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이 가고 2011년이 시작되었습니다. 2011년이면 1991년 미국이 이라크를 처음 침공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쿠웨이트 해방을 내세우며 전쟁을 시작했고,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군을 몰아내는 것도 모자라 이라크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의 사람이 죽었지요. 유엔과 함께 진행한 경제봉쇄로 또 다시 수십만일지 몇 만일지 모르는 사람들을 죽이고 이라크 사회를 짓밟았습니다. 그러다 2003년 다시 이라크를 침공하고 점령했지요.
2011년이면 2001년 미국에서 9․11이 벌어진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미국이 이라크 사람들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어지간하면 9․11이 뭔지는 다 알지요. 샤룩칸이 나오는 인도 영화 가운데 [마이 네임 이즈 칸]이란 것이 있습니다. 9․11 이후 다른 미국인들이 무슬림들을 차별하고 괴롭히자 미국에 사는 무슬림 샤룩칸이 ‘내 이름은 칸이고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라크인들을 죽인 건 어쩔 수 없고 몇몇 사람들이 한 짓이지만, 9․11은 계획한 것이고 모든 무슬림의 책임이다라는 식의 태도에 ‘이의 있습니다’라고 말한 거지요.
살아남기
한해의 끝이나 시작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의식(?)을 거행하지요. 송년회나 신년회를 하기도 하고 한 해를 반성하거나 새해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저는 영화 [거북이도 난다]를 보는 것으로 2011년 새해를 맞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벌써 너덧 번 봤습니다. 그냥 보기도 하고 영화 보기 모임에서도 보고 학생들과 함께 보기도 하고 그랬지요.
영화의 공간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인 거주 지역이고, 시간은 미군의 침공 바로 몇 주 전입니다. 쿠르드인들은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지에서 살면서 독립과 자치를 요구하다 각 지역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았지요. 미국은 독립을 미끼로 쿠르드인들을 이리 저리 이용하기도 했구요.
영화에는 할랍자 출신 3명의 아이들이 나오는데 할랍자는 1988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르드인 수천 명을 화학무기로 죽였던 곳입니다. 이 때 이라크 정부가 사용한 화학무기는 미국산이고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사용했었지요.
동네 아이들은 땅에 묻혀 있는 지뢰를 파서 돈을 법니다. 지뢰를 파서 어떻게 돈을 버냐구요? 여기서 유엔이 등장하지요. 유엔은 지뢰제거 비용으로 많은 돈을 지출합니다. 그 많은 지뢰를 어떻게 제거 하냐구요? 땅 속에 있는 지뢰를 가져오면 돈을 주겠다고 하니 살 길을 찾기 위해 아이들이 지뢰를 캐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손과 발을 잃기도 하고 죽기도 하지요.
미국과 이탈리아 등이 이라크로 지뢰를 수출하면 이라크 정부는 미국 등에 석유를 판 돈으로 지뢰를 사서 파묻고, 다시 이라크 아이들은 이 지뢰를 캐서 미국이 움직이는 유엔에다 가져다주고 생활비를 버는 거지요. 남는 것은 전쟁으로 돈 벌고 힘 키운 놈들과 잘려나간 이라크인들의 손과 발.
희극과 비극
영화를 희극이냐 비극이냐라고만 나눈다면 [거북이도 난다]는 비극에 가깝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안 됐어’ ‘슬프다’라고만 하기에는, 영화 속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왠지 내가 이 영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것을 던지는데 그건 주인공의 삶이 나에게 던지는 말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에 반해, [거북이도 난다]는 우리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나와 조금 멀리 있는 것은 맞지만 멀리 있다고 외면하기에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거지요. 그래서 때론 이런 영화가 더 마음 불편케 하는 겁니다. [원스]에서 애틋한 마음을 가진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모습을 볼 때의 안타까움과는 또 다른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인베이젼]과 [이퀄리브리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감정을 가진 인간은 제거 대상이 되고,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감정 없는 인간들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감정이란 사실 대단한 게 아닙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도와달라고 할 때 조금 관심 가지고,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가지는 거지요.
2011년 한 해를 시작하는 의식마냥 제가 [거북이도 난다]를 본 이유는 어쩌면 저의 감정이 아직도 살아 있느냐 아니냐를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한 해의 시작을 골치 아프고 마음 무거운 영화 보다는 재미나고 뭔가 희망이 있는 영화로 시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때론 뿌리 없는 가벼운 희망보다는 무거운 현실에 나를 비춰 보는 것이 나를 잘 알 수 있게 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더 생각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많은 시간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 왔으니 때로는 다른 이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것이 조금은 더 성숙하고, 조금은 더 균형 잡힌 인간이 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도 되겠지요.
이유야 무엇이든 이 영화를 다시 본 것은 잘한 것 같습니다. 한해의 시작을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내게 무엇이 이익인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무엇이 우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구요.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빕니다. 그 행복이 단지 인사치레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 지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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