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행복, 그거 어디 있는 거야?

순돌이 아빠^.^ 2010. 12. 21. 08:58

(인디고에 보낸다고 쓴 글 http://www.indigoground.net/index.html )

 

10여 년 전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는 대한민국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넓은 세상을 보자고 2002년 인도로 갔지요. 수도, 전기, 관공서, 언론 등등이 아무 것도 없는 불가촉천민 마을의 무료병원에서 9개월 정도 자원봉사를 했답니다. 어제 살아 있더니 오늘 죽어 있는 사람도 있었고, 발이 썩어 들어가는데도 어쩔 수 없이 지켜만 보던 사람도 있었고, 상처 난 귀에 벌레가 살던 아이도 있었지요.


동네 사람들과 함께 ^^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고 마음 아픈 사건들이 많았지만 인도에 있으면서 제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은 것은 그곳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어요. 어떤 분이 외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밥 먹고 가라고 저를 집에 부른 일이 있었어요. 큰 접시 위에 수북이 밥을 쌓아 내놓았는데 반찬이라고는 소금 밖에 없더라구요. 하지만 반찬이 소금 밖에 없었던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좋더라구요.


인도를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또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신문을 넘기는데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마구마구 괴롭히는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 왔어요. 그 순간 정말 머리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이건 아니야. 내가 뭔가 해 봐야겠어’라는 생각과 함께. 그 쿵 소리 때문에 2003년부터 팔레스타인평화연대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하고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도 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네요.

 


생선을 팔고 있던 아저씨. 웃는 모습이 정말 동네 아저씨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처음엔 멀리서 얼굴만 봐도 좋지만 조금 지나면 함께 영화도 보고 싶고 손도 잡아 보고 싶잖아요. 더 가까이 느끼고 싶은 거지요. 제게 팔레스타인이 그랬어요. 그래서 2006년과 2009년 두 번 팔레스타인에서 지냈답니다. 팔레스타인에 직접 가보니 책에서만 보던 그들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졌고 인터넷으로만 듣던 그들의 얘기가 마음에 더 깊이 남더라구요. 처음엔 책과 인터넷에서만 보던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알고 싶어서 갔지만 지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정 때문에라도 제 삶에서 팔레스타인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었네요.

얼마 전에 팔레스타인에서의 저의 경험을 담은 책이 세상에 나왔어요. 그 책을 읽어보고 저희 엄마가 전화를 했었어요.

 

민아, 나는 니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 위험하고 힘든 곳에 가서 그 사람들과 생활하겠냐. 그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그런 운동을 하고 세상에 그 일을 알려야지. 그런데 그게 왜 내 아들이어야 하는 거냐. 니가 그러니깐 돈도 못 벌고 장가도 못 가는 거 아니냐.

 

저는 한 번 씩 ‘너는 현실적이지 못해’라는 말을 들어요. 남들은 좋은 대학가고 돈 벌고 좋은 자동차 사고하는데 신경을 써도 모자라는데 인류가 어떠니, 평화가 어떠니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 들린다는 거지요. 하지만 더 비싼 핸드폰이, 더 좋은 자동차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삶의 의미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을 위해 소중한 삶의 시간을 쓰는 것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고 공허한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 아픈 소리 내며 상처 받고 있을 때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아픔을 덜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 살면서 정말 한 번 해볼 만한 일 아닐까요? 까짓 거 기왕 한 번 사는 거 사람 노릇 해 보다 죽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꼴까닥 숨이 넘어갈 때 ‘많이 부족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산 것 같아’라고 지난날을 돌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없이 모두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사는 것이 제게 삶의 행복을 가져다 줄 거라 믿구요.

 

혼자 집안에서 창문 꼭꼭 닫아 놓고 밖에 나가지 않으면 길에서 잠을 잘 일도 험한 꼴을 봐야 할 일도 없겠지요. 반대로 겨울날에도 찬바람 맞을 각오로 대문을 활짝 열고 길을 나서는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겠지요. 더 넓은 세상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의 행복도 만날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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