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대인관계 워크숍에 참석했단 한 여성이 쓴 것입니다.
모험하기란 내게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였어요.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내가 느끼고 있던 상처나 외로움을 숨겨 왔지요. 나의 감정들을 오래 억눌러 놓았고, 농담할 때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할 때나 겨우 고통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건 고통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상처를 감추고 있던 벽을 무너뜨려 주었어요. 그래서 내가 도망치지 않고 여러분들과 함께 그리고 그 상처와 함께 머무를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또 전에는 살아오면서 대부분 오해받거나 비판받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좋건 나쁘건 진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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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동이 여러분들을 멀리 밀어내고 화나게 했을 때에도 여러분들이 사람에 대한 관심과 존중을 보여 주고 있다고 인식할 수 있었기에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도움으로 느꼈던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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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경험은 사람들을 좀 더 신뢰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열어 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자라나게 해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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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내가 누군지 보고 나 지신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정말 안전한 장소라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 글출처 : 칼로저스, <칼 로저스의 사람 중심 상담> 가운데
중국공산당은 내전이 개시되기 직전인 1946년 5월4일, 소위 5·4지시를 발표하고 다시 1947년 10월에는 [중국 토지법대강]을 선언하고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분배하는 방침을 실천하기에 착수...처음부터 여자들이 토지개혁의 의의를 알고 토지개혁운동에 참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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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반이 여성단체를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하여도 부인들은 [옆집 남자는 몰라도 우리집 주인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좀처럼 협력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공작반은 자주 토론회를 열어 빈농의 여자들로 부녀회를 조직하기에 성공하였으나, 한번은 빈농의 아내 18명과 처녀 4명이 토론회에 참가하였는데 그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공작반이 발언해 주기를 청하면 [가난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참지 못할 정도로 괴롭지는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차차 흉금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한 부인이 일어섰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해 왔습니다. 아홉 살에 시집에 왔는데 가난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편은 지주의 일꾼이 되고 나도 지주 집에서 일하면서 별 수모를 다 당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한 탓으로 이틀동안 굶었다가 한나절 빨래를 하고 나서 지주 집의 밥을 먹으려고 했더니 빨래가 깨끗하게 되지 못하였다는 꾸지람과 함께 밥그릇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 자리에 모여 앉았던 14명의 여자들이 모두 울고나서 차례차례 자기들의 괴로운 신세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 글출처 : 오노 가즈꼬小野和子, <현대 중국여성사>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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