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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집착하는 부모

순돌이 아빠^.^ 2012. 6. 21. 10:10




0. 어떤 부모와 자식


자식을 공부시키겠다고, 성적 올리겠다고 많은 것을 쏟아 붓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자식이 하기 싫다고 하고 힘들고 괴롭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하고, ‘나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있어’라고 합니다. 이런 부모와 자식에 대해 생각해 보지요.



1. 자기연민과 자아이상
부모에게는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권력이나 돈, 지위나 학력(A라고 하지요)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돈이 없어서 이렇게 사는구나...’ ‘내가 좋은 대학을 못 나와서...’라며 자기연민을 느낍니다.

부모가 부모 자신을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기는 거지요.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A를 가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구요. 그렇다고 A를 갖고 싶은 마음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 때 눈앞에 나타난 것이 자식입니다. 자식은 똥과 같습니다. 내가 만들었고 내 몸에서 나왔으니 내 것이라는 겁니다.

A를 갖기 위해 자신에게 쏟았던 에너지는 이제 자식을 향합니다. ‘또 다른 나’인 자식을 통해서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갖겠다는 거지요.

부모는 A를 갖지 못한 자신을 보면서 자기연민을 느끼고, 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를 자아이상으로 삼습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하는 거지요.


2. 사랑의 이유

부모는 흔히 자식을 한없이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도 하고, 신체적 질병을 얻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지적 능력이나 정서 상태를 계발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왜 계속해서 공부 공부 공부, 성적 성적 성적 하면서 자식을 심리적으로 괴롭히고 육체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걸까요?

그렇게 사랑하는 데,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이 괴롭고 힘들어서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거나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하는데도 왜 부모는 자식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할까요?

부모는 자식을 정말 사랑하는 걸까요?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몇 배로 더 아프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자식이 칼로 종이를 자르다 실수로 손가락을 베었다고 하지요. 자식이 아파서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러면 그 부모는 자식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요?

칼이 피부조직을 가르면 신경 조직을 통해 정신에 전달되고, 정신은 이를 고통으로 느낍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식은 엄연히 별개의, 독립된 피부조직․신경조직․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자식의 고통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자식의 아픔에 크게 공감할 수는 있겠지요.

부모가 자식의 고통에 공감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언제나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공감의 정도나 형태가 달라지겠지요.


자식을 통해서라도 자아이상에 다가가려는 부모에게는 자식이 ‘힘들어’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들린다고 해도 무시해 버리지요. 왜냐하면 자식은 부모의 욕망 실현을 위한 도구이고, 그 도구가 나타내는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장시간 힘든 노동을 해서 사장에게 힘들다고, 좀 쉬자고 해도 ‘쓸데없이 소리 말고 일이나 계속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편이 무작정 성기를 밀어 넣어 아내가 아프다고 하는데도 남편이 아내의 고통을 무시하고 성기를 계속 밀어 넣는 것과도 같습니다. 도구의 고통을 무시해도 된다는 거지요.

다른 사람을 내 욕망의 도구로만 여길 때 그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무거운 짐을 헉헉대며 끌고 가는 말의 고통이 주인에게 느껴지지 않는 것과도 같지요. 주인은 그저 얼른 물건을 싣고 가서 돈을 벌 생각뿐이라면 말입니다.

흔히 부모들이 말하듯이 자식을 그렇게 사랑한다면 자식의 작은 고통이라도 얼른 알아차리고 자식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자식을 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자식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가 자식에게 온갖 고통을 주는 겁니다.

이런 부모가 사랑하는 것은 자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이용해 부모 자신에게 A라는 선물을 안겨 주고,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해 주고 싶은 겁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거지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는 거구요.


3. 자식의 희생

① 지배-피지배
자식이 놀고 싶다, 쉬고 싶다고 해도 계속 욕을 하거나 윽박지르거나 불안감을 심어 주면서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만듭니다. 야생마를 붙잡아다 우리에 가두고 두들겨 패면서 훈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족 안에서 부모는 자식에 대해 지배자의 위치를 지닙니다. 그 지위를 바탕으로 피지배자인 자식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거지요. 자신의 욕망을 위해.


② 부모의 공격성
남편이 자기 기분 나쁘다고 아내를 두들겨 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면 부모는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자식을 두들겨 패도 될까요? 두들겨 패지는 않더라도 욕을 퍼부어도 될까요?

자식은 약자이기 때문에 강자가 가지는 분노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 회사 사장이나 부모에게는 하지 못하던 공격적 행동을 자식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지요.



③ 자식의 의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어도 자식이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괴롭고 가족을 떠나고 싶어도 어디 마땅히 갈 데가 없습니다. 먹을 것을 구할 방법도, 잘 곳을 구할 방법도 없는 거지요.

부모가 자식이 거부해도 억압적인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이런 자식의 처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니가 집 아니면 갈 데가 어디 있어!’ 싶은 거지요. 너는 갈 데가 없고 부모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하니, 이 정도의 억압이나 고통을 견디며 살라는 겁니다. 내가 너를 먹이고 재워 주니 너도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거지요.

④ 사랑의 상실. 불안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가 잘 나서도, 인성이 훌륭해서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배고프면 먹여주고, 똥을  싸면 닦아 주던 부모에게 의존하며 사랑을 하게 된 거지요. 그래서 자식에게는 부모의 사랑을 잃는다는 것이 큰 고통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잃지 않으려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해야겠지요.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조건부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더 사랑을 줄 것이고,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사랑을 거두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는 거지요.

부모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온갖 폭력과 모욕과 경멸을 참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⑤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
‘부모의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부모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식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며, 나를 사랑하기 위한 도구로 자식을 이용한다고 하면 스스로 정당성을 잃게 되고 남들도 비난을 할 겁니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나는 내 자식을 사랑해!’라고 소리칩니다. 하나를 가리기 위해 다른 하나를 크게 만드는 거지요. 그래야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일 수 있으니까요.

자식 또한 부모가 ‘나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겠지’ ‘나를 위해서 저렇게 하는 걸거야’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쉽게 저항을 하지 못합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는 부모가 되기보다,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 그의 고통에 마음 열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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