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 [대논리학](Ⅲ) 개념론 - 제3편 이념 -3장 절대적 이념
헤겔, [대논리학](개념론), 벽호, 1997
절대적 이념은 이론적 이념과 실천적 이념과의 동일성이지만 다만 이들 두 이념은 아직도 저마다가 일면적일 뿐이어서 이념 자체를 다만 추구돼야만 할 피안이며 도달될 수 없는 목표로서 자체내에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 409쪽
절대적 이념이야말로 철학의 유일한 대상이자 그 내용이 되는 셈이다. 절대적 이념은 모든 규정성을 자체내에 포함할뿐더러, 또한 그의 본질은 그 스스로의 자기규정 내지는 특수화를 통해서 다름아닌 자기에로 복귀하는 데 있으므로 결국 절대적 이념은 각이한 형체를 띠고 나타나게 되는바, 바로 이와같이 갖가지 형체를 지닌 이념을 그때마다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임무이다. - 410쪽
논리학은 절대적 이념의 자기운동을 다만 근원적인 말, 언어로 서술할 뿐...이념은 오직 이와같이 스스로의 언어를 청취한다는 자기규정 속에 깃들여 있을 뿐 - 411쪽
이념의 규정성과 이러한 규정성이 형성되기까지의 전과정이 다름아닌 논리학의 대상을 이루거니와, 이러한 대상의 형성과정을 통하여 절대적 이념 그 자체가 자각적인 대자적 위치에서 발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 412쪽
방법은 이제 자기자신을 깨우치며 또 자기를 절대자로, 다시 말하면 주관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것으로 하여 바로 이 자기를 대상으로 지니는 개념일 뿐이니, 결국 여기서 방법은 개념과 그의 실재성과의 순수한 합치로서, 그리고 동시에 개념 그 자체이기도 한 실존으로서 발현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 413쪽
현실성을 통해서 보거나 아니면 사상의 면에서 보거나 간에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단순하고 추상적인 것은 없다고 하겠다. 오직 그렇듯 단순하다는 것은 실제로 현존하는 것에 대한 의식의 결여에서만 그 유일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단적인 속견(俗見)이라고 해야만 하겠다. - 418쪽
오직 사물 그 자체에만 주목하며, 그 속에 깃들여 있는 내재적인 것을 분명히 인식에 떠올릴 것만 요구 - 320쪽
시원을 이루는, 단초적인 보편이 오직 그 자신으로부터 자기의 타자를 곧 자기로 규정하게 되는 이렇듯 종합적이면서도 또한 분석적인 판단의 계기야말로 한마디로 변증법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 421쪽
흔히 사람들은 변증법을 마치 주관적 재능에 바탕을 둔 하나의 기술일 뿐, 결코 개념의 객관성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왔다...변증법이 다시금 이성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실로 비할 바 없이 중요한 거보(巨步)를 내디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421쪽
실로 사유와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상이란 일개 표상에 지나지 않거나 혹은 이름 이상의 것일 수가 없으니, 바로 이 사유규정 및 개념규정이야말로 대상으로 하여금 그것이 존재하는 대로의 모습을 띠도록 하는 것이다. - 424쪽
애초에는 그들 제규정이 확정적이며 그 자체로서는 옳은 것일지라도 어느덧 이것이 제3자 속에서의, 그리고 제3자를 통한 외타적이며 우연적인 결합에 의해서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 놓여지면서 어느덧 모순을 잉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424쪽
유한과 무한 또는 개별과 보편의 경우처럼 고정적인 듯이 보이는 모든 대립이 실은 주어와 술어간의 한낱 외면적인 결합에 의해서 모순된 상태에 밀려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들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밝혀졌듯이 오히려 즉자대자적인 의미에서의 이행, 추이를 뜻하는 것이 된다...비록 몰개념적인 고찰이 그들의 외면적인 관계에만 멈추어 서서 이들 서로가 유리된 한낱 고정적인 전제로 방치돼 버린다 할지라도 개념은 오히려 이들을 곧바로 직시하면서 바로 이들의 혼이 되어 마침내 이들을 꿈틀거리게 하면서 이들의 변증법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 425쪽
최초의 직접적인 것은 매개된 것으로 바뀌면서 모름지기 타자에 관계하는 것으로 정립되거나 혹은 보편이 곧 특수로 정립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를 거쳐서 발생하게 된 두 번째 것은 첫 번째 것의 부정자로서, 다시 이보다 뒤에 이어질 과정을 사전에 염두에 둔다면 이 두 번째 것은 곧 첫 번째 부정자이기도 한 셈이다. 이러한 부정적 측면에서만 보면 직접적인 것은 모름지기 타자 속에 몰락해 버리는 것이 되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타자는 한낱 공허한 부정자, 즉 변증법으로부터 보통 얻어지는 결과라고 할 무(無)는 아니며 오히려 그 타자는 최초의 것의 타자, 즉 직접적인 것의 부정자인 것이다. 따라서 이 타자는 매개된 것으로 규정되는 가운데 - 항시 첫 번째 것의 규정을 자체내에 포함하는 것이 된다. 이럼으로써 최초의 것은 또한 본질적으로 타자 속에 보존되고 유지되는 셈이다. - 이와같이 적극적, 긍정적인 것을 바로 그 자신의 부정자 속에서, 즉 전제의 내용을 결과 속에서 견지(堅持)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성적 인식에 있어서 가장 긴요한 점이다. - 426쪽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매개된 것이라고 하겠으니, 이것도 애초에는, 혹은 직접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역시 하나의 단순한 규정일 뿐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 것, 일차적인 것이 두 번째 것, 이차적인 것 속에서 몰락해 버림으로써 다만 여기에는 두 번째 것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첫 번째 것이 두 번째 것 속에 내포됨으로써 이 두 번째 것이 첫 번째 것의 진리를 뜻한다고 할 때 모름지기 이 통일은 직접적인 것을 주어로 하고 매개된 것은 그 주어의 술어로 삼는 그러한 명제로서 표현될 수가 있으니, 예를 들면 [유한자는 무한한 것이다], [일자는 다자이다] 또는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등의 명제가 그런 것이다. - 426쪽
두 번째 규정인 부정적이거나 매개된 규정은 동시에 매개하는 규정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일단은 단순한 규정으로 취급될 수도 있으나 그의 진리는 어디까지나 관계이며 상관관계를 이룬다는 데 있다...이 규정은 다름아닌 타자 그 자체이며 바로 타자의 타자인 것이다. 또한 이 규정은 바로 그 자신의 타자를 자체내에 포용하는 가운데 마침내 그 자신이 모순을 이룸으로써 다름아닌 자기자신의 정립된 변증법이 되는 것이다. - 427쪽
결국 최초의 것, 혹은 또 직접적인 것은 즉자적인 개념으로서 오직 이것은 즉자적으로 부정적인 것이기도 하므로 이 최초의 것, 직접적인 것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적 계기는 이 최초의 것이 즉자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구별이 다름아닌 이 최초의 것 속에 정립된다는 데 있다. 이에 반해서 두 번째 것은 그 자체가 규정적인 것이며 또한 구별이거나 상관관계로서 결국 이 두 번째 것이 지니는 변증법적 계기는 바로 이 두 번째 것 속에 깃들여 있는 통일성을 정립한다는데 있다. - 427쪽
형식적 사유는 모순은 사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투의 단정적인 원칙을 내세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모순을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개념의 본질적 계기이다. - 428쪽
이제 구태여 이 두 번째의 직접적인 것이 전체적인 과정 속에서 차지하는 순번을 매겨 본다면 그것은 곧 첫 번째의 직접적인 것과 매개된 것에 대한 세 번째의 것, 제3의 것이 되겠다. - 430쪽
여기서 3차적인 것은 처음의 두 규정이 통일된 것이면서도 또 이 처음의 두 규정은 어디까지나 서로가 상이한 것이란 점에서 서로가 오직 각기 지양된 두 규정으로서의 통일을 이룬 것 - 431쪽
개념 그 자체는 일단 우리에 대해서 즉자적으로 있는 보편이며 또한 대자적으로 있는 부정적인 것인가 하면 더 나아가서는 세 번째의, 3차적인 위치에 있는 즉자대자적인 것, 즉 추론의 전계기를 두루 거쳐 나가는 보편성인 셈이다. - 432쪽
방법은 어디까지나 이것을 전체성의 체계라는 점에서 행한다고 하겠으니 - 436쪽
절대적 방법 속에서의 개념은 자기의 외타적 존재 속에서 스스로를 보존하며 또 보편은 그의 특수화, 즉 판단과 실재성 속에서 스스로를 보존한다. 그리하여 이 보편은 그가 지녔던 앞서 간 내용의 전부를 다음의 새로운 규정을 잉태하는 단계로 고양시키는 가운데 이러한 그의 변증법적 진행 속에서 어느 하나도 상실하지 않을뿐더러, 또한 어떤 것도 배후에 남겨두는 일이라곤 없이 오직 획득된 모든 것을 스스로 담지(擔持)하면서 그 자신이 자체내에서 부(富)해지며 또 농도(濃度)를 더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은... - 436, 437쪽
가장 풍부한 것은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주관적인 것이며 또한 가장 단순한 심층(深層)으로 자기를 환귀(還歸)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력(威力)적이며 동시에 가장 포괄적인 것이기도 하다. -437쪽
진리란 오직 직접성에 대한 부정성을 작동시킴으로써 자기자신에게로 귀일(歸一)하는 것 - 438쪽
규정된 것, 피규정적인 것을 단적으로 초월하여 곧바로 절대자 속에서 자리를 굳히려는 성급함이란 한낱 공허한 부정자 또는 추상적인 무한자 이외에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인식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어렴풋한 자기나름의 사념私念 속에 깃들인 절대자만을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이 되는바, 왜냐하면 그러한 절대자는 정립된 것도 아니려니와 또한 사유의 힘으로 포착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439쪽
실로 절대자란 인식의 매개를 통해서만 포착될 수가 있으니, 이때 보편이나 직접적인 것은 그러한 매개의 일계기일 뿐이며, 진리 그 자체는 오직 전개, 발양된 과정과 다시 이 과정이 매듭지어지는 단계에 가서만 있을 수 있을 뿐이다. - 439쪽
존재, 즉 논리학의 내용을 구성하는 단초에 있어서는 그의 개념이 다만 내용에 외면적인 주관적 반성 속에 깃들인 지식으로 나타날 뿐이었으나 절대적 인식의 이념 속에서는 개념이 어느덧 바로 이 이념 자체의 내용이 된 것이다. 절대적 인식의 이념은 그 자체가 곧 자기를 대상으로 하는 순수개념이려니와 모름지기 이 순수개념은 자기를 대상으로 하는 가운데 자기에게 가해지는 규정의 전체를 통과함으로써 결국 그 자신을 자기의 실재성을 총합하는 것으로, 즉 학(學)의 체계로 구축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이 이념은 자기자신의 개념적 인식을 완결지음으로써 또한 내용이며 대상으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지양하는 가운데 학(學)의 개념을 인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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