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태조가 혼인을 매개로 경쟁자를 가까운 친족으로 묶은 것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조처였다...태조는 가장 가까운 협력자, 공신,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토호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귀족과 혼인 동맹을 이용해 복잡한 연망을 만들었다. 태조는 왕비를 29명 얻어 아들 25명, 딸9명을 낳음으로써 배타적 왕실 집단을 형성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자손을 거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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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혼에 따른 결합을 능숙하게 해결하는 것은 세련을 요구하는 기술의 하나였다. 이것에 얼마나 숙달되는 가에 따라 가문의 사회생활과 정치생활의 성공이 결정되었다...왕조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구성된 수도의 엘리트는 고작 24개 가문이 자기들끼리 아들과 딸을 교환하며 배타성을 강화하였다. 궁극적으로 왕실에 배우자를 낼 수 있느냐가 승리의 열쇠였다. 요컨대 혼인에서 ‘적합한’ 상대방을 제공하거나 제공받을 자격은 사회적․정치적 배려가 복잡하게 상호 작용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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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공신에 오른 이들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양하다. 그들은 새 왕조 건국에 기여한 보상으로 관직과 상당 규모의 토지 그리고 노비를 하사받았다. 이들은 정치, 군사 행동뿐만 아니라 혼인에 따른 결속으로 다져진 작은 규모의 엘리트 집단이다.
-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의 유교화 과정>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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