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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 [소크라테스의 변론]

순돌이 아빠^.^ 2011. 11. 26. 23:35

플라톤,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서광사, 박종현 옮김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장면, 벌금형을 제의하는 장면, 최후 진술을 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는 글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왜 법정에 서게 됐는지는 그의 변론 속에 나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네에는 요즘과 같은 검사·변호사 같은 게 없어서 시민들이 직접 고소하고 고소당한 사람들은 직접 자신을 변론했다고 하네요. 또 시민들 가운데 일부가 배심원단이 되어 유무죄 여부를 가렸다고 합니다.

현명한 이유

소크라테스트는 한 정치인과 나눴던 대화를 언급합니다.

저는 그에게 그가 자신이 현명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밝히어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 결과로 이 사람한테서도 그리고 같이 있던 사람들 중의 많은 이한테서도 제가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야 어쨌듯, 저는 그 자리를 떠나면서, 제 마음 속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람보다야 내가 더 현명하지...이 사람은 자기가 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대단한 걸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어쨌든 적어도 이 사람보다는 바로 이 사소한 한 가지 것으로 해서, 즉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이 사실로 해서, 내가 더 현명한 것 같아”라고 말씀입니다. - 117, 118쪽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 정치인보다는 현명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신은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앎 또는 지식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찾는 겁니다. 알아야 하고 알 필요가 있는데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한 앎을 찾는 거지요.

옆에서 들으면 정말 어이없는 말인데도 확신에 차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납니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알려고 하지도 남의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데 더 뭐가 필요하겠어?’식이거나 자신의 무지를 가리려는 듯 더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지요.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관찰을 하고 탐구를 하고 공부를 해서 조금씩 알아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그저 겸손한 자세를 갖자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어렴풋한 무엇인가가 있는데, 내가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뚜렷이 앎으로써 지(知)에 다가갈 수 있는 첫걸음을 딛게 되는 거겠지요.

소크라테스는 정치인 다음으로 시인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짓는 시들을 지혜에 의해 짓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질에 의해서 그리고 마치 예언자들이나 신탁의 대답을 들려주는 사람들처럼, 영감을 얻은 상태에서 짓게 되는 것이라는 걸 말씀입니다. 이들 또한 많은 아름다운 것을 말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니까요. - 120, 121쪽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나 마음에 크게 남은 것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자들이 군대 얘기하면서 자신들이 군대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얘기하곤 합니다. ‘내가 말이야 군대에서...’식이지요. 어떤 분들은 ‘너거가 전쟁을 겪어 봤어?’하시면서 자신이 겪은 것에 대해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오늘 제가 동네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쳤는데, 배드민턴 쳤다고 배드민턴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겠지요. 전혀 안 해 본 분들보다는 조금은 더 알겠지요. 하지만 배드민턴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면 배드민턴이란 운동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다른 운동과는 어떤 공통점이나 차이점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알아 봐야 합니다.

강력한 감정이 지(知)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지(知)는 지를 얻는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겠지요.

소크라테스가 시인 다음으로는 공장(工匠), 곧 장인을 만납니다.

이들 각자는 제 기술을 훌륭히 발휘할 수 있다고 해서 가장 중대한 다른 일들에 있어서도 자신이 가장 현명한 것으로 여기더군요. - 122쪽

김치찌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김치찌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입니다. 김치찌개에 대해서 잘 안다고 스파게티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아는 자, 말하는 자

아테네인 여러분! 캐물음으로 말미암아 저에 대한 많은 증오심이 생겼는데, 그것도 아주 고약하고 심각한 것들이어서, 마침내는 이로 해서 많은 비방이 생겼으며, 또한 이 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도 된 것입니다. - 123쪽

소크라테스가 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고소당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자진해서 저를 따라다니게 되었는데...다른 사람들한테 캐어묻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 자신들은 대단한 걸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는 것이라곤 별로 없거나 전혀 없는 숱한 사람을 이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이들한테서 캐물음을 당한 사람들은 저한테 화를 내지 이들한테서 그러지 않거니와, 그들은 또한 말하기를 소크라테스라는 자는 지극히 혐오스런 자이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 124쪽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소위 ‘불온서적’이라는 것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김진숙의 ‘소금꽃 나무’,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노암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등이 들어 있습니다. 불온하니 읽지도 갖고 다니지도 말라는 거지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알라고 하는 것만 알면 될 텐데, 알지 말라고 하는 것까지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니 이런 일까지 벌이나 봅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영적인 것들을 믿음으로써 죄를 범하고 있다고 합니다. - 133쪽

내가 본의 아니게 그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면, 법은 그런 잘못들로 이리로 이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붙잡고서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이오...법은 처벌이 필요한 사람들을 이리로 이끌고 오는 것이지 깨달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이끌고 오는 것이 아니오. - 133, 134쪽

내가 정녕 영들을 믿는다면, 그리고 영들이 일종의 신들이라면...그대는 내가 신들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가, 내가 어쨌든 영들은 믿으니까, 이번에는 신들을 믿는다고 다시 말한단 말이오. - 140쪽

멜레토스 등이 소크라테스를 기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고소인인 멜레토스와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인들에게 말합니다.

만약에 제게 유죄 판결을 내리게 된다면, 유죄 판결을 내리게 되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것은 멜레토스도 아니토스도 아니고, 많은 사람의 비방과 시기일 것입니다. 바로 이것들이 많은 다른 훌륭한 사람에게도 유죄 판결을 내리게 했지만, 또한 앞으로도 유죄 판결을 내리도록 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 142쪽

소크라테스는 이 재판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재판 결과 사형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해 말을 잇습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캐묻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신이 저로 하여금 지혜를 사랑하며(철학하며) 또한 저 자신과 남들을 캐물어 들어가면서 살아야만 한다고 신이 지시했는데, 이 마당에 제가 죽음이나 또는 그 밖의 어떤 것이든 이를 두려워하여, 제 자리를 뜬다면, 저는 무서운 것들을 한 것이 될 것입니다...실로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현명하지도 않으면서 현명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왜냐하면 아무도 죽음을 모르며, 그것이 인간에게 좋은 모든 것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것인지조차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나쁜 것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이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어찌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안다고 생각하는 그 비난받을 무지가 아니겠습니까? - 146쪽

작은 손해라도 있을라치면 얼른 말과 행동을 바꾸는 이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약삭빠른 것이 세상을 잘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캐물으며 사실을 밝힌 대가로 법정에까지 섰음에도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사형을 면하려면 잘못했다고 사정을 해야 될 판국인데 말입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리고 할 수 있는 동안까지는, 지혜를 사랑하는(철학하는) 것도, 여러분께 충고를 하는 것도, 그리고 언제고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 만나게 되는 사람한테 이 점을 지적하는 것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147쪽

그대는 가장 위대하고 지혜와 힘으로 가장 이름난 나라인 아테네의 시민이면서, 그대에게 재물은 최대한으로 많아지도록 마음 쓰면서, 또한 명성과 명예에 대해서도 그러면서, 슬기(사려 분별)와 진리에 대해서는 그리고 자신의 혼이 최대한 훌륭해지도록 하는 데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 148쪽

제가 구금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올바르지 못한 결정을 내리려는 여러분편이 되느니보다는 오히려 법과 올바른 것의 편이 되어 온갖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 157쪽

최후 진술

그러면 추방형을 제의할까요? 아마도 여러분께선 이를 저에 대한 형량으로 정했으면 하실 겁니다. 그러나 아테네인 여러분! 그땐 제가 목숨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걸로 될 겁니다...아마도 누군가가 말함 직합니다. “소크라테스여! 그대가 침묵을 하고 조용히 지낸다면, 추방되어 나가서도 살아갈 수 있지 않겠소?”하고 말입니다. - 175쪽




[오장환 문학관]( http://janghwan.boeun.go.kr )을 다녀왔습니다. 오장환은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해방 직후까지 활동했던 시인입니다. 그는 시에서 제국주의, 전쟁, 일본 등을 비판했다고 하네요.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사회주의자나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 심했습니다. 오장환도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다 북으로 갔다고 하네요. 친일하던 자들이 해방 이후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진실을 말하는 자들을 죽이거나 괴롭혔던 거지요.

한국 정부는 오랜 세월 오장환의 시를 읽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오장환의 스승이었던 정지용도 마찬가지지요. 1988년이 되어서야 이들의 시에 대한 금지가 사라졌고, 우리는 그의 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침묵의 세월이 길었던 거지요.

누군가 한국 정부를 비판하면 한국의 우익들이 하는 말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정부 비판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북한 같았으면 벌써 정치수용소에 갇혔을 거야. 한국에 사는 걸 고마워해야 해. 어디서 사회주의니 뭐니 떠드는 거야!

정말 한국에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자유가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자유가 있습니까? 만약 공무원 가운데 누군가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이 일으킨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짤리지 않을까요? 정말 한국에는 생각하고 말할 자유가 있는 겁니까?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토론을 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고 있습니다. 사상 검증의 도구로까지 이용되지요.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나오는 나라가 믿는 신을 믿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을 침묵 시킵니다. 침묵에 대한 대가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캐묻지 않은 삶은 사람에게는 살 가치가 없는 것 - 176쪽

민주적으로, 시민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재판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인 셈이기도 하지요.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뻔뻔스러움과 몰염치가 부족해서며, 또한 여러분이 듣기에 가장 기분 좋을 그런 것들을 여러분한테 말하고 싶어 하는 열의가 부족해서입니다. 제가 통곡을 하며 탄식한다든가 또는 그 밖의 것들로서, 제가 말하듯, 저답지도 않은 여러 가지 짓거리와 말을 하고자 하는 열의가 부족해서입니다...저는 그렇게 하고서 사느니보다는 이런 식으로 변론하고서 죽는 쪽을 택합니다. - 178쪽

최후 진술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저의 아들들이 성년이 되고 나서, 여러분, 만일에 그들이 [사람의] 훌륭한 상태(훌륭함, 덕)에 대해서보다도 재물이나 그 밖의 것에 대해서 먼저 마음을 쓰는 것으로 여러분한테 여겨진다면, 제가 여러분을 괴롭혔던 것과 똑같은 짓으로 괴롭힘으로써 응징을 하십시오. 또한 만일에 그들이 아무 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비난을 했던 것과 똑같이, 이들에게 비난을 하십시오. 이들이 마음 써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으며,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 188, 189쪽

사람들이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다 법정에 서고 사형을 선고 받았던 소크라테스는 최후 진술까지도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로 매듭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