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대학생 승민(엄태웅)은 같은 학교 학생 서연(한가인)을 사랑합니다. 둘이 함께 여행도 가고 그러지요.
승민에게는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냥 친구가 아닌 연인이 되고 싶은데 아직 서연의 마음을 확실히 모른다는 겁니다.
서연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으로 하고 서연의 집 앞에서 기다립니다. 고백의 목적은 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보다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은 데 있겠지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술에 취한 서연이 재욱의 차에서 내렸고, 재욱은 서연을 부축해서 서연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이 모습을 본 승민은 미친 듯이 날뛰며 울고불고 합니다. 다음날 서연을 만나서 던지는 말.
이제 꺼져 줄래
2.
승민이 본 것은 재욱과 서연이 집에 들어갔다는 것뿐입니다. 사실 확인이 가능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방문에 귀를 대고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 하지만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승민은 서연이 재욱과 함께 방에 들어간다는 것을 곧 ‘섹스한다’로 여겼겠지요. 사각거리는 소리는 옷 벗는 소리로, 비닐 부시럭거리는 소리는 콘돔 봉지 뜯는 소리로, ‘아’하는 소리는 서연의 신음 소리로 여겼겠지요.
둘이 정말 섹스를 했는지, 아니면 서연을 눕혀 주고 재욱이 나왔는지, 서연이 잠든 사이 재욱이 방 한 귀퉁이에서 잠이 들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주어진 정보는 제한되어 있는데 승민이 이 정보를 섹스와 곧바로 연결시킨 겁니다. 닫힌 방문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게 만들었고, 승민의 가슴에는 온갖 의심과 상상이 가득해졌겠지요.
승민이 제한된 정보를 성과 바로 연결시킨 까닭은 자신의 성욕 때문이었을 겁니다. 내가 서연과 섹스를 하고 싶은데, 재욱이 서연과 섹스를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겁니다. 재욱과 서연의 섹스는 오직 승민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구요.
질투와 의심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서연이 지나가는 말로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라고 말을 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승민은 이 말을 '나는 재욱과 함께 살고 싶어'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와 재욱 사이에는 ㅈ과ㅇ이 함께 들어가고, 이를 근거로 승민의 의심은 자유를 재욱으로 만드는 거지요.
많은 남성들이 자기 애인인 여성의 과거 연애사나 현재의 인간관계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그 놈과 잤어?’입니다.
나만 너하고 섹스하고 싶은데 왜 다른 놈과 했거나 하냐는 원망과 질투와 분노와 애원이 함께 담겨 있는 물음입니다.
3.
서연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던 승민. 함께 여행을 가는 것도, 음악을 함께 듣는 것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승민에게는 서연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섹스만이 승민이 서연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겠지요.
그런데 사실은...
승민이 서연을 기다리는 동안 서연 또한 승민을 기다리고 있었고, 서연의 마음은 재욱이 아니라 승민에게 가 있었습니다. 승민의 성욕은 이런 서연의 마음을 외면했던 거지요. 서연의 마음을 마음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승민의 성욕이 훨씬 강한 힘을 지녔던 겁니다.
성욕이 걷어차버린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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