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삶을 기능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인생도 아파트처럼 잘 배열되기를 바랐다 – 사교 생활, 재정 문제, 연애와 섹스가 모두 조화롭고 합리적이기를 원했다.
그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잘 정돈된 상태인 것 같지만, 사실 남보다 더 무질서를 두려워하고 의식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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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신문이 어질러진 꼴을 내가 참을 수 없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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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에릭은 전화선이 세 번 이상 꼬이거나 리모컨이 TV 위의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은 꼴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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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부르주아의 체통 속에 씁쓸한 균열을 감춘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변호사였지만, 어린 에릭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명예스럽게 해고당했다. 아버지는 연달아 사업을 벌여 잇따라 망했고, 아일랜드에 땅을 사는 바람에 집안을 빚구덩이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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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폭력을 휘두르곤 했지만, 엄마는 노팅힐 거리의 점잖은 이웃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아들들에게도 그 사실을 숨겼다.
에릭은 불확실한 장소, 사람, 직업을 초대한 자신의 뜻대로 저하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가운데
이것저것 뒤죽박죽이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채 불안과 혼란 속에 살다보면 이런 것들이 지긋지긋하겠지요. 그러다보면 삶의 많은 것들을 예상할 수 있고, 정리정돈 된, 흐트러짐 없는 상태로 만들려고 할 수도 있을 거에요.
성격이 까탈스럽고 별나다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그렇게 된 이유가 있겠지요. 그것이 무엇이거나 정리 되지 않고 예상할 수 없는 것은 과거의 아픈 마음을 떠오르게 할 수도 있으니 미리 예방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을 거에요.
영화 <플랜맨>의 정재영의 경우는 어릴 때 엄마가 아들의 하루를 아주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계획을 세우고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했지요. 아들은 엄마를 사랑했구요.
사고로 엄마가 죽고 난 뒤에도 아들은 지저분한 거, 냄새나는 거, 정리 안된 거를 보면 불안하고 심장이 쿵쿵 뛰고 땀이 나고 그러는 거에요. 찻잔의 방향, 넥타이 헐거워진 거, 치마에 나와 있는 실오라기 하나까지 온통 불안하게 느끼는 거에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재영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엄마가 언제나 깔끔 정돈 정리 속에 살라고 그랬고, 그러지 않았을 때 야단을 맞거나 엄마의 사랑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거에요. 엄마가 지금은 곁에 없지만 언제나 마음 속에 있어서 엄마가 싫어할만한 일은 하지 않는 거겠죠. 자신도 그렇게 살다보니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었을 수도 있구요.
이제는 엄마가 자신의 곁에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다보면 이런 삶의 방식이 바뀔 수도 있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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