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da_12607124_003&tabid=k 세종 105권, 26년(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년) 윤7월 24일(신축) 3번째기사 노비를 함부로 구타하거나 죽이지 말 것을 형조에 전지하다 형조에 전지하기를, “우리 나라의 노비(奴婢)의 법은 상하(上下)의 구분을 엄격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강상(綱常)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의지할 바를 더하는 까닭에, 노비가 죄가 있어서 그 주인이 그를 죽인 경우에 논의하는 사람들은 상례(上例)처럼 다 그 주인을 치켜올리고 그 노비를 억누르면서, 이것은 진실로 좋은 법이고 아름다운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주고 벌주는 것은 임금 된 자의 대권(大權)이건만, 임금 된 자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자를 죽여서, 선(善)한 것을 복 주고 지나친 것을 화(禍) 주는 하늘의 법칙을 오히려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하늘이 낸 백성 아님이 없으니, 신하된 자로서 하늘이 낳은 백성을 부리는 것만도 만족하다고 할 것인데, 그 어찌 제멋대로 형벌을 행하여 무고(無辜)한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임금된 자의 덕(德)은 살리기를 좋아해야 할 뿐인데, 무고한 백성이 많이 죽는 것을 보고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금하지도 않고 그 주인을 치켜올리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매우 옳지 않게 여긴다. 율문(律文)을 참고하여 보니, 노비구가장조(奴婢毆家長條)에 이르기를, ‘만약 노비가 죄가 있는 것을 그의 가장(家長)이나 기복친(朞服親), 혹은 외조부모가 관(官)에 고발하지 않고 구타하여 죽인 자는 장(杖) 1백 대의 형에 처하고, 죄 없는 노비를 죽인 자는 장(杖) 60대에, 도(徒) 1년의 형에 처하며 당해 노비의 처자(妻子)는 모두 석방하여 양민(良民)이 되게 한다. 만약 노비가 주인의 시키는 명령을 위범(違犯)하였으므로 법에 의거하여 형벌을 결행(決行)하다가 우연히 죽게 만든 것과 과실치사한 자는 모두 논죄하지 아니한다. ’고 하였은즉, 주인으로 노비를 함부로 죽인 자는 일체 율문(律文)에 따라 시행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노비는 대대로 서로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서 명분이 매우 엄중하여 중국의 노비와는 아주 다르니, 그들을 양민으로 만드는 법은 사세가 시행하기 어려우며, 또 노비의 죄있는 자를 그 주인이 처벌하는 법도 실행한 지가 이미 오래된 것이니 갑자기 고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사삿집[私家]의 은밀(隱密)한 곳에서 죄 지은 노비를 그 주인이 어떻게 하나하나 율문을 상고하여 논죄(論罪)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법에 의거하였는지 아닌지는 고핵(考覈)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가 함부로 무고한 자를 죽이고도 그에 따른 가족은 그냥 계속하여 부리게 한다면, 이것이 어찌 백성을 사랑하고 형벌을 신중히 하는 뜻이겠는가. 지금부터는 노비가 죄가 있건 없건 간에 관에 진고(陳告)하지 않고 구타 살해한 자는 일체 옛 법례(法例)에 따라 과단(科斷)할 것이며, 만약 포락(炮烙)·의형(劓刑)·이형(刵刑)·경면(黥面)·고족(刳足)과 혹은 쇠붙이 칼날을 사용하거나, 큰 나무나 큰 돌을 사용하는 등 모든 참혹한 방법으로 함부로 죽인 자라도, 그 죽은 자의 가족이 자기의 노비가 아니면 속공(屬公)시키지 못하도록 한다. 만약 기복친(朞服親)이나 외조부모가 구타 살해한 것이라도 그 죽은 자의 가족이 살인에 관계된 자의 노비라면 또한 속공(屬公)하게 하라.” 고 하였다. |
우리 봉건 전시기를 통하여 가장 긍정적으로 활동하던 봉건통치계급은 이 15세기의 세종을 포함한 왕정의 집권자들이었다. 그들로서도 노비가 ‘죄’를 지었을 때에 그 상전이 사사로이 형벌을 가하는 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는 관습인 만큼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이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글에 계속하여 사가의 은밀한 곳엣 진행되는 노비에 대한 형벌은 사실상 적발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다만 남살에 대하여는 제한을 가할 것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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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서 첫째로 노비를 죄 없이는 죽이지 말라는 정신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죄’를 지은 경우에는 다른 형벌은 마음대로 실시할 수 있으나 죽이려고 할 때에는 관가에 신고하여 허가를 얻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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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에 신고하여 죽여도 좋다는 허가를 얻은 경우는 물론이요, 죽이기까지는 말고 적당한 형벌을 가하라는 허가를 얻어서 그 적당한 형벌을 실시하다가 잘못하여 죽인 경우에도, 또 상전이 어떠한 과실로 노비를 죽였을 경우에도 법적으로 추궁을 당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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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는 그의 부모․형제가 그의 면전에서 상전에 의하여 맞아죽어도, 그의 부모형제를 찢어죽이고, 코를 자르고 귀를 잘라 죽이더라도 그는 계속 그 상전의 집에서 그 상전의 종살이를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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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 대한 형벌은 비록 죽이지는 않는 경우라도 혹독한 것이었다. 전기한 세종의 ‘전지’에서 볼 수 있는 지지고, 코와 귀를 베고, 얼굴에 자자를 하고, 다리의 살을 바르는 등의 형벌은 그 상전이 언제나 감행할 수 있는 악형이었다. 이러한 악형의 결과 노비가 죽었을 경우에만 세종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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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노비 즉 가노비를 상전이 마음대로 때려죽이고도 아무러한 추궁을 받지 아니한 것은 사실이다. 노비를 상전이 때려죽이는 일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었으나 때려죽였다는 것으로 추궁받은 실례를 역사상에서 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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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구가 그 가노를 때려죽인 것은 그가 소위 연소한 명사였을 때, 즉 그가 높은 벼슬을 아직 못하고 있었을 때였다. 집안에서 죽이지 않고 수구문 밖에서 때려죽인 것은 구태여 비밀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요, 피가 흐르고 소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이 사람잡이가 집안 안을 시끄럽게 할 것을 고려하였던 때문이다.
18세기 말에도 얼마나 공공연히 노비살해는 진행되었던가. 형조의 서리가 그를 찾아온 것은 관가에 고하지 아니하고 남보기에도 너무 참혹하게 죽였기 때문이었으나 죽은 사람이 죽인 양반의 가노이고, 소위 ‘강상’을 범한 ‘죄’로 죽은 것을 알자 관리는 두말없이 물러갔다. 죽인 이유는 무엇인가. 가노가 술 취한 김에 상전의 이름을 부르고 욕을 하였다는 것
- 김석형, <조선봉건시대 농민의 계급구성>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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