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히데요시의 일본이 서양 식민주의에 대해서 가장 주목하고 경계한 것은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이 필리핀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1571년이었다...필리핀을 장악한 스페인은 중국과의 무역이라는 상업 분야에서도 일본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중국과 일본의 무역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포르투갈인들을 통한 무역은 일본에게 중국의 비단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일본이 생산한 은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통로였다. 스페인 역시 그들이 중앙아메리카에서 확보한 은을 중국에 수출하고 그 돈으로 중국의 비단을 사가는 무역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정확하게 일본의 경쟁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과 그들이 장악한 필리핀은 일본에게 중요한 경제전략적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가운데
16세기 인도양에서 말라카 해협에 이르는 해상 무역권은 포르투갈이 독차지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그것을 나누어 차지하게 된다.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건립한 것은 1602년이었다. 이 회사는 1605년 포르투갈로부터 향료제도를 빼앗는다. 1618년에는 자바 섬에 바타비아를 건설하여 포르투갈을 대신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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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영국 튜더 왕조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황제인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에서 남아메리카 남단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대서양 영역은 제외하고, 인도양과 태평양 영역에 대한 무역독점권을 동인도 회사에 부여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양과 동남아 해역에서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이 무역권에서 네덜란드와 주도권을 다투는 일에 전력투구한다. 인도에서는 포르트갈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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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네덜란드와 향료무역 쟁탈전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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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의 대아시아 무역질서의 특징은 인도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치열한 경쟁이다. 뒤늦게 대아시아 무역에 뛰어든 프랑스는 처음에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향료무역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네덜란드 해군력이 여전히 막강했다. 그것이 프랑스의 동남아시아 진출을 막았다. 프랑스는 관심을 인도로 돌렸다. 그곳에서 영국과 목면 무역 주도권을 다투었다. 1757년 프랑스는 콜카타 북쪽에서 인도 무굴 제국과 연합해 벌인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에게 대패한다. 이후 프랑스의 식민주의 활동 무대는 인도차이나 방면으로 옮겨간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가운데
무역이나 돈벌이에 나선 이들에게 국가가 왜 필요하고
하나의 국가는 왜 다른 국가와 경쟁하는지...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은 줄어야 한다고
정부는 작아져야 한다고 부르짖는 부르주아들이
왜 끊임없이 더 큰 국가를 필요로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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