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전쟁에 대한 이데올로기

순돌이 아빠^.^ 2014. 1. 14. 19:18

1910년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이후 일본 학계의 임진왜란사 연구경향은 이케우치 히로시의 저서 [문록경장의 역]이 대표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의 목차는 ‘경성진격’, ‘평양점령’, ‘황해도경략’ 등으로, 일본의 조선침략을 당당하게 서술하고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취지가 앞서 있었다. 일종의 ‘정복전쟁사’의 관점이 일제시대 일본 관변학자들의 임진왜란사 연구를 지배했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가운데






이라크에서도 승리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마련해 공격을 지속해 가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이라크 인들이 갈등과 분열을 뛰어넘는 포용적 정부를 확립하도록 도와 깊이 패여 있는 감정의 골을 치유하고 저항세력을 몰아내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이라크 재건 사업을 지속하면서 이라크 정부가 부패를 청산하고 현대적 경제 체제를 구축해 모든 이라크 사람들이 자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세째, 우리는 테러 목표물을 공격하는 동시에 이라크 군이 스스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치안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이라크 인들은 연일 용기를 보여주고 있고, 우리는 자유의 편에 함께 서있는 그들의 동맹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라크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고되고도 험난합니다. 우리의 적이 잔인 무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새 민주 국가의 눈부신 전진을 방해하지는 못했습니다. 3년도 채 안되는 시간만에 이라크는 독재에서 해방으로, 그 이후 주권 회복, 헌법 제정, 총선이라는 수순을 차례로 밟았습니다. 이 시간 동안 우리 연합군은 외부로부터 침투해 들어오는 테러 세력을 차단하고 저항 세력의 본거지를 치고 이라크 치안 군에게 영토를 이양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승리의 계획을 자신합니다. 저는 이라크 사람들의 강인한 의지를 자신합니다. 저는 우리 군의 능력과 정신력을 자신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승리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길은 우리 군인들을 집으로 데려다 줄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전장에서 성과를 올릴 때, 또 이라크 군이 점차 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때, 우리는 주둔군 규모를 현저하게 더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정은 워싱턴의 정치가가 아니라 우리 군대의 지휘관들이 내릴 것입니다.

- 주한 미국 대사관, '2006 대통령 연두교서' 가운데http://korean.seoul.usembassy.gov/20060131pres.html





2014년 1월 11일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이스라엘 전 총리가 오랜 투병 끝에 타계하였습니다. 6일전쟁 동안 시나이반도 진격작전에 참전하였고 욤키푸르 전쟁에서는 전차사단장으로 시나이 전선 사령관을 겸임하여 수에즈 운하 대안에 교두보를 구축하는 등의 이스라엘 역사에 남을 영웅이며, 가자지구 철수를 주도하는 등 평화를 위해 힘쓴 훌륭한 지도자였던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벤야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성명을 통해 "샤론 전 총리에 대한 추억은 이스라엘 국민의 가슴속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 타계 ' 가운데, http://embassies.gov.il/seoul/NewsAndEvents/Pages/sharon.aspx



초대 주월(베트남)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지난 11월25일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생전에 “월남전이 격화돼 주한미군 7만명을 빼서 월남전에 투입했을때 김일성이 밀고 내려올 경우 승산은 없다. 조국의 공산화를 막자면 월남파병은 불가피했다”고 말하면서 “월남파병으로 한국군의 위상이 높아졌고 경제가 일어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숨 거두기 전 아내에게 “여보, 나 전우들과 함께 묻혀야겠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그의 유지에 따라 현충원 국립묘지 병사들 묘역 3.3㎡ 땅에 평장하였다. 묘석 또한 병사들과 똑같은 크기에 “육군중장 채명신의 묘”로 세워졌다. 그는 평소 그의 전공(戰功)은 부하들의 희생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살아서 조국을 지켰고 죽어서 전우들과 함께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국민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 김풍삼, '채명신 장군이 남긴 교훈' 가운데, [대구일보] http://www.idaegu.com/?c=8/76&uid=269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