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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 <정신현상학> : 서설

순돌이 아빠^.^ 2011. 10. 30. 21:02

 

세상에 아름다움이란 것이 있다면 이런 책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제 능력으로는 이 책을 죄다 이해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요. ㅠㅠ

 

공부나 학문에 관심 있는 분이면 한 번 읽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헤겔, <정신현상학1>, 임석진 옮김, 한길사

 

서설

 

진리가 현존하는 참다운 형태로는 오직 학문적 체계만이 있을 뿐이다. 철학이 학문의 형식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것, 말하자면 철학의 진의眞義라고 할지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떨쳐버리고 현실적인 지를 목표로 하여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지향하는 것이다. - 38쪽

 

중학교 때였는지 아님 고등학교 때였는지 아무튼 수업 시간에 한 선생이 철학이란 ‘지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야 철학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고, 학교 수업이란 게 지루할 뿐이어서 그저 그런 가 보다 했지요.

 

‘철학이 학문의 형식에 가까워지도록’한다면 철학이란 아직 학문의 형식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일까요?

 

밥을 좋아한다고 해서 배가 부르지는 않습니다. 밥을 직접 먹어야 배가 부르겠지요. 지(知)를 사랑하든 미워하든 그건 각자 알아서 할 일입니다. 지(知)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고 지를 찾는 학자들을 아낄 수도 있겠지요.

 

헤겔이 이 책에서 말하는 학문(아니면 과학이라고 해도 될지)이란 것은 멀찍이서 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지를 얻으려고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개념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감지되고 직관되는 것이므로, 여기서 소리 높이 외쳐대야 할 일은 절대적인 것의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에 대한 감정이나 직관이라는 것이 되고 만다. - 40쪽

 

요즘 하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보면 ‘출상술’이라는 게 나옵니다. 발을 굴러 하늘을 날듯이 뛰어오르는 기술이지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랜 수행 끝에 ‘아하!’하고 무릎을 치면서 ‘드디어 깨달았다’라고 소리를 칩니다. 단번에 깨달았다는 것이 대단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야 말로 대단해 보이는 겁니다.

 

이 때 깨달은 사람이 얻은 것은 대상에 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가슴을 쿵치는, 사랑과 같은 감정일 겁니다. 그 감정이 어찌나 큰 지 마치 진리가 잠든 나를 일깨우는 것 같고, 하느님이 내 가슴에 내려오신 것과도 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크게 느꼈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학문은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지 그것에 대한 나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실체’로서뿐만 아니라 ‘주체’로서도 파악하고 표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51쪽

 

생동하는 실체야말로 참으로 주체적인, 다시 말하면 참으로 현실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실체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이며 나아가서는 스스로 자기를 타자화하는 가운데 자기와의 매개를 행하기 때문이다. - 52쪽

 

주체란 자기가 관여하는 범위 안에 있는 내용에 독자적인 존립을 부여함으로써 추상적이고 직접적인 존재 일반을 지양하여 실체를 진리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부정이나 매개를 자기의 외부에 맡겨놓다시피 한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분열과 매개를 행하는 존재만이 주체라고 불리 수 있는 것이다. - 72쪽

 

드러나지 않는 것, 가능성으로만 있는 것을 우리가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땅 속에 있는 씨앗을 우리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오직 그 씨앗이 새싹으로 돋아나야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있겠지요. 이것을 거꾸로 하면 새싹을 통해서 우리는 씨앗을 생각하고 찾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어, 왜 저런 일이 생기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이고, 이 일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를 우리 앞에 펼쳐진 어떤 것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 거지요.

 

새싹이 씨앗이 된다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지양하는 것이 되겠지요. 사람이 씨앗의 머리를 잡아 당겨서 새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씨앗 스스로 자기를 바꿔가는 거구요.

 

대상

 

신이라는 낱말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한낱 무의미한 소리로서의 이름일 뿐이며, 정작 그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그 의미를 채워주는 것은 술어의 몫이 된다. 첫머리에 오는 공허한 것이 마지막 술어에 와서야 비로소 현실적인 지(知)가 되는 것이다. - 59쪽

 

어떤 철학자가 ‘인생은 바람이다’라고 했다고 하지요. 멋지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정말 바람 같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속이 있는 지도 없는지도 모를 것이지요.

 

지는 오직 학문 또는 체계로서만 현실적이고 또 현실적인 표현일 수 있다는 것 - 60쪽


오직 체계로서의 진리만이 현실적이라는 것 - 61쪽

 

꽃에는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꽃잎이 있습니다. 꽃이 무엇인지 알려면 뿌리-줄기-꽃잎을 한데 엮어서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한데 엮는다는 것은 뿌리-줄기-꽃잎이 제 각각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함께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고 줄기가 물을 옮겨 꽃을 피운다는, 꽃의 성장과 개화의 체계를 아는 것이겠지요. 꽃을 아름답다고 하든 곱다고 하던 꽃에 대한 감상이야 각자 알아서 하면 될 일이구요.

 

의식의 입장에서는 대상적 사물이 자기와 대립하고 자기는 대상적 사물과 대립한다는 것이 지의 전제가 된다. 그러므로 이는 학문과의 별도의 입장, 즉 자기를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의 상실을 자초한다는 그런 입장과 같은 것이어서 이럴 경우 학문의 장이란 의식으로서는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먼 피안과도 같은 것으로 보인다. - 64쪽

 

의식은 대상을 파악합니다. 대상이 없다면 학문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인생은 바람이다’라고 할 때 인생이 마치 인식의 대상인 것처렴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때의 인생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공상거리에 지나지 않겠지요.

자기는 대상 앞에 마주 섭니다. 그리고 대상은 대상입니다. 대상을 대상 그대로 놓지 않고 제 마음대로 주물럭거린다면 대상은 대상이 아니겠지요.

 

부르주아에게 고용된 소위 ‘학자’들이 학문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미 대상을 주물럭거린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옳은 것이며, 영원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자본주의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얻기는 어렵겠지요.

 

남성이 남성의 여성 지배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배자로서 남성의 위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의 아내를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득 품은 채 어떻게 남성의 여성 지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겠습니까.

 

과정

 

이러한 학문 또는 지의 생성과정을 서술한 것이 [정신현상학]이다. 최초에 등장하는 지, 즉 직접적인 정신은 정신이 비어 있는 감각적인 의식이다. 의식이 본래적인 지에 이르러서 순수한 개념의 세계인 학문의 경지를 구축하기까지는 장구한 도정을 헤쳐 나가기 위한 노고를 기울여야만 한다. - 65~66쪽

 

책의 제목인 [정신현상학]은 학문 또는 지를 어떻게 얻게 되는 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부나 학문에 관심 있는 분이 이 책을 꼭 읽어 봤으면 하는 것은 ‘나 공부할래’ ‘나는 학자가 될 테야’라고 냅다 달려든다고 지(知)나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급한 사람은 수단이 되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바람일 뿐이다. 과정상에 있는 각 계기는 모두가 필수적이어서 기나긴 모든 구간을 참을성 있게 거쳐 가야만 하고 그 모든 계기마다를 꼼꼼히 살펴나가야만 한다. - 68쪽

 

경험한 것을 곧바로 진리라고 여기는 것이 문제라고 해서 경험이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경험을 해야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슨 일이 있어야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겠지요.

 

과정상의 각 계기는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신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하나 알아가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공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파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용이 그의 필연성에 따라 확대되면서 유기적인 전체를 형성하는 것이 곧 학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의 개념이 획득되기까지의 도정 역시 필연적인 완성을 향해 가는 생성과정이라고 하겠다. - 73쪽


학문에 이르는 도정 역시 개념의 운동을 통하여 의식이 세계 속에 드러나는 모든 국면을 필연적인 연관으로서 포괄하는 것이다. - 74쪽

 

뿌리-줄기-꽃잎이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며 꽃이 되듯이, 꽃에 관한 지(知)도 뿌리-줄기-꽃잎 각각에 관한 지와 이들의 관계에 관한 지를 한데 엮어서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수학과 철학

 

수학의 목적 또는 본질은 ‘크기’에 있다. 그런데 크고 작음이라는 것이야말로 비본질적이고 몰개념적이다. 크고 작음에 관한 지의 운동은 단지 표면을 겉돌 뿐 사태의 본질이나 개념에 가닿지는 못하므로, 아예 이는 개념적인 인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 81쪽

 

철학이 고찰하는 것은 비본질적인 규정이 아닌, 오직 본질적인 규정에 한한다. 철학의 지반과 내용을 이루는 것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정립하고 내적인 생명을 지닌, 개념에 부합되는 모습을 한 현실적인 것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과정이 요소를 산출하고 이 요소를 두루 관통해나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운동이 적극적인 진리를 형성한다. - 83쪽

 

흔히 ‘ㅇㅇ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라고 말하면서 과학이란 것을 어떤 문제를 수치화하고 계량화한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는 말 그대로 숫자일 뿐입니다. 1과 2라는 숫자가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1과 2의 차이일 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루 세끼를 먹는 것과 두 끼를 먹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앞의 두 문장은 개념, 과정, 요소, 운동 등의 말을 가지고 과학 또는 학문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의식은 내용을 규정하거나 처리하는 데 길잡이가 될 만한 어떤 확실한 것, 즉 그것이 비록 한순간의 느낌에 불과할지언정 뭔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면 이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쯤 되면 멈춰 서도 되겠다 싶을 만큼 낯설지 않은 지점에 다다르면 거기에 멈춰 서서 만족해하곤 하는 것이다. - 86쪽

 

흔히 ‘양적 연구 방법’이란 것을 사용합니다. 모든 것을 수치화 하고 계량화 하지요. 그러면 무언가 확실한 것 같고 뚜렷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다고 느낄 뿐이지요.

 

이런 식으로 서로가 아무 연고도 없어 보이는 것을 결부시키거나 정지해 있는 감각물에 관념적인 것을 무리하게 덧붙여놓으면서 이것이 개념이라도 되는 듯한 허울을 씌워놓고 있다. - 88쪽


천상과 지상과 지하에 존재하는 만물을 두 가지 색상으로 칠해버리는 데서 오는 즐거움과 이 만능의 도구를 정말 일품이라고 여기면서 자만에 빠지는 태도 이 두 가지 중에 과연 어느 쪽이 더 큰 만족감을 안겨줄는지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 89쪽

 

방법이란 전체의 구조를 순수하게 본질적인 형상에 따라서 제시하는 것(85쪽)이라고 합니다. 대상의 구조를 제시하려면 내가 파악하고 연구한 대로 대상의 구조를 제시해야지 나하고 싶은 대로 대상을 이리저리 헤집고 비틀면 안 되겠지요.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은 자신이 빨갱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빨갱이는 곧 김정일의 편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 제대로 생각하고 말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것과 김정일 편이라는 것 각자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두 가지가 어떤 관계를 맺는 지까지 드러내야 하겠지요.

 

사태 자체가 안고 있는 내용 속으로 파고드는 대신 언제나 위로부터 전체를 넘나보듯 하면서 정말로 따져봐야 할 개별적인 대상은 스쳐 지나가버리는 까닭에 결국은 대상을 제대로 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 인식에 요구되는 것은 오히려 대상의 생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 다시 말하면 대상의 내적 필연성을 직시하고 이를 표현해내는 데 있다.  - 91쪽

 

강물의 흐름을 느끼려면 몸에 힘을 빼고 강물의 흐름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나를 버리라는 것도 나를 잊으라는 것도 아니고 오직 강물의 흐름을 느끼라는 겁니다.

 

학문을 하려면 대상의 겉면을 묘사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적 필연성을 찾아내라고 합니다. 대상이 그런 모습으로 있도록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개념

 

진리는 오직 개념 속에서만 스스로 존재의 터전을 마련한다 - 39쪽

 

학문은 오직 개념의 고유한 생명력을 통해서만 체계화되어야 하므로, 여기에는 형식적인 도식에 따라 외면으로부터 존재에 첨가되는 성질 대신 자기 운동하는 충만된 내용의 혼이 맥박치고 있다. - 90쪽

 

학문을 연구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개념 파악을 위한 노력을 몸소 걸머지는 일이다. - 96쪽

 

생각나는 대로의 자기의 발상을 뿌리쳐버리고 개념에 내재하는 리듬을 따르는 것, 개념을 자기 임의대로 꾸며내지도 않고 어쩌다가 취득한 지혜에 의해서 헝클어뜨리지 않는 것, 바로 이런 억제력을 발휘할 때라야만 비로소 개념에 눈을 돌려야만 할 필수적인 요건이 충족된다. - 97쪽

 

개념이란 대상 자체의 자기로서, 이 대상의 생성과정이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정지된 부동의 주체로서 속성을 담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동하는 가운데 갖가지 성질을 자체 내로 되돌려오는 개념이 주체가 된다. - 99쪽

 

참다운 사상과 학문적 통찰은 오직 개념의 노동 속에서만 얻어진다. 개념만이 보편적인 지를 창출해낼 수 있으니, 이러한 지는 건전한 상식의 그늘 밑에 있는 평범하고 모호하고 빈약한 지가 아니라 교양으로 다음어진 완전한 인식이다. -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