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철도란 무엇인가

순돌이 아빠^.^ 2013. 7. 1. 11:02

철도는 대규모의 상품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운송수단으로, 상품경제의 발전과 시장의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식민지 개척자’였다.
- 이윤상, '대한제국기 농민운동의 성격', <1894년 농민전쟁연구 1-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가운데



철도, 전신, 전화에도 정부는 큰 노력을 기울였다...운수와 통신 시설은 군사적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나라의 경제적 통일과 전국적인 시장확대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 강동진, <일본근대사> 가운데



1904~1905년의 러일 전쟁 중에 일본 침략자들은 급거 부산에서 신의주에 이르는 조선 반도 종단 철도를 부설했는데 이 철도는 경인철도 및 마산철도와 함께 조선에서 상품 판매시장을 확장하고 식량과 천연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대동맥이 되었다. 이 부설 경위에서도 밝혀지는 바와 같이 이것은 조선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더 나아가서는 중국 및 러시아의 영토까지 침략하려고 하는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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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을 계기로 일제의 군사적 목적과 관련하여 경부․경의철도가 부설되고 1910년에는 평양탄광철도와 평남철도가 준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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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는 압록강 철도가설공사가 완공되어 대륙으로 통하는 대동맥이 완성되었다. 1914년에는 농산물약탈과 직접 결부된 호남선이 완공되었다. 동년 8월에는 북부조선에 대한 군사적 목적과 경제적 약탈을 위한 경원선부설공사가 완공되었다. 뒤이어 함경선부설에 착수하였다. 이리하여 1915년경까지 철도의 총연장은 1,500km에 달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확대되어 1919년 말 현재, 철도의 총연장은 2,197km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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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철도부설을 핑계로 일본 침략자는 조선인의 토지를 철도용지라는 명목으로 빼앗아갔다. 또 일제는 조선인민에 대한 역적들의 소굴인 일진회의 협력아래서 이 공사에 수십만 조선인민의 노동력과 가축을 강제동원하여 거의 무보수로(때로는 5~6전을 지불하고)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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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건설된 철도도 부설자금은 일본의 국가자본에 의해 보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이 자금은 일본에서의 공채발행에 의한 일본본국의 부담으로 되었지만 실제로는 조선사업공채법에 의해 조선총독부가 상환하는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인민의 부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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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부문은 유통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부수적 생산부문이기 때문에 철도에 의한 운수기관의 단축과 대량수송은 보다 많은 잉여가치의 실현을 보장한다. 그러나 식민지조선에 있어서는 특히 약탈한 원료의 수송과 일본상품의 수입이 주된 것이었기 때문에 식민지조선의 철도망정비는 일제에게 이윤증대를 보장하는 긴요하고 절실한 수단이었다.

- 전석담, 최윤규, 이기수, 김한주 , <조선근대 사회 경제사> 가운데






1890년 말이 되면 러시아는 여순을 부동항으로 확보하고 동청철도와 남만주철도를 통해 기름지고 인구가 조밀한 남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적 침투를 확대하는 동시에, “여순이라는 부동항을 지원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런가 하면 동청철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남만주철도를 연결함으로써 유럽령 러시아와 동아시아의 러시아 세력 중심지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가운데



자본이 생산한 상품을 이동시키는 수단으로써의 철도.


'식민지 개척자'이기도 하고, 자본의 이윤 추구 수단이기도 한 철도





철도가 땅에서 상품을 이동시키는 수단이라면 항만은 바다에서. 이윤을 향해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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