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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타 이사오 - [반딧불이의 묘]

순돌이 아빠^.^ 2011. 10. 2. 16:38

2차 세계 대전 끝 무렵의 일본, 세이타의 아버지는 해군으로 전쟁에 나갔습니다. 엄마, 여동생 세츠코와 살고 있는 세이타는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답니다. 심장이 안 좋은 엄마를 먼저 보내고, 중요한 물건들은 땅에 묻고, 동생을 들쳐 업고 뛰어 다닙니다. 미군 비행기가 몰려오고, 하늘에서는 비처럼 폭탄이 떨어져 방공호로 피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보낸 엄마를 만난 것은 화상으로 온 몸을 붕대로 감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차마 동생에게는 보여주지 못하고 그저 병원에 있다고 했지요. 얼마지 않아 사람들은 엄마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주검을 모아 놓고 불을 지릅니다. 세이타는 동생을 데리고 먼 친척 아줌마가 사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이 집에서의 생활은 그리 따뜻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습니다. 나중에는 아줌마가 다른 친척집을 알아보라고 하지요. 할 수 없이 세이코는 세츠코를 데리고 우연히 발견한 굴속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두 남매는 먹고 자면서 생활을 합니다.



세츠코가 자꾸 설사를 하네요. 병원에 데려갔더니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생을 위해 물건을 훔치다 세이코는 두들겨 맞습니다. 엄마가 남겨 놓은 돈으로 먹을 것을 사 왔지만 이미 세츠코의 목숨은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츠코가 죽고 세이코도 멀지 않아 쓸쓸한 죽음을 맞습니다.

전쟁과 국가

폭탄이 한창 떨어지는 데 어떤 사람은 ‘천황폐하만세’를 외칩니다. 먼 친척 아줌마는 전쟁물자생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패전 소식을 들은 세이코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졌다니, 정말입니까? 일본이? 대일본제국이?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고 집이 불타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국가를 원망하기 보다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사랑을 버리지 않습니다. 전쟁으로 엄마와 동생마저 잃은 세이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한 것 하나는 제가 일본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고, 조선이며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를 비참과 고통 속으로 빠뜨렸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몰랐다는 겁니다.

일본은 왜 전쟁을 일으켰고,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고통을 준 전쟁을 왜 사랑했을까요?

일본은 악(惡)이니 일본인의 고통에서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전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한국이 군대를 보내 베트남을 침공하고, 이를 마치 우리 모두를 위한 전쟁인양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은 그들을 위해, 그들이 일으킨 전쟁이었고 시민들은 동원과 세뇌의 대상이었지요.

우리 동네 도서관 입구에 국가보훈처가 만든 ‘9월의 6.25전쟁영웅 맥아더’의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맥아더가 한반도에 온 것은 한반도의 주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위해 군대를 몰고 온 것이었지요. 그런데도 마치 한반도 주민들을 위해 온 것처럼 정치선전을 합니다. 그들을 위한 전쟁이었는데 마치 우리를 위한 전쟁이었던 것처럼 생각을 심는 거지요.


    출처 : 국가보훈처 블로그 http://mpva.tistory.com/1373


만약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세츠코의 삶은 단지 ‘넌 일본인이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자본과 국가, 천황, 관료들을 위한 전쟁이었다면 세츠코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이 영화에 나옵니다. 이들은 ‘오랜만에 축음기야’라며 우아하게 음악을 들으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는 사이 세이코는 동생의 화장을 준비합니다. 하나의 일본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일본이었던 거지요.
 
세츠코가 구슬을 사탕인 줄 알고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남습니다.

일으키지 말았어야 했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으며 일어나지 말아야할 전쟁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전쟁이 일어나는지를 안다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픈 과거를 되뇌는 것만큼이나 아픈 미래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