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의 ‘법’, 즉 ‘Recht'는 법이라는 뜻 말고도 ’정의 ‘권리’ ‘정당성’과 같은 의미를 함유하는데, 바로 이렇듯 옳은 것, 올바른 것, 지당한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밝혀내는지가 법의 철학이 추구하는 법의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 역자의 글 ‘법의 본질, 그리고 근대 시민사회와 국가에서 법의 역할’ 가운데, 14쪽
언뜻 보면 좋은 말인 것도 같고, 또 달리 보면 생각해 볼만한 문장입니다. 올바른 것, 지당한 것을 법 또는 법의 본질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법의 본질을 찾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의 것이 자의적일 수 있는 반면 뒤의 것은 인식되고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 때문입니다.
1. 서문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 48쪽
우리는 흔히 ‘이성적’이라는 말을 ‘너무 흥분하지 말고 좀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라’에서처럼 뭔가 앞뒤를 따져서 생각하는 것 정도로 씁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대로 ‘이성적’이라는 말을 쓰면 앞의 문장에는 큰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 머릿속의 사고와 현실 사이에 커다란 빈 공간이 생겨 버리거든요. 사고와 현실이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겁니다.
헤겔이 이성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지요.
자각적 정신으로서의 이성과 눈앞의 현실로 존재하는 이성 - 51쪽
헤겔에게 있어 이성은 사고나 생각의 수준이 아닙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역자의 설명을 보지요.
이성은 만물을 관통하면서 여기에 내재하는 존재의 합법칙성과 필연성으로, 이는 곧 현실 속에 내재하면서 현실 속에서 초개인적인 실재로서의 객관정신으로 현현된다. - 48쪽
헤겔의 말대로 이성을 이해하면 현실에는 현실의 뒷면, 곧 이성이 있게 됩니다. 현실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곧 이성임을 파악하는 것이 되는 거지요.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 형성과정을 종료하여 확고한 모습을 갖추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시간 속에 나타난다...철학이 회색의 현실을 회색으로 그려낼 때 생명의 형태는 이미 낡아져버렸으니, 회색에 회색을 덧칠한다 해도 생명의 형태는 젊음을 되찾지 못하고 다만 그 진상이 인식되는데 그칠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 53, 54쪽
마르크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모든 내부적 조건들이 충족될 경우, 갈리아의 수탉의 울음소리는 독일 부활의 날을 알려줄 것이다’라고 부엉이에 수탉으로 맞받아쳤지요. 인식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헤겔의 말이, 실천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마르크스의 말이 각자 나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헤겔 자신의 말 속에 있습니다.
철학적 저작으로서의 이 글은 추호도 국가가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구상을 내놓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교훈은 결코 국가가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 가를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라는 인륜적인 우주가 어떻게 인식되어야만 하는지를 가르치는데 있다...존재하는 것을 개념에 따라 파악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이다. - 50쪽
헤겔은 이 책에서 국가가 어떻게 있어야만 하는가가 아니라 국가를 인식해야 한다고 합니다.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써의 국가를 파악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헤겔이 국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구상하고 ‘임의로 상상’(51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하는 것이 철학이다. - 51쪽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와 같이 이 문장도 꽤나 멋진 문장 같습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애매한 문장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시대’라는 말에서 시대라는 무언가 있는 것 같고 손에 잡힐 것 같지만 뜬구름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사상으로 포착’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시대라는 것이 진짜 있다 치고, 이 시대를 포착한 것이 사상인지 거꾸로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하는 것인지가 저로써는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헤겔이 하는 말들 가운데 애매한 것들이 많기는 하지만 인식을 전개해 가는 과정에는 배울게 참 많습니다.
2. 서론 : 법철학의 개념 - 의지, 자유와 법의 개념
철학적 법학은 법의 이념, 법의 개념과 그의 실현을 대상으로 한다...현실존재와 개념 그리고 육체와 영혼이 통일된 것이 곧 이념이다. 이때 이념은 조화로움으로 그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상호침투되어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념이 아닌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의 이념은 자유이며, 이것이 참으로 파악되기 위해서는 그의 개념과 이 개념의 현실존재 속에서 인식되지 않으면 안 된다. - 55, 56쪽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당장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현실 존재를 존재케 하는 어떤 것에 따라 존재하게 됩니다. 법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로마법에서는 인간에 관한 어떠한 정의도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거기서 노예는 인간 속에 포섭되지 않을뿐더러 노예라는 신분은 오히려 인간의 개념을 손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58쪽
이성이나 이념이 그러하듯 노예라는 ‘신분’이 인간의 ‘개념’을 손상시킨다는 말에서 헤겔의 ‘개념’은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인간이 무엇이기에 노예가 인간의 개념을 손상시켰냐는 것입니다.
역사적 근인(根因)이나 원인(遠因)으로 거슬러 올라가 문제를 명백히 하고 (실용주의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설명하는 것이라느니, 아니, 그보다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역사적인 것을 분명히 밝혀냄으로써 법률 또는 법제도를 파악하는 데 관건이 되는 모든 것, 심지어 본질적인 것이 다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반대로 참으로 본질적인 것, 즉 사태의 개념에 대해서는 좀처럼 논의하지 않아왔던 것이다. - 62, 63쪽
여기서는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인식이나 설명에 관한 것입니다. 헤겔의 말처럼 어떤 것이 어떻게 생겨났느냐가 그것이 무엇이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는 일부다처제의 발생 원인을 전쟁에서 남자가 많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일부다처제의 발생에 관한 설명일 수는 있지만 현실의 일부다처제의 원인은 아닐 수 있는 것이겠지요.
두 번째는 헤겔에게 있어서 개념은 ‘본질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여기서는 개념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또한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뭔가를 보편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것을 사유한다는 것이다. 자아는 사유하는 것이며 동시에 보편적인 것이다. - 72쪽
보편으로 존재하든 아니면 보편성을 찾아내든 어쨌거나 그것들은 사유 밖의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헤겔에게 존재는 사유와 곧바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연결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없고,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채로운 세계의 화폭이 내 앞에 있고 나는 그것과 마주해 있으면서 이런 자세로 나와 세계의 대립을 지양하고, 그렇게 지양된 내용을 내 것으로 삼는다. 자아가 세계를 알면, 아니 그보다도 세계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자아는 세계 속에서 내 집에서와 같은 안온함을 느낀다. 이상이 이론적인 태도이다. - 72쪽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어떻게 심리적 안온감을 주는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물론 파악하게 되면 무지에서는 벗어날 수는 있습니다.
자아와 세계, 세계의 개념적 파악과 이론 등의 것은 좋은 이야기입니다.
정신은 무엇보다 우선 지성이라는 것, 지성이 스스로 발전하는 가운데 감정에서 표상을 거쳐 사유에 이르는 도상에서 얻어지는 규정들이 곧 정신이 스스로를 의지로서 발현시켜나가는 도정이라는 것, 그리하여 의지는 실천적 정신 일반으로서 지성의 바로 다음가는 진리라는 것 - 74쪽
여기서도 정신이 왜 지성인지 설명은 없습니다. 스스로 발전한다는 데 왜, 어떻게 스스로 발전하는지도 없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인가 봅니다. 진리라는 것 또한 인간의 인식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같이 현실적 존재가 됩니다.
자기 자신을 어떤 규정된 것으로 정립함으로써 자아는 일상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 78쪽
우리가 일상 세계 속에서 자아를 인식하고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라는 것이 저 알아서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자기의식은 각기 스스로를 보편적인 것으로, - 즉 일체의 규정된 것을 사상(捨象)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식하는가 하면 - 또한 동시에 스스로를 어떤 규정된 대상, 내용, 목적을 지닌 특수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러한 두 요소는 한낱 추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진리에서는(하기야 모든 진리는 구체적이지만) 보편성이 특수적인 것을 대립물로 가지면서도 이 특수적인 것이 자체 내로의 반성, 복귀에 따라 보편적인 것과 균형을 이루는 그러한 보편성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통일성이 개별성이다. 그러나 이 개별성은 표상 속의 개별성처럼 직접 주어져 있는 대로의 일자(一者)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의 개념에 따른 개별성이다. - 다시 말하면 이 개별성은 본래 개념 그 자체와 다름없다. - 82쪽
자기의식이 스스로를 인식한다, 개별성이 개념 그 자체다 등의 얘기는 빼고 특수-보편-개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장입니다.
노예는 자기의 본질이자 자기의 무한성에 다름 아닌 자유를 모르며 자기가 본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모른다. - 노예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모르는데, 이는 자기를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 100쪽
노예가 노예인 것은 생산관계 속에서 노예주가 노예를 지배하기 때문이겠지요. 노예가 자신이 노예이고, 자유를 잃었음을 사유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노예인 것은 아니겠지요. 노예가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사유를 통하여 자기를 본질로 포착하고, 바로 그럼으로써 자기를 우연적이며 진실하지 않은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 자기의식이 법과 도덕과 온갖 인륜성의 원리를 이룬다. - 100쪽
사유를 통하여 자기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과 자기를 본질‘로’ 포착하는 것은 다르겠지요. 사유는 자기의식을 무엇에선가 벗어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자기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아닐 거구요.
참다운 의지란 바로 이 의지가 바라는 바 그 내용이 의지와 동일한 경우인데, 이는 자유가 자유를 의욕한다는 것과 같다. - 100, 101쪽
자유가 자유를 의욕? 연필이 쓰고 싶어한다?
'지배.착취.폭력 > 지배.착취.폭력-책과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카하타 이사오 - [반딧불이의 묘] (0) | 2011.10.02 |
---|---|
칼 마르크스 - [헤겔 법철학 비판] (0) | 2011.09.28 |
헤겔 - [법철학], 제1부 추상법 + 제2부 도덕 (0) | 2011.09.18 |
헤겔 - [법철학], 제3부 인륜성 (0) | 2011.09.18 |
헤겔 - <역사철학강의>를 읽고 (0) | 2011.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