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여성의 성욕
원시사 연구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남자들이 다처제 생활을 하는 한편 그 여자들도 동시에 다부제 생활을 하며, 이에 따라 쌍방의 아이들이 그들 모두의 공동의 아이들로 인정되는 상태가 있었다. 그런데 이 상태 자체는 또한, 그것이 종국적으로 분해되어 단혼이 될 때까지 일련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일련의 변화란, 공동 부부의 유대가 포괄하는 범위가 처음에는 대단히 광범위하다가 점차 축소되어 결국 오늘날 지배하고 있는 바와 같은 일대일의 부부만이 남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박종철출판사, 1997, 42쪽
남자거나 여자거나 성-대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와는 달리,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남성들이 여성의 성-대상 선택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여성의 성-대상 선택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남성 지배 사회로 바꿨는지도 모르구요. 자신이 정자 제공자임이 확실한 아이를 낳기 위해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겁니다.
성행위를 둘러싼 경쟁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암놈은 한번에 한 마리의 수놈으로부터만 수정된다. 수놈은 다른 수놈들을 그 암놈으로부터 멀리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암놈이 낳는 새끼의 애비가 될 확률은 높아진다. - 프란스 드 발, [정치하는 원숭이-침팬지의 권력과 성], 동풍, 1995, 214쪽 |
이렇게 해서 다수의 남성과 다수의 여성이 자유롭게 성행동을 하던 사회가 1:1 성행동 사회로 바뀌는 거지요. 그런데 1:1 성행동은 여성에게만 적용됩니다. 남성들은 아내를 여러 명 둔다든가 성매매를 하면서 다수의 여성과 성행동을 계속 합니다.
A : 내 여친이 처녀가 아닌 것 같애...
B : 그걸 어떻게 알아?
A : 거시기 조이는 거나 허리 돌리는 게 달라...
B : 조이는 게 달아서 좋았어, 싫었어?
A : 좋았어
B : 좋았으면 됐네.
A :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B : 처음이 아니면 어때. 너도 어차피 처음이 아니잖아.
B : 야!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아?!
대한민국 20대 남성들이 실제로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남성들이 여성과 성행동을 할 때 자주 묻는 질문이 다른 남성과 ‘잤어?’라는 것입니다. 이때의 ‘잤어?’는 물론 잠을 잤느냐가 아니라 성행동을 했느냐고 묻는 거구요. 그 남성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즐거웠고 무엇이 슬펐는지 등에 대해서는 잘 안 묻습니다. 모든 관심은 ‘잤어?’에 모아지지요. 내가 원하는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욕망이 그만큼 강렬한 겁니다.
“오늘부터 몸단장 바르게 하고 수청을 거행하라.”
“사또 부분 황송하나 일부종사一夫從事 바라오니 분부시행 못하겠오.”
......
이때 회계 나리가 썩 나서 하는 말이
“...너 같은 기생 무리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인가?...너희 같은 천한 기생 무리에게 ‘충렬(忠烈)’ 두 자가 웬 말이냐?” - '열녀춘향수절가', [춘향전], 민음사, 2012, 110~111쪽
변학도가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자 춘향이가 이를 거부하면서 나누는 대화입니다. 정조를 지키는 것이 인륜이고 도덕이라면 이미 다른 남성과 성행동을 한 여성에게 성행동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겁니다. 정조는 내가 원하는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일 뿐이지, 모든 여성이 한 명의 남성과만 성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행동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가두기입니다. 여성을 특정한 공간에 가둬 놓고 여성들끼리만 생활하도록 만들고, 그 공간 밖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재수가 없다는 말은 어떻게든 남성과의 접촉을 차단하려다 보니 목소리까지 차단하려는 건 아닐까요? 다른 방법은 가리기입니다. 가둬두면 제일 좋은데 그럴 수 없을 때는 여성의 몸을 가리라고 합니다. 여성의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 눈만 내어 놓는 니깝, 머리를 가리는 히잡 등은 이슬람권에 많이 있는 여성 가리기 도구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의 몸을 가리는 방법은 지금도 다양하구요. 여성이 다른 남성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고, 다른 남성이 여성을 쳐다보지 못하도록 하는 거지요.
여성의 성욕을 직접적으로 억압하려는 시도로 수절이니 순결이니 하는 것들을 이용합니다. 순결 이데올로기가 인간 의식을 지배하면서 성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남성 지배 사회에서는 순결한 여성을 주고받자는 암묵적인 거래가 이루지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순결을 강조하는 것은 순결한 여성을 다른 남성에게 넘겨주고, 반대로 순결한 여성을 넘겨받기 위한 것입니다. 여성이 성행동을 한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남성과 성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성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할 뿐 다른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 홀아비는 죽은 아내에 대해 수절하지 않는가? 왜 과부만 그래야 하는가? 자신들의 계급적 입장과 남성중심적 입장을 한번도 이탈해본 적 없는 동아시아의 이데올로그는 또다시 유아적(幼兒的)인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여자가 끝끝내 자기를 사랑해서 잊지 못하고 사모해주기를 바라는 판타즘”, 이종영,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 새물결, 2001, 154쪽 |
아이들이 옷을 안 입고 뛰어노는 시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옷을 입어야 할 이유도 없고, 부끄러움이니 뭐니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남자 아이에 비해 여자 아이에게는 성기를 가리라는 요구가 일찍 시작됩니다. 성장 과정은 물론 성인되어서도 여성이 성기를 드러내거나 성욕을 갖는 것은 나쁜 짓이며, 더러운 짓이고, 헤픈 년이 되는 길이라는 압력이 계속 됩니다. 그러다보면 여성들의 정신 속에 성욕은 억눌러야 하고, 성욕을 갖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됩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불감증을 겪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불감증을 겪는 이유는 성장 과정에서 성욕을 억압당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성욕을 느끼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성욕을 억압하는 동안 심리적인 질병을 갖기도 합니다. 별 것도 아닌데 괜히 과민하게 반응하고 신경질을 내는 여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그 별 것도 아닌 것이 문득 성행동을 떠올리게 하거나 성욕을 자극했고, 이 여성은 솟아나는 성욕을 억누르기 위해 그 별 것 아닌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겠지요.
성욕이 전환되기도 합니다. 남자 선생님을 좋아한다거나 연예인에게 환호를 보낸다거나 잘 생긴 남자를 선망한다거나 연애 소설에 빠지거나 하는 식입니다. 억눌린 성 에너지는 발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한편, 정신은 성 에너지를 계속 억누르고 있으니 적정한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좋아한다’ ‘멋지다’ 등으로 표현되는 거지요. 성행동 없는 사랑을 하게 되는 겁니다.
마바카에서 어느 날 한 남자와 여자가 집의 아래층에서 싸우고 있었다. 불평, 고함, 비난,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 요구 사항이 있는 듯한 여자는 남자의 다리 사이로 손을 뻗어 불알을 움켜쥐었다. 남자는 매우 아팠을 것이지만, 여자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이 여자는 성교를 하고 싶어해! 이 여자는 성교를 하고 싶어해!”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 후 그것을 했을 것이다. - 삐에르 끌라스뜨르, [폭력의 고고학], 울력, 2009, 30쪽
글쓴이가 베네수엘라에 있는 아마존 지대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성을 성욕이 없는 인간으로 만들려는 남성들이 있고, 자신을 성욕이 없는 인간처럼 보이려는 여성도 있습니다. 과연 여성에게는 성욕이 없을까요? 여성에게 성욕이 없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다만 남성에 비해 성욕의 크기가 다르다거나 성욕 실현의 형태가 다르다면 그것은 논의해 볼만한 것입니다.
여성에게 성욕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여성의 성욕을 억압했기 때문일 겁니다. 매력적인 성-대상을 만나면 눈이 커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신경을 집중하는 건 남자나 여자나 매한가지입니다. 피부 접촉을 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부비면 성기가 커지고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도 남자나 여자나 매한가지입니다. 성행동을 하고 성 에너지를 발산하고 나면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기도 남자나 여자나 매한가지이구요. 앞의 아마존 지대의 여성처럼 사회제도, 상대 남성, 자신의 정신 등에서 성적 억압이 없거나 작아지면 여성들도 더 편하게 자신의 성욕을 드러내고 성욕을 실현할 수 있을 겁니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자신이 겪은 성적 억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성에 대한 심리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찾는 토론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고치지 않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즐거움을 얻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성행동을 하면 좋을 지를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성욕을 억압함으로써 심리적 질병을 얻게 된 여성의 경우는 전문가와 상담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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