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미국의 해양패권과 그들이 거느리는 국제적 배경, 그리고 각종 차관의 형태로 두 나라가 제공한 막대한 전비 지원이 아니었다면 동아시아에서 일본에 의한 러시아의 퇴장은 불가능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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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들 내부에서 러시아 등이 다른 열강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서면서 특히 영미일 삼국의 제국주의 카르텔 연합을 본격화시킨다. 전 지구적 해상제국 영국, 이제 명실상부한 동아태 국가로 거듭나기에 이르는 미국, 그리고 청일전쟁을 통해 제국주의 클럽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일본은 다같이 중국 대륙에 대한 러시아의 영토적 팽창을 경계하면서 반러시아 제국주의 콘도미니엄을 형성한다. 이 새로운 카르텔 양상도 근본적으로 중국에 대한 공동지배라는 목표와 연결되어 있었다. 영국과 미국이 러시아 견제를 목적으로 일본과 연합하게 된 사실은 19세기 말 이후 20세기 초에 걸쳐 한반도의 운명에 지대하고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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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말 일본이 미국과 연합하거나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이유는 최소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동아태지역에서 해상패권을 두고 전개된 열강들 사이의 갈등구조에서 일본과 미국은 독일을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기에 만주에서는 러시아의 지배력이 부쩍 강화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만주와 북중국 전체가 러시아의 배타적인 시장권으로 전락할 것을 가장 우려한 것은 미국이었다...그만큼 미국은 일본을 통해 만주와 북중국에서 러시아 세력의 팽창을 견제하고 싶어 했다. 이 무렵 미국이 일본을 문명으로 추켜세우는 데에 열심이었던 것은 그만한 물질적이며 지정학적인 배경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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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월30일 마침내 영일동맹이 성립된 것...영일동맹협정의 핵심은 “영국은 일본의 방위작전을 후원해줄 뿐 아니라 조선의 독립과 청의 영토보전을 유지하는 데 일본과 협력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한반도와 중국에서 러시아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동맹이었다. 라페버도 한국에서의 일본의 특수한 이익을 인정한 가운데, 조약국의 일방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일방이 원조한다는 것이 영일동맹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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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영국의 문호개방정책을 일본이 지원하는 것을 전제로,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 대륙의 일부를 일본의 영향권으로 인정해주는 내용의 동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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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그 동맹이 존재하는 가운데 러일전쟁이 치러지게 되는 것이었다. 전쟁기간 동안 미국도 실질적으로 일본의 동맹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공식적 동맹관계에 있던 영국보다 미국이 더 적극적으로 일본을 지원한 사실은 최문형의 연구가 잘 밝혔다. 미국의 대일본 지원의 핵심은 전쟁 시작 전부터 독일과 프랑스가 러시아 지원을 위해 개입하는 것을 막아준 것이었다. 만일 미국과 영국의 확고한 일본 지원이 없었다면 이 전쟁에 독일과 프랑스가 러시아 쪽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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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서는 일본이 독일과 동맹을 맺는 것을 예방한 효과가 있었다. 영국으로서는 또한 동북아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골몰하게 만드는 효과도 갖게 되었다. 당시 영국이 주력하고 있던 지역의 일부인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에 러시아가 개입할 여력이 없게 만들 것이었다. 이제 서태평양지역에서 일본 해군은 세계 최강의 영국 함대와 통합하여 전쟁을 기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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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공사 호러스 알렌은 조선인들은 일본을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알렌은 1904년 1월4일 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감상적인 이유 때문에 이 ‘제국’(대한제국)의 독립을 지탱하도록 돕는 것은 진짜 실수하는 일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치능력이 없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그들은 주인이 하나 있어야 합니다...일본이 그럴 수만 있다면 한국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결코 일본 찬미자가 아닙니다. (일본과 같이) 개화된 인종이 이 사람들의 행복과 억압적인 관료들의 통제를 위해 그리고 질서확립과 상업발전을 위해 이 정 많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관리를 떠맡는 것을 나는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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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7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 장관 월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동경에 파견한다...그는 일본수상 가쓰라 다로와 비밀회담을 가졌다...태프트와 가쓰라는 그 회담에서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과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상호 인정하는 밀약을 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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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곧 조선뿐만 아니라 남만주에서도 일본의 배타적인 영향권이 구축되어가는 것에 대해 실질적인 반대를 하지 않게 된다. 미국은 1908년 11월 일본에게 조선에 대한 지배권 인정을 재확인해주고 아울러 만주에서 일본의 특수지위를 인정해주는 협약을 체결한다. 루트-다카히라 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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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2월,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후임 대통령인 태프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당시 미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우리의 사활적인 이익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방해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사활적인 이익은 만주와 조선이다. 따라서 만주에 관해서 미국이 일본에 적대적이라고 느낄 만한 조치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만주와 관련한 미국의 이익은 사실 별 게 아니다. 만주를 두고 미국이 (일본과) 충돌하는 것은 미국 국민이 찬성할 만한 일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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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침략적인 군사활동을 지탱해주는 전략적 물자를 공급해준 나라는 1930년대 내내 미국이었다. 루스벨트와 국무장관 헐이 일본에게 절대절명의 군사적 전략물자이던 항공유와 철강의 대일본 수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1940년 9월이었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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