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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8권

순돌이 아빠^.^ 2012. 1. 28. 00:03

 

아리스토텔레스 / 손명현 옮김

 

 

제7권

 

우리가 피해야 할 세 가지 비윤리적 성품이 있는데, 바로 악덕과 자제력이 없음과 짐승 같은 상태이다...짐승같은 상태의 반대는 초인간적인 덕, 영웅적이고 신적인 성질의 덕이 가장 알맞을 것이다. - 151쪽

 

짐승같은 사람, 초인간적인... 애매~~합니다. 인간이 곧 동물이지요. 인간을 넘는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인식하고 있을 때 우리가 그 인식한 양식대로 행동을 하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대상의 인식에 있어, 무지하면서 무지한 대로 행하는 것은 정상이고, 옳은 인식이 있으면서 사용하지 않고 무지하게 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 157쪽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다 행동하기는 어렵겠지요. 기왕이면 자신이 안다고 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노력하면 좋겠지요.

 

쾌락을 생기게 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은 필수적인 것이고, 또 어떤 것은 그 자체가 선택할 만한 것이면서도 과할 수 있는 것이다.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육체적인 쾌락은 필수적이다. 반면에 승리, 명예, 부 등 즐겁고 쾌감을 주는 것들은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 159쪽

 

무릇 이러한 고상하고 좋은 쾌락이나 중간적인 쾌락에 대해서는, 그것에 마음이 움직이고 그것들을 욕망하고 사랑한다고 해서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과할 경우에만 비난을 받는다. - 161쪽

 

욕망은...그것은 속삭인다. 사람을 홀릴 듯이, 생각 깊은 이 마음도 감쪽같이 휘어잡는다. <일리아스> - 164쪽

 

MBC에서 방영한 <남극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을 잠깐 봤습니다. 바다표범인지 뭔지 하는 동물 가운데 수컷들이 번식기가 되어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 피터지게 싸우더라구요. 주변에 있던 새끼들이 밟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싸운다네요.

 

‘남자는 모두 늑대야. 믿지 마’라는 말이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관습을 고정화 시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남성의 성욕이 그만큼 강하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 폭력․부․명예 등을 이용하여 투쟁을 벌이지요.

 

번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끝이 납니다. 그러나 여러 암컷과 자식을 꼭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억지로 성 관계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구요.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은 필요한  것 그것뿐입니다. 굶주렸으면 배를 채우면 됩니다. 그 나머지는 또 다른 욕망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구요.

 

짐승이나 사람이나 모두 쾌락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쾌락이 어떤 의미에서 최고선임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 177쪽

 

언뜻 생각하기에 쾌락과 선은 정반대 방향에 있을 것 같은데, 앞의 문장에서는 쾌락은 선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선이란 것이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 밖에 있는 순수하고 고귀한 어떤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일 테구요.

 

누구나 같은 쾌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쾌락을 추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도 그들이 실제로 추구하는 쾌락은, 그들 스스로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쾌락이 아니고 다른 데 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은 본능적으로, 신적인 것(실제적 쾌락이 아닌 신적인 쾌락)을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 177쪽

 

위의 첫 번째 문장. 인간이란 게 아주 대단한 것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기쁨이나 행복, 뭐 그런 거 아닐까요?

 

두 번째 문장. 누가 ‘고시에 합격해서 아주 기뻐’라고 했다고 하지요. 이 사람은 왜 고시에 합격하고 싶어 하는 걸까요? 돈이 있으면 더 많은 여성을 유혹할 수 있고, 더 많은 여성을 유혹하면 더 많은 성 관계를 할 수 있어서? 높은 지위에 오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쳐다보고 내게 더 관심을 가질 거니까?

 

세 번째 문장. 신적인 쾌락이 무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온갖 화려한 말들로 싸여 있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쾌락이나 기쁨의 뿌리는 단순한 게 아닐까요? 배부르고 싶고, 사랑 받고 싶고, 성 관계 하고 싶고.

 

사람들은 고통을 지나치게 겪는 까닭에, 그 치유책으로서 지나치게 육체적 쾌락을 추구한다. 그런 여러 가지 치유책은 고통에 대한 반대작용인 만큼 강렬한 감정을 낳는다. - 179쪽

 

고통에 대한 반대작용인 만큼 강렬한 감정을 낳지만,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고통은  계속됩니다. 쾌락으로 잠시 잊을 뿐.

 

고통이 없는 쾌락에 지나침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고통과 관계없는 이런 쾌락은 본성적으로 쾌적한 쾌락들에 속하며 - 180쪽

 

마음 통하는 사람과 만나 즐겁게 대화를 하고, 좋은 글을 읽거나 음악을 들며 편히 쉬기도 하고, 좋은 일에 참여 하여 노력하고 등등. 부․명예․성적 욕망 등이 아니어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은 많습니다. 이 즐거움의 끝은 불

안․긴장․초조가 아니라 행복한 기억과 설레는 기다림이겠지요.

 

제8권

 

누구나 마음 속에 친애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또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무엇보다 ‘친애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사실 그런 재물이나 지위, 권세가 있다 해도 남에게 베풀 기회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181쪽

 

부와 권력을 쌓고 또 쌓았지만 누군가의 관심이나 사랑이 없어 좌절하고 쓸쓸함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법 하지요. 혼자 외딴 섬에 사는 사람에게는 부와 권력이 필요 없겠지요.

 

친애는 또한 국민들을 단합하게 만든다. 입법자들은 정의보다 오히려 친애에 더 마음을 기울인다. 왜냐하면 입법자들은 단합을 가장 소중한 목표로 내세우며, 또 친애는 내부분열을 가장 나쁜 적으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 182쪽

 

지배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게 국론분열이니 국민화합이니 하는 것들입니다. 지배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이 나오면 국론이 분열되었다고 하면서,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국민 화합을 주장하지요. 분열이 문제가 아니라 저항이 문제였던 거지요.

 

상대의 유익함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얻을 어떤 좋은 것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쾌락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도 똑같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유머감각이 풍부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들의 성품 때문이 아니고 이들이 그들에게 유쾌하기 때문이다...이때 사랑받는 사람은 그 사람됨 때문이 아니라, 어떤 좋은 것 혹은 쾌락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친애는 만일 상대가 그 전과 달라지면 쉽사리 부서진다. 한쪽이 더 이상 유쾌한 인물이 못 되거나 유익한 인물이 못 되면 다른 한쪽이 더 이상 그를 사랑하기를 그치기 때문이다. - 184쪽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한나라당 사랑해요~’하면서 온갖 인간들이 달려들더니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나는 한나라당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라며 외면합니다. 오직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는 거지요.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의 대표가 ‘부모의 사랑’입니다. 정말 무조건적인가요? 자식이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러지 않나요? ‘다 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라구요?

 

부모의 사랑도 조건부입니다. 내 욕망을 채워주면 한없는 거고, 아니면 그 사랑도 쫑나는 거지요.

 

자기 친구를 위해서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참된 의미에서 친구라 할 수 있다. - 185쪽

 

“친구와 놀다가 배가 고파서 내가 가지고 있던 빵을 친구에게 나눠 줬습니다. 친구가 좋아라 하며 함께 먹었습니다.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기뻤습니다. 다음에 빵이 생기면 또 친구와 나눠 먹고 싶습니다.”

 

내가 기쁘기 위해 니가 괴로운 것도, 니가 기쁘기 위해 내가 괴로운 것도 아닙니다. 니가 기뻐 내가 기쁘고, 내가 기뻐 니가 기쁜 거지요.

 

인간 자체를 위해서는 오직 선한 사람들만이 친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열등한 사람들은 서로 사귀면서 어떤 이익을 얻지 못하면 서로에게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187쪽

 

함께 지내며 상대에게서 기쁨을 찾는 일들이야말로 친애의 가장 큰 표시이다. - 189쪽

 

어려운 일을 겪어 봐야 진짜 친구인지를 안다는 말이 있지요. 이익이 아니라 다른 이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도움 주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고 돈을 챙기는 것이 나쁜 일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최저임금 시간당 4,580원을 못 받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보장하라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겠지요.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함께 만들고 서로의 기쁨도 함께 보살펴 주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명, 두 명 개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사람들이 서로에게 친구가 되고 우정의 관계를 만들면 좋겠지요.

국가들 간의 동맹은 이익을 목적으로 하여 친애적이 된다 - 187쪽

 

한미동맹이란 게 뭐 대단하고 고상한 이상을 꿈꾸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국과 미국의 부르주아들이 서로 손잡고 부와 권력을 유지하자는 거잖아요. 부르주아 동맹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시기 하니까 마치 모두들 위한 것인 양 꾸밀 뿐이지요.

 

요즘 미국과 EU가 이란을 봉쇄하는 데 앞장서고 한국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지요. 국제평화니 어떠니 하지만 사실은 미국 부르주아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요.

 

여러 종류의 친애는 동등성 위에 성립한다...불평등을 내포한 친애가 있다. 예를 들어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친애, 일반적으로 아랫사람을 향한 윗사람의 친애, 아내를 향한 남편의 친애, 일반적으로 피지배자를 향한 지배자의 친애 등이 그것이다. - 191쪽

 

이명박이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을 한다고 하지요. 이명박이 하는 ‘친애’는 어떤 것일까요? 노예가 주인 앞에서 굽실거리며 헤헤거리는 ‘친애’는 어떤 것일까요?

 

A가 B를 지배하고 있는데 A와 B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길까요? A는 잘 지배하기 위해 ‘난 널 사랑해’라고 하고, B는 덜 두들겨 맞거나 덜 빼앗기려고 ‘사랑합니다’라고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친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공동의 재산이다’라고 하는 속담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친애가 공동 생활하는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제들이나 친구들과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지만,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제한된 사물들만이 공동 소유이다. - 195쪽

 

몇몇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니 것 내 것 없이 함께 쓰며 산다고 하지요. 옆에서 보던 사람이 그들이 가진 것이 탐이 나서 빼앗으려 합니다. 남이 뺏으려 하는데도 니 것 내 것이 따로 없으니 다 내어 줘야 할까요? 함께 나눠 써야 친구이니 저 혼자만 가지려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지요. 가진 것을 내어 줄 필요도 없구요.

 

소유는 나쁜 것이고, 무소유는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어떻게 소유하고 공유하냐가 문제겠지요.

 

공동체들 가운데에는 쾌락 때문에 생긴 공동체도 있다. 종교 단체나 사교 단체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저마다 제사를 지내거나 사교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공동체는 국가라는 공동체의 하부 구조이다. 국가공동체는 눈앞에 있는 이익을 구하지 않고 우리의 삶의 전체를 위해서 이익이 되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 196쪽

 

종교가 쾌락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니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맞는 말인 것도 같구요. 종교가 국가의 하부 구조라는 것도 맞는 말 같구요. 그런데 국가공동체가 전체를 위해서 이익이 되는 것을 구한다는 것은 헛다리짚거나 일부러 거짓말 하거나.

 

국가체제의 종류는 세 가지이다...군주제․귀족제 그리고 공화제이다. 이 가운데 공화제는 재산 능력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유산자산자제(有産者制)라 하는 것이 적절할 듯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화제라 부른다. 이것들 가운데 최선은 군주제이며, 최악은 유산자산자제이다. 군주제가 타락한 것이 참주제이다. 이 두 체제는 1인 지배의 정치체계이지만 또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즉, 참주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구하고, 군주는 그 백성의 이익을 구한다. 사실 자족적이며 모든 선에 있어서 자기 백성을 능가하지 않고서는 군구가 아니다. 이런 사람은 그 이상의 어떠한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참주는 자기 자신에게 선이 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196, 197쪽

 

유산자산자제는 민주제로 옮아간다. 사실 이 체제는 서로 그 체제의 한계에서 접한다. 유산자산자제도 다수의 지배를 이상으로 하며, 또 재산이 있는 사람은 모두 균등하게 평가된다. - 197쪽

 

공화제를 유산자산자제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부르주아 사회를 말하는 거지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말하는 건 아닐까요.

 

 

 

 

경험으로 봤을 때 좀 더 자기 이익을 챙기는 군주가 있고, 좀 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군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군주네요. 눈앞에서 보이는 것은 성군聖君이냐 폭군暴君이냐이지만 그 뒤에는 군주를 만들어내는 다른 사회 체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감각 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지만 인식할 수는 있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 여러 국가체제와 비슷한 것들, 이를테면 그 모형을 가정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아버지와 그 아들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군주제 형태를 가진다. 아버지는 그 자녀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 197쪽

 

말이 좋아 돌본다는 거지, 지 맘대로 자식을 인생을 휘젓지요. 군주가 애민愛民,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도 ‘내 말 잘 들으면 적당히 돌봐 줄게’이구요. 국가가 내세우는 복지라는 것도 그런 것일 테구요.

 

민주제는 주로 주인 없는 가정에서 발생하거나(그곳에서는 누구나 같으므로), 혹은 지배자가 약하여 누구나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 198쪽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민주제라는 것은 어딘가 혼란스럽고 엉망진창인가 봅니다.

 

군주와 백성들 사이의 친애는, 베풀어지는 복리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다...본성적으로 아버지는 그 자식들을, 조상은 자손을, 군주는 그 백성을 지배하게 마련이다. - 198쪽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사람 가운데는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우리한테 베풀어 준 것이 많다는 것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박정희는 박정희고, 박근혜는 박근혜로 구별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안 되는 거지요. 박정희라는 군주의 친애, 그가 베풀어준 것들 때문에 그가 자신을 지배하는데도 고맙다고 하는 겁니다.

 

군주는 순조로운 지배를 위해 적당히 베풀며 친애하고, 민중은 그것에 감사하며 친애하는 거지요. 군주와 민중의 친애.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참주제 속에는 친애가 거의 없거나 혹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는 공통적인 것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정의도 없지만 친애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술자와 도구, 정신과 육체, 주인과 노예 사이에는 정의도 친애도 없다. 말이나 소에게도 그러하며, 또 노예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노예와 주인 사이에는 공통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노예는 생명 있는 도구요, 도구는 생명 없는 노예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노예인 한 그 노예와는 친애가 있을 수 없으나, 그가 인간인 이상은 그에 대한 친애가 존재한다...참주제에도 친애와 정의가 조금은 존재한다. 그러나 민주제에서는 더 넓은 범위에서 친애와 정의가 존재한다. 서로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는 공통의 것(공통성)이 많기 때문이다. - 199쪽

 

주인이 보기에 노예는 사람이 아니니 그들 사이에 친애가 있을 수 없겠지요. 노예는 생명 있는 도구요, 말하는 도구일 뿐이니까요. 자본가에게 노동자도 생명 있는 말하는 도구일 뿐이겠지요.

 

동등해야 친구도 되고 우정도 생기겠지요. 왜 친구가 되지 못하냐고 묻기 전에 서로가 동등한지부터 물어 보는 건 어떨까요?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일부처럼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서 자신들이 생겨 나왔다는 이유로 사랑하기 때문이다...피생산자는 생산자에게 속하지만(예를 들어 치아나 머리카락이나 이 밖의 어떤 것이나 이것을 소유하는 사람의 것임), 생산자는 피생산자에게 속하지 않으며, 또한 속한다 해도 그 정도가 아주 적다. - 200쪽

 

가부장제 가족에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하나의 독립적인 개인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나를 나아줬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부모-자식의 사랑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불평과 비난은 주로 유익에 입각한 친애에서만 생기는 것으로, 이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덕으로 맺어진 친구는 서로 상대의 행복을 염려하며...아무도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 해 주는 사람 때문에 마음을 상하는 일은 없다..저마다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선이므로...이런 친애에 있어서는 서로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즐긴다면, 둘 다 원하고 있는 것을 얻기 때문이다. - 202쪽

 

서로 상대의 행복을 염려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겁습니다. 접대한다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떠들고 놀았는데 돌아서면 허전하지요. 옛 친구가 그립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