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고려에서 진일보한 점은 여말의 사전혁파 또는 선초의 노비변정사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배계급의 사적 지배영역을 축소시키는 대신 국가의 공적 지배영역을 확대시켜 합리적인 국가운영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과, 이에 바탕하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조선건국의 주체들은 국가운영의 기반을 확보하고 지지기반 확대를 위해 지배계급의 일정한 양보를 요구하기도 하였으며, 아울러 체제유지를 위해 지배계급 일반의 물적 토대를 인정, 조정하였다.
-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가운데
1. 지배계급 내의 세력간 투쟁에서 이성계를 포함한 세력이 승리하여 조선을 건국
2. 사적 지배영역이라는 것은 지배계급 내 개별 구성원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고, 공적 지배영역이라는 것은 지배계급의 집합적 지배.
3. 합리적이라는 것은 지배계급 내 개별 구성원의 지배를 축소하고, 국가를 중심으로 한 집합적 지배의 제도화 또는 체계화?
4. 국가운영의 기반을 확보했다는 것은 집합적 지배의 물적 기반 확보
5. 이성계 일파가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다른 세력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 소유하게 됨
신흥사대부들은 과거 권문세가들의 발호를 억제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 왕조체제를 지향하면서도, 그들의 중소지주적 기반과도 관련하여 15세기 훈구세력의 불법적 농민 동원 등에 제동을 걸고 결국 16세기 후반 이후 향촌사회에까지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가운데
고려-조선을 잇는 봉건사회에서 지배 계급 내부의 투쟁. 신흥사대부라 불리는 세력이 권문세가+훈구세력과의 투쟁에서 승리
조선은 여말의 사회변동 속에서 성장한 정치세력이 기존의 지배층을 대체함으로써 출범하였다. 조선 건국은 전란을 수습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던 이성계와 신흥사대부층, 즉 여말 권문세가 및 그와 결탁한 귀족들의 발호로 인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 중소지주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흥사대부층의 이해가 일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여말선초 새로운 지배층으로 대두하는 신흥사대부층은 그 기반을 고려조의 향리층에 두고 있었다. 고려 전기 이래 지방사회에서 지주로서 자치권을 누리던 향리층...여말선초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대두한 신흥사대부 세력은 대귀족 중심의 기존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제반 개혁을 추구해 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고려의 다원적 도제가 일원적 8도체제로, 신분적․계층적 군현구획이 명실상부한 행정구획으로 개편되면서 전국 330여 개의 군현에 수령이 파견되었다.
-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가운데
지배세력 교체와 지배방식 변화. 지배도구로써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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