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배움-책

아리스토텔레스 - [형이상학] 4권

순돌이 아빠^.^ 2012. 1. 6. 21:07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김진성 옮김

 

 

있는 것을 있다는 조건 아래에서 연구하는, 그리고 이것 자체에 ‘들어 있는 것’(속성)들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우리도 ‘있다는 조건 아래에서 본 있는 것’의 으뜸 원인들을 파악해야 한다. - 148쪽

 

‘있다는 조건 아래에서’라고 합니다. 있기 때문에 연구하는 거고, 있기 때문에 연구할 수 있는 거겠죠. 반대로 없는 것도 있다고 치고 논의를 전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정거래제도는 시장경제체제의 기본원리인 '기업 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경제활동의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 ‘설립목적과 기능’, 공정거래위원회, http://www.ftc.go.kr

 

우리가 공정거래에 대해 인식할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있나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든 개인이든 쟁투를 벌이면 힘센 놈이 약한 놈을 누르게 되는데, 혹시나 해서 상상해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있나요? 관급 공사 수주하는 거나 마트에 납품하는 거나 온통 힘에 따라 움직이는 데 어디에 공정거래가 있나요?

 

 

 

공정거래라는 게 없는데 누군가 공정거래가 있다고 말을 한다면, 혹시 공정하지 않음을 감추기 위해 공정함이 있는 것처럼 내세우는 건 아닌가요?

 

자본주의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면 공정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고, 그 이유 가운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지배적인 것과 비지배적인 것 또는 부수적인 것이 있겠지요.

 

있는 것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해지지만, 하나인 것에, 어떤 한 가지 실재에 관계 맺어, ‘한 이름 다른 뜻’이 아닌 방식으로, “있다”고 말해진다...모든 건강한 것들에 관해 한 학문이 있듯이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한 가지 것에 따라 말해지는 것들’에 관한 탐구뿐만 아니라, ‘한 가지 실재에 관계 맺어 말해지는 것들’에 관한 탐구도 한 학문의 과제다. - 148, 149쪽

 

정치학은 정치에 관한 학문이지 윤리에 관한 학문은 아닙니다. 흔히 벌어지는 실수는 하나의 학문이 세상 모든 것을 다루려 하는 것입니다. 정치가 문화고, 문화가 언어고, 언어가 철학이고, 철학이 윤리고 뭐 이런 식이지요. 하나의 학문이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니 이리저리 떠다니는 겁니다. 아니면 이것저것 죄다 집어 삼키고 싶어 하는 거구요.

 

의학은 병과 건강에 관한 학문이지 의자나 자동차에 관한 학문일 수 없습니다. 실재에 대응하는, 그 실재에 관한 학문만이 있는 거지요.

 

모든 곳에서 학문은 주로 ‘으뜸가는 것’(원리), ‘다른 것들이 의존해 있는 것’,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다른 것들이 이름을 얻게 되는 것’에 관계한다. 그리고 이것이 실체라면, 철학자는 실체들의 원리와 원인을 (파악해서) 가져야 할 것이다. - 150쪽

 

자본주의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사회에 자본주의 생산양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부장제도 있고, 인종주의도 있지요. 다만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다른 사회관계를 지배하고 규정합니다.

 

여성 노동력이 많이 필요치 않던 사회에서는 여성들에게 ‘집에 있어라’, ‘얼굴을 가려라’라고 했지만 여성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들도 사회에 참여해라’, ‘남녀는 평등하다’라는 주장을 펴는 거지요.

 

 

 

생산양식이 남성-여성 관계를 지배하고 규정합니다. 생산양식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생산양식이 지배적이라는 겁니다. 남녀가 평등하기 때문에 얼굴 가리개를 걷으라는 것이 아니라 일을 시키기 쉽게 하기 위해 얼굴을 드러내라고 하는 거지요.  만약 남성-여성 관계가 생산양식을 규정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남성-여성 관계가 규정한 어떤 사회될 겁니다.

 

A에 대해 안다는 것은 A를 B가 아니라 A이게끔 하는 규정을 찾는 건 아닐까요?

 

‘하나’는 ‘있음’과 따로 떨어져 있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각 사물의 실체는 (어떤 것에) 딸린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하나’이다. 그것은 또한 일종의 ‘본질적으로 있는 것’이다. - 151쪽

 

머리카락이 길면 여성이고 짧으면 남성인 것이 아니라 여성이 여성이고 남성이 남성인 본질 또는 실체가 있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홀과 짝을, 어떤 사람들은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어떤 사람들은 한정됨과 한정되지 않음을, 어떤 이들은 우애와 싸움을 (사물들의 원리로서) 든다. - 157쪽

 

제 지갑에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부적이 들어 있습니다. 저에게 닥칠 나쁜 일을 막아준다는 거지요. 부적이 제 삶을 규정한다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 종이 쪽지 하나가 제 삶을 규정한다고 생각지 않는데, 규정한다고 생각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있다는 조건 아래에서 있는 것들, 그리고 있다는 조건 아래에서 본 이것에 ‘들어 있는 것’(속성)들을 탐구하는 것은 분명히 한 학문의 일이다. 이와 더불어 또한 분명히, 같은 ‘이론에 관련된 학문’(이론학)이 실체들뿐만 아니라 이것들의 속성들을, 또한 앞서 말한 개념들 외에 먼저와 나중, 무리(類)와 꼴(種), 전체와 부분 따위(의 개념들)를 탐구한다. - 158쪽

 

제가 이 비싸고 두꺼운 책을 읽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A에 대해 알고 싶다’고 얼른 A에 얼굴을 들이밀면 A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감각이나 경험은 할 수 있겠지만 A가 무언지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A를 알 수 있을까요? 인식이란 어떻게 얻을 수 있을 걸까요?

 

A에게 얼굴을 들이밀기 전에 안다는 것,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앎의 시작

 

우리는 조금 전에 ‘(어떤 것이) 있으면서/…이면서 동시에 있지/…이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받아들였고, 이로써 그것(모순율)이 모든 원리들 중 (인식론적으로) 가장 확실한 원리임을 보였다. - 163쪽

 

A와 B의 주장이 모순되는데 A와 B 둘 다 맞을 수는 없습니다. 서로 싸우고 있어서 싸우지 말라고 ‘그래 니 말도 맞고, 니 말도 맞다’라고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

 

한정되어 있지 않고 무한히 많은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면, 분명히 어떠한 논의(‘대화’)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가지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름들이 어떠한 뜻도 갖지 않을 경우 남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고, 심지어는 자신과의 대화마저도 단절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 한 가지 것에 한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 165쪽

 

어떤 것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참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그는 ‘그것은 또한 희고 (키가) 크다’고 덧붙이지 말고, 한 가지 것을 뜻하는 것으로써 대답해야 한다.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단순히) 딸린 것’(단순 속성)들을 (낱낱이) 열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167, 168쪽

 

A를 앞에 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좋습니다. 그동안 내가 A에 가졌던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려는 것은 A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지, A와 관련 있는 것들을 모두 다 따져보자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측면은 고려하되 대상 A가 무엇인지를 찾는데 집중해야겠지요.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지 말자는 거지요.

 

어떤 것에 대해서 그것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참이라면, 그것은 ‘두 발 달린 동물’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이 뜻한 바였기 때문이다}. 이럴 수밖에 없다면, 같은 것이 동시에 두 발 달린 동물이 아닐 수는 없다. “있음/…임은 필연적이다”는 ‘있지/…이지 않음은 불가능하다’를 뜻하기 때문이다. - 167쪽

 

허리 운동 삼아 두 손을 땅에 대고 네 발 동물처럼 걷는 연습을 한다 해도, 사람을 두 발 달린 동물입니다.

그는 이것이 사람인지 묻는 사람에게 그것이 동시에 아니-사람이기도 하다고 (그것에) 덧붙여 대답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대화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모순을 동시에 허용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실체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무엇-이었는가’(어떤 것의 본질)를 없앤다. - 168쪽

 

‘흼’은 사람에게 (단순히) 딸린다. 이는 사람이 희기 때문이지, 사람이 ‘본질적으로 흼’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단순히) 딸린 방식으로만 말해진다면, “(단순히) 딸린 것”(단순 속성)이 늘 어떤 ‘바탕이 되는 것’(주어)에 대한 술어를 뜻할 경우, 그것들이 말해지는 으뜸가는 “그것에 대해”(주어)는 있지 않을 것이다. - 169쪽

 

‘자본주의란 ****이다’라고 하면 자본주의는 주어가 되고 ****은 술어가 됩니다. 주어는 자신만으로는 구체성을 획득할 수 없고, 술어를 통해 규정되며 구체성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규정하는 술어가 무한히 많다면 주어에 대한 규정도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털이 나고, 눈과 코가 있으며, 이빨도 있고, 손도 있고 등등으로 나가면 한도 끝도 없고, 인간이 무엇인지 결국 알 수 없게 됩니다.

 

왜 그는 어느 날 새벽에 우연히 우물이나 낭떠러지에 이르렀을 때 곧장 그곳으로 빠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그곳으로 빠지거나 떨어지는 것이 좋은 것이자 똑같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는가? 그러니 분명 그는 어떤 것은 (어떤 것보다) 더 좋고 어떤 것은 (어떤 것보다) 더 좋지 않다고 믿고 있다. - 174, 175쪽

 

‘확실한 것이 있다고 하던 근대의 패러다임은 이제 끝났어. 불확실성과 다양성만이 있을 뿐이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요. 그러던 사람도 아이가 쥐약을 먹으려고 하면 쥐약이 아이에게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놔두는 게 아니라 확실히 독이라고 판단하고 아이가 쥐약을 못 먹도록 할 겁니다.

 

그들이 앎을 갖지 못하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서 그렇게 믿는다면, 그들은 아픈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더 건강을 (얻고자) 걱정하듯이 더욱 더 진리를 (얻고자) 걱정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막연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앎을 가진 사람에 비해 진리에 관련하여 건강한 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 175쪽

 

정말 그렇게 확실한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몰라서, 확실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검토해보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잘 하는 사람 어디 있나요. 하다보면 잘 하게 되는 거지. ^.^

 

실재와 감각

 

같은 포도주라도 이것이 변하거나 (이것을 마시는) 몸(신체)이 (그 상태가) 변할 경우, 어떤 때에는 달콤하고 어떤 때에는 달콤하지 않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달콤함이 있을 때는 이것은 있는 것으로서, 결코 변하지 않으며 이것에 관하여 (미각은) 늘 참인(맞는) 말을 하며, ‘달콤하게 될 것’은 필연적으로 그런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 184쪽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바탕이 되는 것들은 감각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은 분명히 자신에 대한 감각이 아니며, 감각에 반드시 앞선, 감각 외의 다른 어떤 것이 또한 (그 대상으로서) 있기 때문이다. - 185쪽

 

내가 돈 잘 벌고, 번 돈으로 놀아도 자본주의고, 내가 비정규직으로 언제 짤릴지 몰라 불안에 떨어도 자본주의입니다. 내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자본주의는 그대로 있는 거지요.

 

대상A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대상A에 대한 인식을 얻으면 우리는 마치 감각이 대상에 우선해 있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상A가 먼저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각A나 인식A가 생기는 거지요.

 

실재는 인식에 우선합니다. 감각된 것들을 바탕으로 인식을 얻는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유가 존재에 우선한다면 그건 인식이 아니라 상상이겠지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나 문학일 겁니다. 학문이기 보다는 영화 시나리오일 거구요.

 

모순되는 것(술어)들이 동시에 같은 것(주어)에 대해 참일 수 없기 때문에, 반대되는 것(성질)들도 분명히 동시에 같은 것(대상)에 들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반대되는 것들 중 하나는 (반대되는 것임에) 못지않게 (또한) 결여, 즉 실체(‘꼴’)의 결여이기 때문이다. - 189쪽

 

 

 

(두 개의) 모순되는 것(술어)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으며, 하나(의 주어)에 대하여 우리는 (모순되는 두 술어들 중) 임의의 것(술어)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둘 중 하나만을 해야 한다. 이 점은 먼저, 참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 보면 분명하다. 있는/…인 것을 있지/…이지 않다거나, 있지/…이지 않은 것을 있다/…이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인 반면, 있는/…인 것을 있다/…이다고, 있지/…이지 않은 것을 있지/…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참이다. - 189, 190쪽

 

[다음]에 있는 국어사전에서 ‘복지국가’라는 낱말의 뜻을 찾아보면 ‘국민 전체의 복지 증진 및 행복의 추구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보는 국가’라고 나옵니다.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국가가 있을까요? 민중의 것을 빼앗아 지배자들에게 안겨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