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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 [순수이성비판] 4

순돌이 아빠^.^ 2012. 10. 18. 09:09





Ⅱ. 초월적 방법론
제1장
순수 이성의 훈육

우리는 모든 명제들을 그렇게 하고자 하기만 하면 논리적으로 부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의 인식 일반을 그것이 한 판단을 통해 확장되든 제한되든지 간에, 내용의 면에서 볼 때 부정하는 명제들은 오로지 착오를 방지하는 것을 고유한 과업으로 갖는다. 그래서 허위 인식을 방지해야 할 부정적인 명제들은, 결코 착오가 있을 수 없을 경우에는, 매우 옳기는 하지만, 공허하다...가령 저 학교웅변가의 ‘군대 없는 알렉산더는 어떤 나라도 정복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라는 명제와 같이. - 861

우리의 가능한 인식의 경계가 매우 좁고, 판단하려는 유혹이 크며, 자신을 드러내는 가상이 매우 기만적이고, 착오로부터 비롯하는 손해가 현저할 경우에는, 한낱 착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데에 기여할뿐인 지도의 부정적인 면이 그를 통해 우리 인식이 성장할 수도 있을 터인 많은 긍정적인 교시보다도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일정한 규칙들에서 벗어나려는 부단한 성향이 제한받고, 마침내 근절되는 그런 강제를 훈육이라고 일컫는다. - 861, 862

철학적 인식은 개념들에 의한 이성 인식이고, 수학적 인식은 개념들의 구성에 의한 이성 인식이다. 그런데 개념을 구성한다 함은 그 개념에 상응하는 직관을 선험적으로 현시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한 개념의 구성을 위해서는 비경험적인 직관이 필요하다. - 864

철학적 인식이 특수를 오로지 보편에서 고찰한다면, 수학적 인식은 보편을 특수에서, 심지어는 개별자에서, 그럼에도 선험적으로 그리고 이성에 의거해서 고찰한다. - 865

철학적 고찰이 순전히 보편적 개념들만을 붙잡고 있다면, 수학적 고찰은 순전한 개념들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곧장 직관으로 서둘러 나가, 거기에서 개념을 구체적으로 고찰한다. 그러하되 경험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아니고, 그가 선험적으로 제시한, 다시 말해 선험적으로 구성한 그러한 직관에서 고찰한다. - 866

실재성․실체․힘 따위의 초월적 개념이 나에게 주어질 때에는, 그 개념은 경험적 직관을 표시하는 것도 순수한 직관을 표시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경험적인 직관들-그러므로 선험적으로 주어질 수는 없는 것인-의 종합만을 표시 - 871

원인이라는 개념에 의해 사실 나는 사건(즉, 무엇인가 일어남)이라는 경험 개념을 벗어난다...그 개념은 순수한 직관들이 아니고, 그러므로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지각들의 종합 규칙 - 871

정의한다는 것은 그 표현 자신이 말해 주듯이, 원래 단지 한 사물의 상세한 개념을 그것의 한계들 내에서 근원적으로 제시함을 의미한다. - 875

그러니까 이른바 그 정의라는 것이 다름아닌 낱말 규정일 뿐인 마당에서, 그러한 개념을 정의한다는 것이 무엇에 쓸모가 있을 것인가? - 876

대상의 개념은 그것이 주어진 그대로는 매우 모호한 표상들을 포함할 수가 있고, 이 모호한 표상들을 우리는 항상 적용하여 사용은 하면서도 분해에서는 간과하므로, 내 개념의 분해의 상세성은 언제나 의심스럽고, 단지 여러 가지 적합한 실례들에 의해서만 추측적으로, 그러나 결코 명증적으로 확실하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정의’라는 표현 대신에 차라리 ‘해설’이라는 표현을 쓰겠는데, 이 표현은 언제나 좀더 신중한 것이고, 이 표현이라면 비판가는 그것이 어느 정도 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상세성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문을 남겨둘 수 있을 것이다. - 876

해설․해명․천명․정의라는 표현에 해당하는 독일어로는 ‘에르클래룽’이라는 한 낱말밖에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적인 설명들에 대해서는 정의라는 명예로운 이름붙이기를 거절했던, 그 요구의 엄밀함을 약간 완화시킬 수밖에 없다. - 877

수학의 정의들은 결코 잘못될 수가 없다. - 878

수학에서 정의는 존재에 속하고, 철학에서는 보다 좋은 존재에 속한다. 정의에 도달하는 일은 아름다우나, 흔히는 매우 어렵다. 아직도 법률가들은 권리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구하고 있다. - 878

공리들은 직접적으로 확실한, 선험적 종합원칙들이다. - 879

철학은 아무런 공리도 가지지 않으며, 결코 원칙들을 그렇게 선험적으로 요구해서도 안 되고, 원칙들에 관한 권한을 철저한 연역에 의해 정당화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 880

명증적인 증명만이 직관적인 한에서 입증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 880

수학만이 입증들을 포함한다. - 880

철학의 본성에게는, 특히 순수 이성의 분야에서, 교조적인 행보를 하면서 우쭐대고, 수학의 명칭들과 끈들로 장식을 하는 일이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철학은 수학의 교단에 속하지 않는다...이성은 자신의 초월적 시도들에서, 그가 마련해 둔 길이 마치 아주 직선적으로 목표점에 이르기라도 하는 양 그렇게 신뢰하면서 자신을 바라볼 수는 없고, 또한 기초에 놓여 있는 그의 전제들을 자주 뒤돌아보면서 가령 추리들의 과정에서 원리들에서 간과된 착오들이 드러나지나 않는지, 또 그 원리들을 좀더 많이 규정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변경하는 것을 불가피하게 하는 착오들이 드러나지나 않는지를 주목하는 일이 불필요할 만큼 그렇게 대담하게 믿을 수는 없다. - 881

교조적 방법은 단지 오류와 착오들을 은폐하고, 이성의 모든 발걸음을 가장 명료하게 조명하는 것을 본래의 의도로 갖는 철학을 속이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은 항상 체계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성은 (주관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 883

이성은 그의 모든 기획에서 비판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또한 이성은 자기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서는,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의혹을 떠안지 않고서는, 어떠한 금지에 의해서도 비판의 자유를 훼손할 수가 없다. 무릇 효용의 면에서 제아무리 중요하고, 제아무리 신성하다고 해도, 개인의 체면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 시험하고 검사하는 탐색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성의 존재조차 이 자유 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성은 전제적인 권위를 갖지 않으며, 그의 발언은 항상 자유로운, 누구나 자기의 의혹을 심지어는 거부권까지도 망설임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시민들의 동의 이외의 것이 아니다. - 884

자기의 사상과 자기 스스로도 해소할 수 없는 자기의 의심을 공공의 평가에 부치고, 그 때문에 불온하고 위험한 시민이라고 비방 받지 않는 자유도 이러한 자유에 속한다. 이 같은 자유는 이미 인간 이성의 근원적 권리 중에 있으며, 인간 이성은 다시금 보편적인 인간 이성 말고는 다른 어떤 재판관도 알지 못하는데, 이 보편적 인간 이성 안에서 각자는 각기 한 표씩을 갖는다. - 894

가령 상상력이 도취하지 않고, 이성의 엄정한 감시 아래서 지어내야만 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먼저 무엇인가가 온전히 확실하게 있어야 하고, 꾸며낸 것이거나 순전한 의견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대상 자신의 가능성이다. 그 때에 능히 대상의 현실성에 관해 의견으로 도피하는 일이 허용된다. 그러나 의견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실제로 주어지고 따라서 확실한 것과 설명근거로서 연결되어야만 하며, 그 때 그것을 가설이라 일컫는다. - 907

무릇 우리에게 자연설명이 여기저기서 어렵게 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초험적 설명근거를 수중에 갖는다. 이런 설명근거는 우리로 하여금 저런 연구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의 탐구는 통찰로서 끝맺지 않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원리로써 끝맺는다. 그러한즉 이 원리는 이미 절대적 시초자이라는 개념을 포함할 수밖에 없도록 미리 고안된 것 - 910


초월적 방법론
제2장
순수 이성의 규준

나는 규준이라는 말로 모종의 인식능력 일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선험적 원칙들의 총괄을 의미한다. - 927

이성의 사변이 초월적 사용에서 마침내 귀착하는 궁극의도는 세 가지 대상, 곧 의지의 자유, 영혼의 불사성, 그리고 신의 현존에 관한 것 - 928

이 세 핵심명제들이 우리의 앎에는 전혀 필요치 않으면서도 우리 이성에 의해 절실하게 추천되는 것이라면, 그것들의 중요성은 실로 본래 오로지 실천적인 것에 관계해야 하는 것 - 929

이 문제들 자신은 다시금 더 심원한 의도, 곧, 만약 의지가 자유롭다면 만약 하나의 신이 그리고 하나의 미래의 세계가 있다면,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 하는 의도를 갖는다. 이것은 무릇 최고 목적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관한 것이므로, 현명하게 우리를 배려하는 자연의 최종 의도는 우리 이성의 설비에 있어서 본래 오로지 도덕적인 것을 향해 세워져 있다. - 930

의사가 곧 한낱 동물적인 것(동물적 의사)인 것은 다름아닌 감성적 충동에 의해, 다시 말해 정념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성적 충동들로부터 독립적으로, 그러니까 이성에 의해서만 표상되는 운동인들을 통해 규정될 수 있는 의사는 자유로운 의사(자유 의사)라 일컫는다. 근거로서건 결과로서건 이런 의사와 연관되어 있는 것은 모두 실천적이라 불린다. - 931

우리의 전체 상태와 관련하여 욕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다시 말해 좋고 유익한 것에 대한 이 성찰들은 이성에 의거한다. 그래서 이성은 명령인, 다시 말해 자유의 객관적 법칙인 법칙들도 제공한다. 이 법칙들은 어쩌면 결코 일어나는 일이 없을지라도 일어나야만 할ㄹ 것을 말하고, 그 점에서 오로지 일어나는 것만을 취급하는 자연 법칙들과는 구별되며, 그 때문에 그것들은 또한 실천 법칙들이라고도 한다. - 931

나의 이성의 모든 관심(즉 사변적 관심 및 실천적 관심)은 다음의 세 물음으로 통합된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3.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 933

무릇 모든 희망은 행복을 지향하고, 실천적인 것 및 윤리법칙에 관하여는, 지식과 자연법칙이 사물들의 이론적 인식에 대하여 있는 것과 똑같다. 전자는 마침내 어떤 것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것(최종의 가능한 목적을 규정하는 것)이 있다는 추론에 귀착하고, 후자는 어떤 것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최상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있다는 추론에 취착한다. - 934

그러므로 순수 이성은 비록 사변적 사용에서는 아니지만, 모종의 실천적, 곧 도덕적 사용에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곧 윤리적 지시규정들에 알맞게 인간의 역사에서 만나질 수 있을 그러한 행위들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들을 함유한다. 무릇, 이성이 그러한 행위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명령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들은 또한 일어날 수 있어야만 한다. - 935

세계가 모든 윤리적 법칙들에 맞는 한에서, (세계는 무릇 이성적 존재자의 자유에 의해서 그럴 수 있고, 윤리의 필연적 법칙들에 따라서 그러해야만 하거니와) 나는 세계를 도덕 세계라고 부른다. 이 세계는 그런 한에서 한낱 예지적 세계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도덕의 모든 조건들(목적들) 및 모든 장애물들(인간 자연본성의 나약함과 불순함)조차도 도외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한에서 도덕 세계는 순전한, 그러면서도 실천적 이념이며, 감성세계를 가능한 한 이념에 맞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이념이 실제로 감성세계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미쳐야만 한다. 그리하여 도덕 세계라는 이념은 객관적 실재성을 갖는다. - 936

라이프니츠는 세계를, 사람들이 그 안에서 최고선의 통치 아래서 도덕 법칙들에 따르는 이성적 존재자와 그 이성적 존재자들의 연관성만을 주목하는 한에서, 은총의 나라라고 불러, 그것을 자연의 나라와 구별하였다. - 939

실천 법칙들은, 동시에 행위의 주관적 근거들, 다시 말해 주관적 원칙들이 되는 한에서 준칙들이라 한다. - 939

도덕적 마음씨가 조건으로서 행복에 대한 참여를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 거꾸로 행복에 대한 전망이 도덕적 마음씨를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941

그로 인해 행복할 품격이 있는 이성적 존재자들의 윤리성과 정확하게 비례하는 행복만이 우리가 순수하고도 실천적인 이성의 지시 규정들에 따라 꼭 옮겨가야만 할 세계의 최고선을 형성 - 941

최고의 목적들은 도덕성의 목적들이고, 우리에게 이것들을 인식하게 해주는 것은 순수 이성뿐이다. - 943

실천 이성이 우리를 이끌 권리를 갖는 한에서, 우리는 행위들이 신의 지시명령이기 때문에 책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에 대해 내적으로 책무가 있기 때문에, 그 행위들을 신의 지시명령으로 보는 것이다. - 945

견해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하다면, 모든 사람이 오로지 이성을 가진 한, 그것의 근거는 객관적으로 충분하고, 그런 견해는 확신이라고 한다. 견해가 오로지 주관의 특수한 성질 안에서만 그 근거를 가지면, 신조라고 한다. - 946

진리는 객관과의 합치에 의거하고, 따라서 이 객관에 대해 각 지성의 판단들은 일치해야만 한다. - 946

나는 신조를, 만약 내가 그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를 위해 간직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내 밖에서 타당한 것으로 만들려 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된다. - 947

견해, 또는 판단의 주관적 타당성은 (동시에 객관적으로 타당한) 확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세 단계, 곧 의견, 믿음, 앎을 갖는다. 의견이란 객관적으로뿐만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불충분함을 의식하는 견해다. 견해가 단지 주관적으로 충분하되, 동시에 객관적으로는 불충분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주관적으로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충분한 견해는 앎이라고 일컫는다. - 947


초월적 방법론
제3장
순수 이성의 건축술


만약 내가 객관적으로 고찰된 인식의 모든 내용을 도외시한다면, 모든 인식은 주관적으로는 역사적이거나 이성적이다. 역사적 인식은 자료에 의한 인식이고, 이성적 인식은 원리들에 의한 인식이다. - 957

모사하는 능력은 산출하는 능력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 인식은 그에게 이성으로부터 생기지 않았다. 비록 그 인식이 객관적으로는 물론 이성인식이었다 할지라도, 주관적으로는 한낱 역사적인 것이다. 그는 잘 파악했고 기억했으며, 다시 말해 잘 배웠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는 인간의 석고 복사물이다. 객관적으로 그러한 (다시 말해, 애초에 오직 인간 고유의 이성으로부터만 생길 수 있는) 이성 인식들은, 오로지 그것들이 그로부터 배운 것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거부까지도 할 수 있는 이성의 보편적인 원천들로부터, 다시 말해 원리들로부터 길어내진 것일 때에만, 주관적으로도 이런 이름을 가져도 좋은 것이다. - 958

순수 이성의 철학은 모든 선험적 순수 인식에 관한 이성의 능력을 연구하는 예비학(예행연습), 일컬어 비판이라고 하거나 또는 둘째로 순수 이성의 체계(학문), 즉 체계적인 연관 내의 이성에 의한 전체의 (참된 및 그럴 듯한) 철학적 인식, 일컬어 형이상학이다. - 962

종류와 근원에 있어 다른 인식들과 구별되는 인식들을 격리시키고, 이것들이 보통 결합되어 사용되는 다른 것들과 뒤섞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 - 962


초월적 방법론
제4장
순수 이성의 역사

우리의 모든 이성인식들의 대상에 관해서는 몇몇은 순전히 감각주의 철학자였고, 다른 이들은 순전히 지성주의 철학자였다. 전자의 사람들은 감관의 대상들에만 현실은 있고, 나머지 모든 것은 상상이라고 주장했으며, 이에 대해 후자의 사람들은 가관 안에는 가상 외에는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지성만이 참인 것을 인식한다고 말했다. - 971

순수 이성인식들의 근원에 관해서, 즉 그것들이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냐 또는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이성 안에 그 원천을 갖느냐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주의자들의 우두머리로, 그러나 플라톤은 이성주의자들의 우두머리로 간주될 수 있다. - 971

방법에 관해서...자연주의적 방법과 과학적 방법 -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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