 농민과 농업 노동자에게 타격을 입혔습니다. 농산물 수출이 막힘으로써 생산물이 가자지구 안에 남게 되고 가격은 하락하고 농민 소득은 감소하였습니다. 일부 농민은 팔 수 없게 된 농산물을 가축 먹이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경계선에서 가자지구 안쪽으로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150m의 접근 금지 구역을 설정하고는 농민들이 이 근처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하면 사격을 가하는 등 농민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또 접근 금지 구역의 거리와 관계없이 경계선에서 1-2km까지 이스라엘은 아무 곳이나 사격을 가함으로써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결국 2007년 6월 봉쇄 이후 가자지구-이스라엘 경계선 근처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민들이 어업을 할 수 있는 거리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2006년 10월에는 어업 가능 거리를 해안으로부터 약 18km에서 약 10.8km로 줄이더니, 2009년 1월에는 약 5.4km로 다시 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리와 관계없이 어민들을 납치하고 어선에 사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가자 어민들의 어획량은 2007년 4월 292톤, 2008년 4월 154톤, 2009년 4월 79톤으로 감소하였고, 어류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한 반면 어민들의 수입은 감소하였습니다.
수출입을 차단하면서 가자지구에서 2007년 5월 이후 2년여 동안 제조업․상업․농업․서비스업 등 각 분야에서 약 12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가자지구 실업률은 2007년 2/4분기 32.3%에서 2009년 1/4분기 41.5%. 2010년 6월 현재 55%에 이릅니다. 적신월사가 2008년 5월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가구의 70% 이상이 1인당 하루 1 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40% 가량은 1인당 하루 0.5 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자지구에 40여개의 은행이 있는데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있는 본점에서 가자지구에 있는 지점으로 송금하는 것을 차단하였습니다. 은행이 이용자들에게 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게 되어, 공무원이 월급을 받는 경우 통장 액수는 올라가지만 은행 현금 부족으로 제대로 출금을 못하기도 했습니다.
④ 보건의료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으로 사망자․부상자․장애인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군사공격으로 의료시설을 파괴 하였지만 자재 부족으로 의료시설 신축 및 보수가 어렵습니다. 또 석유 공급 제한으로 발전소 운영이 제한되어 병원에도 제때 전기를 공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병원은 자체 발전기 이용을 늘렸지만 발전기마저 고장 났고, 전기 공급에 민감한 의료 기기도 덩달아 고장 났습니다.
전기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약품 보관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스라엘은 x-ray 같은 진단용 장비조차 군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수입 차단하고 있습니다. 다른 수술용 장비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며, 필수 의약품의 재고마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의료인들이 외부로 여행할 수 없게 해 새로운 기술을 배울 기회도 빼앗았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서안지구 등 외부 병원에 가야 하는 환자들의 이동 신청을 거부함으로써 많은 환자들이 치료의 기회를 놓치거나 사망하였습니다. 외부 병원에 일단 사전 예약을 해야 이동 허가 신청을 할 수 있는데, 허가 여부에 대한 아무런 대답 없이 시간을 질질 끌어 환자가 예약 일정을 맞추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환자는 다시 외부 병원에 예약을 하고, 다시 이동 허가 요청을 이스라엘에게 해야 하며 환자에게는 아까운 시간이 계속 지나갑니다. 이집트-가자지구 국경을 통해 이집트 쪽 병원으로 가려는 경우는 이집트 정부의 허가가 나오더라도 국경 검문소가 가끔 열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⑤ 건축과 에너지
이스라엘은 2009년 9월부터 2010년 7월까지 가자지구에서 약 5천 채의 집을 완전 파괴하고, 약 6천5백 채를 부분 파괴하였습니다. 가자전쟁 기간 22일 동안에만 6천 채 이상의 집을 완전(3,540) 또는 부분(2,870) 파괴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시멘트․자갈․나무․파이프․유리․철근 등을 하마스가 군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수입을 금지 시켰습니다. 전면 봉쇄 이전인 2007년 1-5월 사이 매월 평균 트럭 7,400대 분량을 수입하던 것이 끊긴 것입니다.
건축 자재 반입이 제한됨으로써 파괴된 주택과 건물에 대한 복구가 어려워졌고, 난민들은 이웃이나 친척집․텐트 등에서 생활 하였습니다. 땅굴을 통해 건축자재를 수입하기도 하나 수입 물량 부족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결국 일부 주민들은 흙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건축 자재를 공급하던 공장이나 기계 등도 파괴하였습니다.
2007년 9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적대적 존재’로 선언한 이후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디젤․주방용 가스․산업용 석유 등 각종 에너지 공급을 줄였습니다. 에너지 공급 감소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가자지구에 하나 있는 발전소입니다. 2006년 6월 이스라엘의 발전소 폭격으로 발전량이 이미 줄어 있던 상태에서 석유 공급 감소로 다시 발전량이 줄어든 겁니다. 많은 주민들이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은 전기 송전 시설마저 파괴하였습니다.
하지만 변압기․고압선․스위치 등을 수입할 수 없어 수리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주민들도 정기적으로 하루 4~8시간씩 전기가 끊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전기 공급의 감소로 더운 날씨에도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할 수 없게 된 것은 물론 상하수도 시설 운영 등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⑥ 교육
가자전쟁 동안 이스라엘은 280여개의 학교를 파괴했습니다. 보수 및 재건축을 위한 자재가 공급 되지 않아 학교 개보수가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교과서․종이․각종 학습교재 등의 반입을 가로 막거나 시간을 끌었습니다. 전쟁과 학교 운영 중단 및 축소의 영향으로 학생들이 제대로 학습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2008년 1월 이스라엘은 아무도 공부를 위해 외부로 나갈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가 항의가 계속되자 아주 소수에게만 이동을 허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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