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첫 번째 목표는 피해자를 노예로 만드는 데 있다. 그는 피해자의 삶 구석구석에 독재적인 통제를 행사하면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단순히 동조한다고 해서 그가 만족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에게는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가 있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피해자의 승인이다. 따라서 그는 피해자에게 존경과 감사, 혹은 사랑의 표명을 집요하게 명한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발적인 피해자를 만드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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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전체주의 정신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복종에도, 가장 비굴한 복종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마침내 우리에게 항복하게 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어야만 한다. 우리가 반론자들을 파괴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저항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파괴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개종시키고, 그들의 내적 정신을 사로잡고, 그들을 새롭게 고친다. 우리는 그들 내부의 모든 악과 모든 착각을 불태워 버리고 그들을 우리 편으로 이끈다. 단지 외관만이 아니라, 지심으로, 마음과 영혼까지.”
다른 이를 완전하게 통제하려는 욕망은 모든 형태의 포악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전체주의 정부는 피해자의 자백과 정치적 전향을 요구한다. 노예 가해자는 노예 피해자에게 감사를 요구한다. 컬트 종교의 지도자는 신성에 대한 복종의 표시로 의식(儀式)을 통한 희생을 요구한다. 가정폭력 가해자는 피해자가 다른 모든 관계를 희생하고 자신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충실하기를 요구한다.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가 종속 아래에서 성적으로 만족하기를 요구한다.
다른 이를 압제하는 기법들은 심리적 외상이라는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시련을 기반으로 확립된다. 이것이 바로 피해자의 힘을 빼앗고, 피해자를 단절시키는 조직적인 기법이다. 이러한 심리적 통제는 피해자에게 공포와 무력감을 주입시키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피해자의 자기감을 파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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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비일관적인 폭력을 겪게 되고, 변덕스럽고 사소한 규칙을 강요당하면서 두려움은 고조된다. 가해자는 전지전능하고, 저항은 헛된 것이며, 피해자의 인생은 전적인 순종을 통하여 가해자의 너그러움을 획득하는 데 달려 있다고 알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러한 기법의 궁극적인 귀결 지점이다. 가해자의 목표는 피해자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삶을 허용해 주었다는 감사를 주입시키는 데 있다. 가정과 정치적 속박의 생존자들은 가해자가 죽이겠다고 협박하고서 마지막 순간에 목숨만을 살려 주었던 상황에 대하여 말한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유예가 몇 번 반복되고 나면, 피해자는 역설적이게도 가해자를 마치 구세주처럼 여기게 되고 만다.
두려움을 유발시키는 데 더하여,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체와 신체 기능을 감시하고 통제함으로써 피해자의 자율성을 파괴하려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무엇을 먹는지, 언제 잠을 자는지, 언제 화장실을 가는지, 무엇을 입는지를 감독한다.
- 글 출처 :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가정 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가운데
로마의 노예소유주가 노예를 지속적으로 통제하고 예속시킬 수 있었던 능력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노예의 삶에는 이처럼 심리적·감정적 안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인이 노예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던 능력이 로마 세계의 노예제가 오랜 시간 지속된 것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 브래들리, <로마제국의 노예와 주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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