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과 사랑, 폭력과 권력
가. 친족 성폭력
이처럼 최근 가족을 대상으로 한 친족 성폭력이 잇따라 발생해 사회적인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친족 성폭력 가해자 2명중 1명은 피해자의 친 아버지의 범행이라는 집계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28일 한국성폭력상담소(이하 성폭력 상담소)는 지난 2007년 성폭력 상담건수 1천 948건 중 14%인 273건이 친족에 의한 성폭력 상담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중 절반 이상은 피해자의 친 아버지의 소행이라는 것이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의 전언이다. - 노컷뉴스, ‘"친족 성폭력 절반은 친 아빠가", 패륜가장 왜 생기나’, 2008년8월29일, www.nocutnews.co.kr
성폭력하면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피해를 입는 경우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많은 성폭력 가해자는 가족이나 친척들 속에 있습니다. 할아버지․아버지․오빠․삼촌․고모부 등 피해 여성과의 관계를 가리지 않습니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 장기간 지속되고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성폭력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도 피해자가 가해자와 확실히 분리되지 않아 피해자가 또다시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가족이나 친척들은 그냥 쉬쉬하기만 하기도 하고, 가족이 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피해자 스스로 피해 사실을 감추기도 합니다. 대응할 힘이나 의지가 없기도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기도 합니다.
최근 학교에서 성폭력 관련 교육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외부인에 의한 것일 뿐, 친족 성폭력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학교에서부터 친족 성폭력과 관련하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피해를 입었을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 준다면 실제 피해를 당했을 경우 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피해에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나. 성 행동과 성 문제
부부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부부간의 성 행동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부부의 성적 결합은 두 사람의 만족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세대 계승을 이루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부부간의 성적 적응을 위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과 함께 공동 책임 의식, 친밀감, 신뢰감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것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 정성봉 외 5인, [고등학교 기술․가정], 교학사, 2012, 16쪽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현실의 연인/부부가 갖는 성행동의 모습을 어느 정도 잘 담고 있을까요? 부부들이 갖는 성행동 가운데 과연 몇 %가 두 사람 모두에게 만족을 주고 있을까요?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두 사람 모두 만족하는 성행동의 수치가 그리 높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루하기만 한 채 반복되는 성행동, 노동 과정에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피로, 유아․청소년기의 성적 억압 등으로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성행동을 통한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감증과 발기부전이 낯선 일은 아니지요.
한국의 연인/부부 성행동에서 나타나는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남성이 자신이 가진 물리력과 관계 속 위치를 이용해 여성이 원하지 않는 성행동을 계속 요구하거나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연인/부부 관계가 끝날 때까지 강요하는 쪽과 당하는 쪽으로 나뉘어 성행동을 계속 하기도 합니다. 여성이 임신의 위험 때문에 성기 접합을 망설이거나, 피부 접촉과 애무 정도에서 그치려고 해도 남성들이 성기 접합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여성의 임신에 대한 두려움을 무시한 채 콘돔을 끼면 촉감이 다르다는 이유로 콘돔 사용을 거부하는 남성들도 있습니다.
여성의 성과 성행동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 주는 '알리스 슈바르처'의 <아주 작은 차이>
성행동 과정에서 남성은 성기 중심의 성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화니 애무니 교감이니 하는 것들은 얼른 얼른 지나가고, 한시 빨리 여성의 성기 안으로 자신의 성기를 밀어 넣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을 꽉 끌어안은 채 빠르게 성기를 부비고 사정을 하고 나면 여성을 팔에서 풀어주고 벌러덩 누워서 잡니다.
이에 비해 여성은 성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성 행동 과정에서 다른 신체 부위의 자극이나 애무를 즐기기도 하고, 정서적 교감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야동의 영향으로 여성에게 특정 직업을 상징하는 옷을 입으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속옷이나 스타킹을 찢는 행동을 하는 남성들도 있습니다. 여성의 감정이나 느낌은 쉽게 무시하고 남성의 성적 환상을 실현하려는 행동입니다. 이런 식의 관계가 계속되면 여성에게 성행동은 억지로 치러야 하는 것, 할 수만 있다면 거부하고 싶은 것이 됩니다.
성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이혼을 요구하는 사유가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라고 해서 반드시 함께 성행동을 해야 하는 걸까요? 두 사람이 모두 원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평화로운 성 행동이 이루어집니다. 성기 접합 과정에서 여성이 더 이상 성기 접합이나 성기 부비기를 그만하고 싶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남성이 여성의 성기에서 자신의 성기를 떼어 낸다면 친밀감이나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겁니다.
여성이 싫다고 하는데도 성기 부비기를 계속 한다면 여성은 고통을 받을 것이고, 둘의 관계는 적대적이 되거나 멀어질 겁니다. 친밀감이나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성행동 과정에서 친밀감과 신뢰감을 형성하는 방법인지를 알면 좋겠습니다.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교미 행위를 느린 화면으로 자세히 분석해본 결과 많은 경우 상대방의 얼굴 표정과 소리에 따라 교미의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거나 끝마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관찰은 피그미 침팬지[보노보]는 교미 시 자신의 생리적 욕구 뿐만 아니라 상대의 얼굴 표정과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상대방의 감정에도 반응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들은 많은 경우 암수에 상관없이 상대가 눈을 맞추지 않거나 하품을 하고 딴청을 피우면서 지루함을 표하면 즉시 교미 행위를 중단했다. - 프란스 드 왈, [보노보] 가운데 |
다. 성과 사랑, 투쟁과 권력
한스는 엄마를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없어져 주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그 자신이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렇게 속으로 감추고 있던 적대적인 소망이 이제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정말로 사라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내게로 온 것 - 프로이트, '다섯 살바기 꼬마 한스의 공포증 분석', [꼬마 한스와 도라], 열린책들, 1997, 59쪽,
프로이트와 상담을 하던 한 남성이 자신의 아들 한스의 공포증을 치료하는 과정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남자 아이인 한스는 엄마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 차지란 것을 알았고, 아빠가 출장 가고 없으면 엄마와 단 둘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엄마와 단 둘이 있기 위해 아빠가 사라져 주기를 바랬습니다. 실제로 아빠를 때리기도 하고, 때리고 나서 아빠를 안기도 했습니다. 엄마와 단 둘이 있기 위해 아빠가 사라져 주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늘 자신에게 다정한 아빠가 정말 사라지는 것은 싫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경쟁자인 아빠가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아빠가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돌을 일으키면서 한스에게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공포증이 생겼던 겁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한 사례입니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王)]에는 우연히 한 남자를 죽인 뒤,
어떤 여성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오이디푸스라는 남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인 남자가 자신을 낳자마자 버렸던 아버지이고,
지금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여자가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괴로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파리스는 사랑의 경쟁자인 로미오에게 싸움을 걸지만 오히려 로미오가 파리스를 죽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햄릿의 어머니이자, 형님의 아내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 남성이 자신의 형님이자 햄릿의 아버지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형님의 권력을 차지하지요.
성과 사랑에 대한 강한 욕망은 욕망의 실현을 방해하는 것이 나타나면 이를 장애물로 여기고 제거하려 듭니다. 직접 행동에 나서지는 못하고 질투만을 가진 사람조차 경쟁자에게 불행이 다가오기를, 아니면 자연재해나 신의 저주로 죽음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경쟁자가 없어야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곳곳에서 사랑을 향한 경쟁과 투쟁이 벌어지는 거지요.
“이년 들어라. 모반과 대역하는 죄는 능지처참하고, 관장을 조롱하는 죄는 율법에 적혀 있고, 관장을 거역하는 죄는 엄한 형벌과 함께 귀양을 보내느니라. 죽는다고 설워 마라.”
춘향이 악을 쓰며 하는 말이,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오?” - '열녀춘향수절가', [춘향전], 민음사, 2012, 113쪽
변학도가 국가 권력을 이용해 춘향이와 강제로 성행동을 하려고 하는데 춘향이가 이에 저항하는 모습니다. 춘향이가 저항하자 변학도는 춘향을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권력을 이용해 성행동을 하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자 대상인 여성을 고문해서라도 성욕을 실현하겠다는 겁니다. 변학도와 이도령은 사랑의 경쟁자로써 투쟁을 벌입니다. 이 투쟁에서 더 큰 권력을 가진 이도령이 이깁니다. 이도령에게 더 큰 권력이 없었다면 변학도를 물리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춘향이와 사랑을 지킬 수 있었던 거지요.
장자연 사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장자연이라는 여성 배우가 강요에 못 이겨 여러 남성들과 성 관계를 가졌습니다. 2009년 자살을 하면서 그 고통을 편지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누가 장자연에게 성행동을 억지로 요구했는지가 드러나려 하자 검찰․경찰 등의 국가권력과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이 나서서 사실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가로 막았습니다. 가해 남성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이들은 처벌․보복 하겠다고도 했지요. 자신의 성욕을 실현하는데 국가와 언론을 이용하는 겁니다.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원하는 대상과 사랑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더 예뻐지려고 하고, 더 멋있어지려고 하고,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사랑하고 사랑 받기 위한 것이겠지요. 인간이 권력과 화폐를 쫓고 외모나 겉모습에 집착하는 것이 사랑을 향한 욕망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면 권력과 화폐를 매개하지 않는, 두 사랑이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당신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만나기를
가로막히지 않고,
떠돌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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