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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니코마코스 윤리학] 1~3권

순돌이 아빠^.^ 2012. 1. 21. 23:31

 

 

 

1권

 

모든 기예와 탐구, 모든 행위와 선택은 하나같이 저마다 선(善:좋음)을 지향한다. - 11쪽

 

모든 행동과 추구에 있어서 그 목적이 되는 것이 바로 선이다. 왜냐하면 이런 선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다른 모든 일을 하기 때문이다. - 19쪽

 

모든 행위가 선을 지향한다? 애매~~합니다. 애정남에 물어볼 수도 없고.

 

선(善)은 가장 뛰어난 활동, 가장 으뜸가는 활동에 속할 것이며, 정치야말로 바로 이러한 선한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성질의 것이다. - 12쪽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정치학]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선이나 정치는 실재에 가닿기 보다는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정치란 것이 선을 이용하는 것일 지도 모르구요.

 

사람들은 자기가 선하다는 데 대해서 확신을 얻기 위해 명예를 추구한다. - 15쪽

 

명예, 자신을 향한 어떤 욕망이 있다는 거겠지요. 무인도에 혼자 살면 명예가 필요없을 테니 명예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찾는 것일 거구요.

 

궁극적인 선은 자족적이다...자족이란 것을, 그것만으로도 생활을 바람직하게 하며 또 아무 부족함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행복이 모든 선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 - 20쪽

 

선은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자족과 관련이 있나 봅니다. ‘정의한다’고 했는데요, 대상의 개념을 찾았다기보다 적당히 알아서 정의를 만드는 건 아닐까요.

 

인간의 선이란 결국 덕과 일치하는 정신 활동 - 22쪽

 

행복이 신의 선물이 아니고 덕 혹은 어떤 학습 내지 훈련의 결과라 하더라도, 그것은 역시 가장 신적인 것이다. - 26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에 관한 논의는 ‘선’이란 실재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기 보다 선이란 무엇인지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선이란 없는 것이든지.

 

정치학이란 국민을 어떤 일정한 성격을 가진 인간이 되도록, 즉 선한 인간 그리고 또 고귀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되도록 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 26쪽

 

학문이란 것이 실재하는 대상의 실체 또는 본질을 찾는 것이라면 정치학은 정치의 실체 또는 본질을 찾는 것이겠지요. 인간을 어떻게 만든다는 것은 정치가 할 일이구요. 정치가 말하는 선한 것, 고귀한 것이 정치에 반하는, 정치를 지배하는 이들의 욕망에 반하는 것일 리는 없겠지요.

 

참된 정치학도는 무엇보다도 탁월성에 대해서 연구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 동포를 선하게 하고 법률에 잘 순종하도록 만들기 원하기 때문이다. - 31쪽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이나 정치학을 어떤 입장에서 다루고 있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은 아닐까요?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탁월함이나 선을 설정하고, 이를 관습이나 법률로 만들어 민중들이 따르도록 만드는 거지요. 어른을 공경하라느니 임금에게 충성하라느니와 같은 것을 선(善)이라고 하구요. 그렇게 되면 선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구요.

 

2권

 

입법자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선한 습관을 들이게끔 함으로써 선한 국민을 만든다. 이것은 모든 입법자들이 소망하는 바이다. 이 일을 잘 해 내지 못하는 입법자들은 결국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여기에 좋은 국가 체제와 좋지 못한 국가 체제가 갈라진다. - 36쪽

 

지배하는 국가와 순응하는 국민 => 좋은 나라?

 

플라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마땅히 기쁨을 느껴야 할 일에 기쁨을 느끼고 마땅히 괴로워해야 할 일에 괴로워할 줄 알도록, 아주 어릴 때부터 어떤 방법으로든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교육이다. - 38쪽

 

‘교육’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마땅한 것에 마땅한 태도를 갖는 것이겠지요. 도대체 무엇이 마땅한 것인지는 애매~~합니다. 이렇게 교육이란 것은 인식을 제시하지 못하구요.

 

인간의 덕은 인간을 선한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성품이어야 한다. - 42쪽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마땅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동기로, 마땅한 방식으로 이런 것을 느끼는 것은 중용인 동시에 최선이며, 또 이것이 덕의 특색이다. - 43쪽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 고유의 기능’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일 뿐, 실제로 인간 고유의 기능이 어떤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을 위해 일을 잘하는 것이 말의 덕이라고 하는데, 말의 덕이란 것은 주인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말에게는 괴로운 일 아닐까요? 주인이 보기에는 말이 무거운 짐을 지고도 잘 달리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말이 보기에는 자유롭게 들판에서 뛰어 노는 게 마땅한 한 거 아닐까요?

 

 

내 등에 타고 달리니 시원하고 좋냐? 난 모레 위를 달린다고 힘들어 죽겠다!

 

마땅한 상대와 마땅한 때에, 마땅한 방식으로 간음하느냐에 그 좋고 나쁨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 - 44쪽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쁜 것의 예로 간음을 많이 들고 있습니다. 단지 남편이라는 이유로 하기 싫은 성관계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와 즐겁게 성관계를 하는 것이 마땅한 거, 좋은 거 아닐까요?

 

공포와 태연함의 중용은 용기 - 45쪽

 

중용은 재물을 관대하게 쓰는 상태이다. 그 과도함은 방탕이며 부족함은 인색함이다. - 45쪽

 

아리스토텔레스는 극단을 배제하고 중용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좀 더 따져 보면 어느 만큼 해야 과도한 것인지, 어느 만큼 해야 부족한 것인지가 애매~~~합니다. 어느 정도가 공포이고 어느 정도가 태연인지가 정해져야 그 가운데를 잡을 수 있을 거고, 양 극단이 정해지지 않으면 가운데도 잡을 수 없는 거지요.

 

철학적 논의라는 것은 혹시 이런 게 아닐까요? 뭔가 알 것도 같지만, 따져 보면 애매하고 알 수 없는 것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실재하는 대상들을 파악함으로써 그들의 성질을 밝히기보다, 철학자가 기준이나 분류를 제시한 뒤 자의적으로 대상들을 끼워 넣음으로써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인간 행동, 인간의 선한 행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떤 행동, 어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행동이 있습니다. 먼저 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행동에 대해 파악하고 나서 이것이 선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를 생각해야겠지요.

 

제3권

 

어떤 성질의 행위를 강요된 것이라 할 것인가? 아무 조건이 붙지 않는 경우라면, 원인이 외부에 있고 행위자가 그 외부적 원인에 조금도 관여하는 바 없는 행위를 강요된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52쪽

 

영화 [모던타임즈]에 보면 찰리 채플린이 먹고 살기 위해 공장에 가서 일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고서는 먹을 것을 구할 방법이 없는 거지요. 물론 먹지 않고 죽을 수는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공장으로 가게 하는 것은 강요하는 것일까요, 아닐까요?

 

 

 

선택은 이성적 원리와 사고를 내포하고 있다...우리는 우리의 힘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숙고한다...우리가 숙고하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사람들은 목적을 설정해 놓고 나서 그 목적을 어떻게 그리고 무슨 수단을 써서 달성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여러 개일 때에는 그 중 어느 것을 써야 그 목적을 가장 쉽고 훌륭하게 이루어 낼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한다. - 58쪽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냥 꼴리는 대로 하기보다 찬찬히 숙고해서 한다면 더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겠지요.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고귀한 일이며, 그 행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에  속해 있다면, 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추악한 일이며, 이것 역시도 우리의 자유에 속할 것이다...이렇듯 고귀한 행위나 추악한 행위를 하고 안 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이고, 선한 사람이니 악한 사람이니 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행위를 하고 안 하고에 달려 있다면, 덕 있는 사람이나 악덕한 사람이 되는 것도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고, 우리의 자유에 속해 있다고 해야 한다. - 61쪽

 

인간 행동 가운데 어떤 것까지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걸까요? 자유롭지 못한 데 스스로 하지 않는다고 탓하는 경우는 없을까요? 반대로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남이나 사회 탓을 하면서 하지 않는 경우는 없을까요?

 

첫째는 시민의 용감함이다. 이것은 참된 용감함과 가장 비슷하다. 시민들은, 만일 그들이 용감하지 않을 때 법률에 의하여 받게 될 처벌이나 사람들의 비난 때문에, 그리고 또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얻게 될 명예 때문에 위험을 무릅쓴다. - 68쪽

 

이 말이 맞다면 용감함이란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칭송 때문에, 곧 나를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음식물에 대한 욕망은 본능적이다. 음식물이 없으면 누구나 먹을 것 또는 마실 것을 찾아 헤맨다. 또 젊고 기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메로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동침할 짝을 갈구한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음식물이나 이성을 갈구하느냐 하는 데에 이르면, 누구나가 다 똑같은 것을 갈구하는 것은 아니다. - 75쪽

 

인간에게 식욕이나 성욕이 있다는 것은 매한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어떤 성욕을 어떻게 충족하는지는 여러 가지 모습일 수 있습니다. 사회 권력이나 개인 선택에 따라 많이 달라지겠지요.

 

성폭력 관련 논의가 나오면 일부 사람들이 쓰는 말이 ‘남자는 원래 그래’라고 합니다. 여기서 ‘원래’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성욕을 가진다는 것이고, 이 성욕을 폭력을 통해 채우는 것은 ‘원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본능적인 (식욕 같은 본능) 욕망에 있어서...잘못된 방향은...지나침으로 열려진 방향, 즉 먹기 싫을 때까지 닥치는 대로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는 본능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본능적인 욕망이란 모자란 것을 채우는 것이니 말이다. - 75쪽

 

식욕을 채우는 것은 배고픔을 덜고 육체의 유지․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화려한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흐뭇해하며 남들에게 이런 것을 먹는다고 자랑하는 것은 식욕과 관련 있기보다 과시욕과 관련 있겠지요.

 

무절제하고 방종한 사람은 쾌락을 가져오는 온갖 것들을 갈구하며, 최고의 쾌락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려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놓고 이 쾌락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이것들을 얻지 못할 때도, 또 이것들을 그저 갈구하기만 하고 있을 때도 괴로워한다. 욕망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쾌락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통을 느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말이다. - 76쪽

 

비이성적 존재의 쾌락에 대한 욕구는 채울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솟아나며, 또한 그는 그 욕망을 채우는 수단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욕망의 활동은 그 욕망에 내재하는 힘을 증가시키며 그 욕망이 강하고 격렬할 때에는 생각하는 힘마저 사라진다. - 78쪽

 

남성들의 성적 욕망은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데 그 가운데 하나가 ‘걸그룹’입니다. 무대 위에 젊은 여성들을 올려놓고, 이들에게 유두와 성기는 살짝 가린 채 춤을 추게 한 뒤 그것을 보며 즐깁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벗으라고 요구하기도 하구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인지 아닌지 조차 생각하지 못합니다. 욕망의 실현과 쾌락이 눈앞에 다가오면 올수록 흥분하고 더 강렬한 행동을 하기도 하구요.

 

성욕, 권력욕, 재물욕 등등.

 

절제하는 사람은...그는 건강이나 좋은 상태에 도움이 되는 쾌락들을 자기 분수에 맞게 적당히 요구한다. - 76쪽

단 거 좋아한다고 무작정 먹다가는 이빨 다 썩습니다. 욕망이 건강과 관련 있을 때는 건강도 함께 고려하며 욕망을 충족시켜야겠지요.

 

성욕을 갖고, 성적 욕망을 충족한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욕망이 타인과 관계가 있는 욕망이라면,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