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4,320원을 받으면서 일을 합니다. 시간당 4,320원으로 하루 8시간을 일하면 34,560원입니다. 한 달 30일을 일하면 1,036,800입니다.
위는 매일경제가 실은 [정몽구, 이건희 제치고 최고 주식부자]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8조원이 얼마나 큰 액수냐면 시간당 4,320원을 받는 노동자가 하루 8시간, 한 달에 30일 꼬박 일한다고 했을 때, 7,716,049명분의 월급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노동자 쪽에서는 최저임금을 올리자고 하고 있고, 자본가들은 최저임금을 못 올려 주겠다고 하다가 겨우 30원 올려주겠다고 합니다. 30원 올리면 시간당 4,350원이고 하루 8시간 하면 34,800원, 30일 일하면 한 달에 1,044,000원입니다. 정몽구나 이건희 보고 한 달에 그 돈 받아서 살아 보라고 하세요.
흔히 말하는 ‘재계’에서 최저임금을 어떻게든 안 올려 주려는 이유는 정몽구나 이건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겠죠. 맨 밑바닥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을수록 높으신 분들의 주머니에 쌓이는 게 많을 테니까요.
개념, 사회구성체
이 책의 대상은 ‘정치’, 특히 CMP(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의 국가라고 하는 정치적 상부구조이다.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이 부문이 지니는 개념의 생산이며, 자본주의 사회구성체 안에서 정치와 관계되는 보다 구체적인 개념들의 생산이다. - 17쪽
뉴스를 보면 수많은 정치 뉴스들이 있습니다. 이명박이 어떻게 했고, 국회에서 무슨 법을 통과 시켰고 등등. 그런 뉴스들은 정치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것이지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정치나 국가에 관한 개념을 갖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뉴스에서 말하는 정치와 국가가 진짜 정치와 국가인지부터 해서 이명박과 손학규는 경쟁자인지 친구인지 등을 생각하는데 더 나은 안목을 갖게 됩니다.
사고과정의 궁극적 존재이유는 가장 구체적인 제개념, 말을 바꾸면 이론적 결정에 있어서 가장 풍부한 제개념을 생산하는 것이다. - 19쪽
개념은 ‘나는 **을 ##라고 생각한다’라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대상 **에 대한 나의 막연한 생각에 대해 묻는 게 아니라 **이 진짜 무엇인지를 묻는 거지요. 설마 개념이 없다고 세상을 알 수 없겠냐구요?
아마도... 개념이 없다면 희미하게 느낄 수는 없어도 안개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겁니다. 지식인이요 교수요 이론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는 것 같아도 사실은 모르는 이유가 개념이 없기 때문이지요.
안드로메다를 헤매고 있는 개념을 데려와야겠지요. ^.^
생산양식은 엄격한 의미에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형식적 대상을 구성하고 있다. 자본제, 봉건제, 노예제 생산양식은 그 어느 것이나 엄격한 의미에서는 그 존재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추상적․형식적 대상을 구성하는 것들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단지 역사적으로 결정된 ‘사회구성체’, 즉 넓은 의미로는 일정 시점에 있어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총체일 뿐이다...사회구성체 자체는 하나의 복합적 통일체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는 일정한 생산양식이, 동일하게 그 통일체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생산양식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특정의 생산양식에 의해 역사적으로 결정되는 사회구성체인 것이다. - 16~17쪽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날 때였죠. 북부 지역에는 공업이 발달하면서 노동자가 많았고, 남부에서는 농사짓는 노예가 많았습니다. 하나의 미국인데 자본제 생산양식과 노예제 생산양식이 함께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나서 북부의 자본가들이 남부의 노예주에게 승리를 거뒀고, 미국은 자본제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구성체)가 되었지요.
조선의 일제 식민지 시절을 보죠.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의 노예로 끌려가서 일을 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자본주의가 한창 발전하던 사회였는데 조선을 점령함으로써 노예를 부릴 수 있었던 거지요.
설사 굶어 죽더라도 일하기 싫으니 그만 둘 수 있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공장과 집단생활 공간에서 감시 받고 두들겨 맞으며 일하던 조선인 노예들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본가-노동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 노예주와 조선인 노예가 존재 했던 거지요.
역사적 국면, 제층위, 접합, 통일, 지배 등등 말만 들어도 머리 아픈 말이지만 이런 말들을 가지고 사회(구성체)를 이해한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좀 더 또렷한 모습으로 보일 겁니다.
박정희 정권의 한 마디에 이병철이 벌벌 떨어야 했던 때가 있었고,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를 국가 정책으로 만들었던 노무현 정권이 있었지요. 그냥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분명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국가, 계급, 권력
이 단계에서조차 우리는 이 같은 국가의 기능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국가가 한 사회구성체의 통일성의 응집인자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 구성체의 다양한 수준의 제모순이 ‘응축되어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는 사실 속에 있다. 따라서 그것은 한 사회구성체 내지는 그것의 어느 한 단계 또는 어느 한 국면을 성격 짓는 지배와 중첩결정이 반영되어 있는 장(場)인 것이다. 국가는 또한 한 사회구성체의 구조적 통일성과 접합을 ‘독해’해 낼 수 있는 장(場)이다. - 52쪽
환율을 올릴 건지 내릴 건지를 놓고 말이 많았습니다. 환율을 계속 올리면 수출을 많이 하는 현대와 삼성에,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현대와 삼성의 주주들에게는 큰 이익이 돌아가겠죠. 반대로 수입을 많이 하는 기업과 관련 주주들은 좀 거시기 할 겁니다. 환율이 높으면 수입 가격이 올라가서 우리가 생활에서 사용하는 밀가루부터 해서 온갖 물건들의 가격도 올라갈 거구요.
내용에는 자동차, 화섬 등 매출하락 항공, 식품에는 호재라면서도 제목은 '수출전선 비상'이라는 연합뉴스의 기사. '환율 급락으로 밀가루, 설탕 등 수입 가격에 파란불'이라는 제목은 어떨지. 삼성과 현대의 주력 품목이 밀가루와 설탕이었다면 어땠을지... ^^
이명박 정권이 고환율 정책을 유지한 이유는 우리가 먹고 마시는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정몽구와 이건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한 거지요. 그러면서 물가 잡겠다고 난리입니다.
한-미 FTA를 비준할 거냐 말거냐를 놓고 여전히 논란입니다. 한-미 FTA가 통과되면 현대와 삼성은 수출 많이 해서 좋겠지만 농민들은 죽어나겠지요. 농민들이 반발하니깐 정부에서는 돈을 풀어 무마시키려 합니다. 물론 그 돈도 세금으로 거둔 거지요.
한국의 국가는 지배계급 내의 관계이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과의 관계이든 아무튼 어느 관계에서든 판이 깨지지 않도록 만듭니다. 피지배계급이 반발하면 힘으로 누르기도 하고, 반발이 거세면 지배계급에게 쬐금 양보해서 판을 깨지는 말자고 설득을 하기도 하지요.
전면 무상급식하자고 하면 선택적 무상급식하자고 하고, 등록금 반값으로 하자고 하면 부분적으로만 등록금을 인하하자고 하지요. 지배를 유지하기는 하되 지배와 관련된 상황을 적당히 관리하는 겁니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자본주의 국가의 일부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도 통일성의 응집인자이자 제모순이 응축되어 있는 구조와 관련이 있겠지요. 빨갱이가 득실 되는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 국가의 일부라구요? 그러게요... ^^;;
좀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계급이란 구조적 총체, 즉 한 생산양식 내지는 사회구성체의 모체가 그것의 담지자를 구성하고 있는 담당자에게 작용한 제효과를 보여주는 개념이다...이러한 의미에서 계급이 실제로 하나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구조 안에 위치 지워질 수 있는 어떤 실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지칭하는 바는 일정한 구조적 총체 - 즉 사회관계를 계급관계로서 결정짓는 총체 -의 효과인 것이다. - 80쪽
한국 사회에서 애써 외면하거나 금기시 하는 단어가 몇 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계급’입니다. 계급이란 말은 왠지 무서운 말이고 왠지 뭔가 거친 말인 것 같지요. 계급이 무슨 괴물이어서가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계급이라는 말에 어떤 부정적인 느낌을 담았기 때문이겠지요.
반대쪽에서는 계급이라는 말을 통해 사회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계급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를 설명할 때 흔히 벌어지는 오류는 계급을 경제와만 관계하는 것으로 보는 겁니다. 하지만 계급은 풀란차스의 얘기처럼 경제와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총체-경제, 정치, 이데올로기-와 관계하는 거지요.
권력 개념은 계급 ‘갈등’ 및 투쟁에 의해 성격 지어지는 사회관계, 바로 그것의 유형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관계는 바로 계급의 존재 그것 때문에 한 계급의 실천을 통한 자기이익의 실현 능력이 다른 계급의 능력이나 이익과 ‘대립’하고 있는 영역이다. 이것은 계급실천의 ‘지배-종속’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결정하며, 또한 계급실천은 권력관계로서 성격 지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대립의 관점에서 볼 때, 권력관계는 지배와 종속이라는 두 입장 사이에 분명한 구분의 획정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 126쪽
지배자들이 계급이나 권력과 같은 말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이런 말들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 사회의 모습이 드러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던 정치인들이 지배계급을 위해 일을 하고, 민중의 지팡이는 지배계급의 몽둥이라는 것이 드러나겠지요.
권력, 계급 뭐 이런 것들이 아니라 좀 더 근사한 것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내세우는 것이 ‘개인’입니다. 법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개인이다 뭐 그런 식이죠. 그런데 그 때 말하는 개인이란 건 도대체 뭘까요?
한편으로는 생산담당자가 구조의 담지자로서가 아니라 원초적인 개인/주체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개인/주체로부터 사회계급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가 처음부터 이들 경제적 개인/담당자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를 계급 및 계급투쟁과 관련시킬 수 없는 것이다. - 149쪽
계급으로써의 개인이 아니라 그냥 개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냥 개인들의 집단적인 이해를 실현하는 것이 국가라는 거지요. 국가나 법 앞에서 우리는 평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유전무죄이고 유전무죄이겠습니까? 왜 조선일보 사장과 이건희는 온갖 악행을 저질러도 아무렇지도 않게 제 자리를 유지하겠습니까?
우리는 ‘순수한’ 개인이 아니라 계급적 개인인 거지요. 이건희와 제가 법이나 국가 앞에서 평등하지 않고 차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건희와 제가 다른 계급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평등한 개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거지요.
자본주의국가
나는 자본주의국가라는 용어를 자본주의적인 국가유형이 지배적인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고자 한다.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라는 용어가 CMP가 지배적인 구성체를 표시하는 것과 같다.)...정확히 말하자면, 비록 국가는 봉건적 성격을 띤다 하더라도, 즉 국가에 있어서는 봉건적 유형이 지배적이라 하더라도 그 구성체는 자본주의적 구성체 또는 CMP가 지배하는 구성체인 경우를 우리는 언급할 수 있다. - 172쪽
복잡하지요? 자본주의국가라면 그냥 ‘자본주의’ 국가면 되지 이것일 수도 있지만 저것일 수도 있다니... 그게 세상사는 맛이잖아요. ^^
파워블럭...그것은 자본주의국가의 특정 형태와 연관된 정치적 지배계급 혹은 계급분파들의 특정한 모순적 통일체를 지칭한다. - 279쪽
이명박은 대기업 회장들과 손을 잡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살아야 한다며 [동반성장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정운찬을 위원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다수의 계급 또는 분파가 파워블럭이라는 것을 구성하고, 이 가운데 지배적인 계급 또는 분파가 다른 계급 또는 분파를 질질 끌고 다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도 나름 생각이 있는지라 몇몇 소수의 이익만 챙기는 쪼잔 한 놈으로 보이기는 싫은 거에요. 너무 쪼잔 하게 굴면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요. 그러니까 동반성장이니 국민권익이니 하는 말들로 자신이 쪼잔하지 않고 통 큰 놈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합니다.
법적․정치적 영역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부르조아 지배이데올로기의 정치적 역할은 국가를 사회의 ‘일반의지’의 대표자로서 그리고 ‘사적 개인’에 대한 보편적 수호자로서 나타날 수 있게 하는 ‘생활양식’을 사회적 총체에 부여하려는 데 있다. 이들 사적 개인이란, 결국 ‘대중의지’의 구현자라고 여겨지는 지배계급의 보호 하에 ‘국민적 공동체’ 내에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참여에 의해서 통일되어 있는 것처럼 자신들을 제시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 257쪽
얼마 전에 임재범이 축구장에서 애국가를 부른 적이 있었지요. 약간 ‘뜨아!’ 하면서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임재범 개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몇몇 주워들은 말은 자신은 록커이고 록의 정신은 자유다 뭐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써 사용되는 ‘애국’ ‘애국가’ ‘태극기’를 그리 노래한다는 게 약간 거시기 하더라구요. 하지만 지배 이데올로기가 워낙 사람들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으니 스스로 자유를 주장한다는 사람도 국가 속으로 쏙 들어갈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한국의 국가는 자본주의국가이고 계급국가가 맞습니다. 한국의 국가가 자본가계급의 단순한 도구이기 때문에 계급국가인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 또는 부르주아계급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피지배계급과 때로는 투쟁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국가나 정치에 대해 참 많은 말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정작 국가나 정치란 게 무엇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 별로 없습니다. 국가나 정치가 무언지 잘 모르면 우리가 얘기하는 정치적인 것들 또는 정치 문제들이 헛다리짚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니코스 풀란차스의 [정치권력과 사회계급]은 우리가 국가나 정치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책입니다. 그냥 좋기만 한 것을 넘어 무언가에 대해 연구를 한다면 이런 식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배.착취.폭력 > 지배.착취.폭력-책과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텔 르완다]를 보고 (0) | 2011.07.18 |
---|---|
알튀세르, 발리바르 - [자본론을 읽는다]를 읽고 (0) | 2011.07.11 |
니코스 풀란차스 - [국가, 권력, 사회주의]를 읽고 2 (0) | 2011.06.29 |
니코스 풀란차스 - [국가, 권력, 사회주의]를 읽고 1 (0) | 2011.06.28 |
마흐무드 맘다니 - [좋은 무슬림, 나쁜 무슬림]을 읽고 (0) | 2011.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