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면 종교를 권장하고, 종교인들에게 돈도 주고 땅도 줍니다.
석가탄신일이니 성탄절이니 해서 공휴일을 만든 것도 그렇고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거두면서 목사들한테는 세금을 안 거두는 것도 그렇고 등등등.
하지만 종교인이든 뭐든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빨갱이라고 몰아 죽이는 거나 천주교도라고 몰아 죽이는 거나
그야 말로 가차없는 거지요.
중요한 것은 빨갱이냐 천주교도냐가 아니라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느냐 방해가 되느냐일 뿐.
이들이 천주교에 이끌린 것은 우선 모든 인간은 한결같이 천주의 자녀라는 평등사상에 공명한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중인이나 상민들이 천주의 자녀로서 양반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천주를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감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 이기백, <한국사신론> 가운데
대원군은 천주교도들을 서양 오랑캐의 앞잡이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1866년 1월5일, 베르뇌 주교의 하인 이선이와 전장운, 최형 등이 체포되었다...박해현장은 참으로 목불인견이었다.
이때 전국을 일제히 수색하니 포승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이 길가에서 보이는 정도였고, 포도청 감옥이 만원이 되어 재결할 수도 없었다. 그중에는 아낙네, 어린아이들과 같은 철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포장이 민망해 배교할 것은 타일러도 신자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때 매로 때려서 기어코 회개시키고자 하니 피부가 낭자하게 터지고 피가 청에까지 튀어올랐다...죽일 때마다 교를 배반하겠는가고 물으면 어린아이들도 그 부모를 따라서 천당에 오르기를 원했다. 대원군이 듣고서 다 죽이라고 명하고 어린 아이들만은 살려 주라고 했다. 시체를 수구문 밖에 산더미처럼 쌓아버리니 백성들이 벌벌 떨면서 더욱더 위령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 <근세조선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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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강변북로변에는 불쑥 솟은 모습의 절두산 공원이 있다. 이곳은 산 정상에서 천주교도들의 목을 쳐 절벽 아래 넘실대는 푸른 한강물로 떨어져 내리게 했다고 하여 절두산이라 한다. 신앙을 위해 죽음을 택한 천주교도들의 혼이 깃듯 곳으로 8천여 명의 희생자를 낸 병인사옥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 이성무, <조선왕조사> 가운데
일본은 1630년대 이래 쇄국의 나라였다. 하지만 쇄국의 진정한 목적은 무역 자체를 제한하려는 것보다는 무역에 묻어 들어오는 서양세계의 새로운 종교와 사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특히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그들이 믿는 신앙을 거부하도록 강요하기 위해서 잔인한 고문들을 합법화했다. 1623년 신앙 철회를 거부한 500명의 기독교인들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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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나가사키 만에 연해 있는 시마바라 반도와 인근 섬들에서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4개월에 걸친 저항 끝에 1만 1천 명이 처형된다. 2만여 명은 항복하는 대신 불 속에서 자결하는 것을 선택했다. 쇼군의 군대가 들이닥쳤을 때 그 성에 살아남은 사람은 1백여 명에 불과했다. 쇼군은 모두 3만 7천여 명에 달하는 죽은 이들의 시체 위에 더 강력한 쇄국칙령을 써붙였다. “태양이 지구를 비추는 한, 어떤 기독교도 일본 땅을 밟을 수 없다. 스페인 왕이든 기독교의 신이든 위반하는 자는 자신의 목으로써 대가를 치를 것이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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