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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 [니코마코스 윤리학] 4권, 5권, 6권

순돌이 아빠^.^ 2012. 1. 23. 23:26



4권

어떤 사람들은 공포심에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 이것은 남의 물건을 가지면 자신의 물건도 쉽사리 빼앗기리라는 공포심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두려움 때문에 인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재물을 갖지도 주지도 않는다. - 84쪽

부르주아 사회의, 부르주아들 사이의, 부르주아 법의 정직.

호탕함은 우리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보는 지출들에 속한다. 예를 들어 감사의 봉헌, 신전 건축과 희생 제사와 같은 신들과 관련된 지출들...국가적인 축제를 크게 베풀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때처럼 공공의 명예심을 만족시키는 온갖 지출들 - 86, 87쪽

통 큰 사람, 호탕한 사람이 주로 하는 일이 종교나 정치와 관련된 일에 돈을 쓰는 것이라면 호탕한 사람은 껍데기 화려한 잔치의 돈 줄 대는 사람? 가난한 이들의 삶을 위해서보다는  화려함과 명예를 위해 한 판 크게 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크게 웃으며 자랑스러워 하구요.

음울한 사람들은 쉽사리 노여움을 풀지 못하고, 아주 오래도록 그것을 가슴 속에 품는다. 그것은 그들이 그 감정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분풀이를 하면 노여움은 풀린다. - 96쪽

요즘 학교 폭력에 관한 얘기가 많습니다. 가해자들은 가해자가 되기 이전에 피해자였던 것은 아닐까요? 부모와 가족, 학교와 교사에게 억압당하고 괴롭힘 당했지만 억압이나 괴롭힘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힘이 약하니까요.

그들의 감정은 음울한 분노로 쌓여갔고,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분풀이를 하면서 노여움을 풀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가해자의 마음이 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약하고 음울했던 거지요.





돈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서 이득을 보려고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은 아첨꾼이다. - 98쪽

물건을 판매하는 노동자들에게 친절을 강요하면서 아첨꾼이 되라고 하고 있지요. ‘커피가 뜨거우시니 조심 하세요’라는 말까지 하게 되구요. 이러다가는 ‘옷님이 가지신 색깔님이 고객님과 잘 어울리십니다’라고 하겠습니다.

중용을 지키는 사람은 ‘꾸밈없는 사람’이며, 행동에 있어서나 말에 있어서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만을 자기 것이라 하고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자기 것으로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다. - 99쪽

이 문장에서 ‘중용을 지키는 사람은’을 빼면 참 좋은 문장입니다.

5권

합법적으로 행하는 모든 일은 어느 의미에서 옳은 일이다. 입법에 의하여 정해진 모든 일은 합법적이며, 또 우리는 이것들 하나하나를 옳다고 말한다. 그런데 법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 모두의 공동이익, 혹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이익을 목표로 삼고 제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과 같은 하나의 단일한 방식에 따라, 국가적 공동체를 위한 행복 혹은 행복의 조건들을 만들어내고, 보전하는 것을 정의로운 것이라고 부른다. - 106쪽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이익을 목표로 법을 만든다는 것은 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한 것이고, 사람들 모두의 공동이익이라는 것은 아니면서 그런 척하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이명박이 모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법을 따르는 것이 정의? 준법정신은 지배자의 이익을 지키는 정신? 세금 잘 내면 착한 사람? 왜냐하면 지배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법은 온갖 미덕을 실천할 것을 명령하고 악덕은 어느 것이나 행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미덕 전반을 생기게끔 하는 것들을 법규정 가운데서도 특히 공공의 선을 위한 교육을 염두에 두고서 제정된 것들이다. - 108쪽

지배자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정의이고 선이고 덕이라면, 법은 민중들의 행동을 세세한 것까지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 교육은 지배자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

사람들의 공동 생활은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 - 114쪽

사실 교환을 위하여 서로 관계하는 것은 두 의사 간이 아니고, 한 명의 의사와 한 명의 농부처럼 일반적으로 서로 다르고 균등하지 않은 사람들끼리이다. 그러나 교환이 이루어지려면 이들은 균등해져야 한다. 이런 까닭에 교환되는 모든 것은 서로 비교가 가능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돈이 생겼으며, 또 돈은 가치의 의미상으로 하나의 매개자 노릇을 한다. 왜냐하면 돈은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집 한 채 혹은 일정한 양의 식량과 교환할 수 있는 신발의 숫자는, 집 짓는 인력의 양과 신발 만드는 인력의 양의 비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교환이니 공동 관계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 114, 115쪽

균등해야 교환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교환은 불균등하게도 일어납니다. 자본가가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할 때 균등한 듯 보이나 불균등한 교환이 일어나는 거지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내어 준만큼 노동자에게서 받는다면 이윤이란 게 생길 수 없을테니까요. 교환은 교환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균등하게도, 불균등하게도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요.

가치는 상품의 사회적 관계이고 경제적 특질이다. 일정한 가치를 가지는 책 한 권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빵 한 덩이는 서로 교환되며, 상이한 물질 속에 담긴 동일한 가치일 뿐이다...등가물로서의 상품에는 상품의 모든 자연적 속성이 소멸되었다. 그것은 다른 상품들과 더 이상 질적인 특수 관계에 있지 않으며, 다른 모든 상품의 일반적 척도이자 일반적 대표자, 일반적 교환 수단이다. 가치로서 그것은 화폐이다...가치로서의 상품은 생산물로서의 자신과 구별된다. - 칼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Ⅰ], 백의, 2000, 118~119쪽





정치적인 옮음은 자족적이기를 목표로 삼고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구성원들, 즉 자유로운 동시에 비례적으로나 산술적으로 균등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한다. - 118쪽

여기서 여성과 노예, 어린이는 자유민에서 배제됩니다. 정치적인 옮음은 어느 계급이나 성의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배제한 상태에서 찾는 것인가 봅니다.

시민들의 공동생활과 연대, 기쁨과 즐거움은 자유롭고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하겠지요. 가까운 친구들이 모여 노는 모습을 보면 함께 있어서 즐겁고, 작은 일에도 크게 웃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서서 도움 주고 챙겨 주려 합니다.

한 무리의 인간이 다른 무리의 인간을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지배하는 사회이지만, 동등하고 연대하며 서로의 기쁨을 찾아가는 관계가 큰 바다 위의 섬처럼 곳곳에 있는 거지요.

우리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옳은 이치에 따라 지배가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란 본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며, 마침내 참주까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지배자는 정의의 수호자이며, 또한 균등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 118쪽

하늘의 뜻이란 게 있고, 하늘의 뜻을 지키고 실행하는 사람이 황제가 되겠지요. 황제가 하는 일은 인간으로써 타인을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천명(天命)에 따르며 천명을 이행할 뿐이라는 거지요.

노비라든가 일정한 나이가 되어 독립하기에 이르기 전의 자기 자식은, 마치 자신의 부분과 같다. 그런데 누구도 일부러 자신의 일부를 해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일부, 즉 자식에 대한 정의롭지 못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 119쪽

노예제 사회의 노예, 가부장제 사회의 자식은 주인과 아버지의 소유입니다. 정의는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한다고 했으니 주인과 소유물 사이에는 정의가 필요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도구가 무엇인지, 자기 행위가 어떠한지를 알고서 남을 해한다’고 할 때, 거기에다 ‘상대방의 소원에 어긋나게’란 것을 추가해야만 하지 않을까? - 124, 125쪽

누군가를 지배한다거나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의 의지에 반하는 의지를 가졌거나, 가졌다고 내가 의심할 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의자는 가진 사람이 이용할 뿐 사람이 의자를 지배한다고 할 필요는 없겠지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가를 아는 것은 그리 대단한 지혜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옳은지를 아는 것은 무엇이 건강에 좋은지를 아는 것보다 더 큰일이다. - 127쪽

옳은 일이라고 교육 받은 것, 관습적인 것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면서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알고 있는 걸까요? 왜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높임말을 써야 하나요?

제6권

정신 안에는 행위와 진리를 다스리는 것이 셋이 있다. 감성․이성․욕구가 바로 그것이다...행위의 출발점은 선택이고, 선택의 출발점은 욕구 및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이성이다. 그러므로 지성과 사유가 없다면, 또는 윤리적인 성품이 없다면 옳은 선택을 할 수 없다. 좋은 행위와 그 반대의 것은 사유나 성품 없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133, 134쪽

이제 곧 설입니다. 차례상 준비로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차례 지내고 나면 차례 음식이 남아서 걱정을 하겠지요. 귀신이 와서 정말 먹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잠깐의 차례를 위해 여럿이 고생을 해야 하는데 이런 차례를 계속 지내야 하나요? 옛날부터 그래 왔으니 당연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요?

인간이 가진 능력 가운데 하나는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학문적 인식의 정의에 대해서는 단지 비슷한 것을 그럴듯하게 말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상정하는 바와 같이, 학문적으로 인식되는 대상이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도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우리의 관찰 범위 밖에서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를 우리로서는 알지 못한다. - 134, 135쪽

올해는 용의 해라고 합니다. 용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용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그것은 용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용에 대한 인식’에 대한 인식일 겁니다.

모든 학문적 인식은 가르칠 수 있고, 그 인식의 대상은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가르침은, 우리가 <분석론>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언제나 ‘이미 알려진 것’에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때로는 알려진 것으로부터의 귀납을 통해서 또 때로는 연역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납은 이미 알려진 원리에서 보편적인 것을 이끌어내는데, 연역은 보편적인 것들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연역도 원리들로부터 출발하는 셈이지만 이 원리들에 대한 연역은 없으므로, 이것은 귀납에 의해 쓰이는 것들이다. - 135쪽

2는 1에 1을 더한 것이고, 2는 1보다 큽니다.

의견은 ‘다른 방식으로도 있을 수 있는 것’에 관한 것 - 138쪽

학문적 인식은 논증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고, 기예나 실천적 지혜는 ‘다른 방식으로도 있을 수 있는 것들’을 다루는 것 - 138쪽

지혜는 직관적 지성과 학문적 인식이 합쳐진 것이며, 가장 고귀한 일들에 대한 최정점의 학문적 인식이다.,,철학적 지혜란 본성상 가장 고귀한 것들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학문적 인식이다. - 139쪽

과학이나 학문은 인식과 관계 맺고, 철학이나 지혜는 의견과 관계 맺는 것은 아닌지. 지혜로운 사람은 조금 더 나은 의견을 가진 사람 정도?

자기 자신의 잘됨이란 가정이나 국가,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141쪽

개인A는 개인B, 개인C, 개인D 등과 관계를 맺고 삽니다. 개인A가 국가를 이용해 개인B, 개인C, 개인D 등을 지배할 때는 개인들이 잘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이 저 혼자 산다는 것도 어렵습니다. 개인들이 연합하는 방식으로 살면 좋겠지요.

그것이 학문적 인식인지, 의견인지, 짐작을 잘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 143쪽

철학적 지혜는 정치 외에도 국가의 모든 일에 관여하며 신적 존재의 것으로부터 나온 이성이므로, 실천적 지혜보다 우위이다. - 150쪽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은 정치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 보다 학문에 대한 이야기가 더 들을 게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