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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 [에우티프론]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11. 11. 23. 09:24


플라톤,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서광사, 박종현 옮김



[에우티프론]은 멜레토스 등으로부터 불경죄로 고소를 당한 소크라테스가 관아 앞에서 에우티프론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에우티프론은 아버지가 노예를 죽였다고 살인죄로 고소를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불경한 짓을 저질렀다고 고소를 당했습니다. 두 사람 대화의 본론은 ‘신성한 것’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에우티프론이 신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듯이 말하니 소크라테스는 정말 아냐고 묻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지만, 에우티프론! 맹세코, 당신은 신성한 것들과 관련해서 그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그리고 경건한 것들과 경건하지 못한 것들과 관련해서도 이것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이토록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소? - 40, 41쪽

우리는 많은 생각과 많은 판단과 많은 말을 하고 삽니다. ‘A는 B야’ ‘나는 A가 B보다 더 나은 거라고 생각해’ 등과 같이 말할 때는 ‘~~~이다’라거나 ‘~~~나은 것’이라고 판단하기 이전에 이미 A나 B가 무엇이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제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한미 FTA를 통과 시켰습니다. 누군가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라고 주장하려면 FTA가 무엇인지, 국익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하는 거지요.

소크라테스가 말을 잇습니다.

무엇이건 그것이 경건하지 못한 것이라면, 불경과 관련해서 하나의 어떤 특성(idea)을 지니고 있지 않겠소? - 43쪽

역자의 idea(이데아)에 관한 주석을 보겠습니다.

이것들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 ‘보기에’(idein) 따라 ‘보이는(내가 보게 되는 : eido) '모습’이나 ‘형태’, ‘외관’, ‘모양’, ‘보임새’ 등을 원래는 의미한다...여기서 더 나아가, 그것들이 ‘성질’이나 ‘종류’, ‘종(種)’ 등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게 된 것...플라톤이 이를 그의 전문 용어로도 쓰게 된 것은 사물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참모습’이나 ‘본모습’이라 할 ‘본질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도 이것들을 썼기 때문이다. - 43쪽

역자의 얘기에 따르자면, 소크라테스가 불경한 것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불경한 것의 겉모습이 아니라 참모습이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되겠네요.

가령 나와 당신이 수와 관련해서 두 수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많은지를 두고 의견의 차이를 보인다면, 이 의견의 차이가 우리를 적으로 만들도록, 그래서 서로에 대해 화를 내게 만들도록 하겠소? 아니면 계산(logismos)에 의지함으로써, 그와 같은 것들에서 우리가 곧 벗어나도록 하겠소? - 50쪽

우리 자신들이나 남들 가운데 누구든 어떤 것이 이러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런 것으로 동의하고서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말을 하는 사람이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하는지 검토해 보아야겠소? - 56쪽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말이 안 통할 때가 있습니다. 잠깐만 따져 보면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쉽게 알 수 있는데도 한쪽이라도 따지기를 거부하면 말은 이리저리 빙빙 돌기만 하지요.

00이가 학교에서 **를 때렸다는 소문이 있다면 00이나 **이한테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해 보면 됩니다. 그런데 확인은 하지 않고 부모들끼리 모여 자신들이 들은 소문만 가지고 ‘00가 평소에 행실이 나쁘니 **를 때렸을 것이다’, ‘아니다, 요즘 **이가 00를 자주 괴롭혔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하면서 서로 삿대질만 하고 있다면 우스운 일이겠지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의견 차이가 있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계산하고 검토해 보는 일입니다.

물론 따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이 적은 사람이, 노동자가, 여성이, 학생이 따지고 들면 말이 많다느니 까칠하다느니 따지기나 좋아한다느니 하면서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따져 묻기

에우티프론 : 저로서야 신들이 모두 사랑하는 것, 이것이 경건한 것(경건함)이며, 그 반대의 것, 즉 모든 신이 미워하는 것은 경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해야겠군요.
...
소크라테스 :...경건한 것(경건함)은 그것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한테 사랑받겠소, 아니면 그것이 신들한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하겠소? - 56, 57쪽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하자 에우티프론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것이 경건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그것이 사랑을 받기 때문에, 즉 이 때문에 경건하지는 않겠소? - 59쪽

에우티프론이 신들의 사랑을 경건함과 불경함의 기준으로 내세웠다가 한방 맞는 겁니다.

소크라테스 : 만약에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과 경건한 것이 동일한 것이라면...당신은 경건함(경건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고서는, 내게 그것의 본질(ousia)을 밝히려고 하지는 않고, 그것과 관련된 어떤 성상(性狀, 우유성偶有性, 속성:pathos)을, 말하자면 이 경건함이 처한 상태를, 곧 모든 신한테 사랑받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소.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당신이 말하지 않았소. - 60, 61쪽





‘FTA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경제 영토가 넓어지는 것’ ‘돼지고기, 체리 등 식료품 가격이 낮아지는 것’ 등이라면 그것은 헛다리짚는 겁니다. ‘컴퓨터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껍데기를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에우티프론에게 깨지락거리지 말고 진력하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앞의 소크라테스 얘기에서는 ‘동일함’에 대해서 얘기를 합니다. ‘A는 B이다’라고 하려면 둘이 동일하게 되는 까닭이 있어야겠지요. 노트북 컴퓨터와 데스크탑 컴퓨터가 같은 이유는 둘 다 껍데기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겠지요.

소크라테스 :...만약에 당신이 경건함과 경건하지 못함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면, 머슴을 위해서 늙으신 아버지를 살인죄로 기소하려 들 수는 없었겠기 때문이오. 오히려, 당신이 이 짓을 하는 게 옳지 못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여 신들이 두려워서 모험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사람들 앞에서도 창피스러워졌을 것이오. - 76쪽

소크라테스는 에우티프론의 행동이 잘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먼저 말하지 않고 에우티프론에게도 관련이 있고, 자신에게도 관련이 있는 ‘경건함’이 무엇인지를 따져 물었습니다.  경건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자 에우티프론은 자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 :...내가 가졌던 그 큰 기대로부터 나를 내동댕이치고서는 가버리다니. 당신한테서 경건한 것들과 그렇지 못한 것들을 배운 다음, 내가 멜레토스한테 이런 것들을 밝히어 보며 줌으로써, 즉 내가 에우티프론에 의해서 이미 종교(신들에 관련된 일들)에 있어서 지혜로워졌다는 것과 이것들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무지로 인해서 내가 무분별한 언행을 하는 일도, 혁신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 77쪽



소크라테스



우리가 살면서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을 만나면 한편으로 참 부담스러울 거에요. 그냥 적당히 넘어가면 될 것을 따지고 또 따져서 밝히려고 드니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무지 속에서 헤매거나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르고 그러겠지요.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이 무식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부려먹기 좋겠지요. 반대로 자유를 꿈꾸는 이들은 자신에 관한 것이든 세상에 관한 것이든 따져 물어야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내가 모르면서 안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말입니다.

따져 물어야 세상이 열리고 길이 보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