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사랑스럽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
그녀의 기본 감정은 항상 당신이 어떻게 날 사랑할 수 있겠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에릭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누군가가 오랫동안 성실하게 애정을 바칠 만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게 관건이었다. 앨리스는 에릭이 자신의 곁에 머무를 수 있을까 의심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매력을 불신했다.
......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오랫동안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비난의 화살은 그녀 자신에게 돌려졌다. ‘자기연민에 빠진 어리광쟁이야. 그는 너같이 따분한 노처녀를 달고 가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 많은 사람이라구.
그녀는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의자에 앉아서, 마음을 다잡으며 비스킷을 먹고 TV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어져서, TV를 끄고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침실로 달려가서 쿠션 더미에 몸을 던지고 다섯 살배기처럼 울다가 잠들었다.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가운데
그토록 사랑 받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아껴쭸으면 싶었지만...
막상 누군가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어색해집니다.
그 사랑은 나를 향하는 것 같지 않은 거지요.
주소가 틀려서 잘못 배달된 편지 같습니다
사랑 받고 싶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갔지만 막상 그 사람이 내게 다가오면
움찔하며 오히려 한 발 물러 납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거지요,
그 사람이 날 사랑할리 없다는 거지요
사랑 받고 싶어서, 그래서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노력을 해 놓고서는
이제 사랑이 다가오니 갑자기 자신의 못난 모습을 줄줄이 늘어 놓습니다
난 얼굴도 못났고, 멍청하고, 성격도 나쁘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그럴리가 없어, 내가 착각에 빠진 건지도 몰라'라고 하지요
그렇게 다가온 사랑을 계속 해서 의심하니 계속 확인해야겠지요
'날 사랑해?' '정말?' '왜?' '왜 날 사랑해?' '내가 싫지 않아?'라구요.
상대가 아무리 끊임없이 '널 사랑해' '너와 함께 있는 게 좋아'라고 해도
자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 때문에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 상대가 이제는 지치고 질려서 떠나려고 하면
'거 봐.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리 없어'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고 못하고 혼자가 됩니다
또 그렇게 혼자가 되어서 눈물을 흘리지요
이 사람의 마음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
아마 누군가 이 사람을 끊임없이 못났고 멍청하고 성격도 나쁘다고 했을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아니야'라고 부정했겠지요
하지만 그게 한 번 되고 두 번 되고 열 번 되고 백 번 되면
'그래 맞아...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라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때부터는 다른 사람이 못났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못났다고 손가락질 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맡았던 역할을 자기가 직접 맡고 나선 거지요
자기가 자기를 욕하고 벌주고 비난하는 겁니다
A : "오늘 회사에서 사장 때문에 존나 짜쯩 났어"
B : "그랬구나..."
A : "아이고 답답해 죽겠네"
B : "미안해 내가 얼른 니 답답한 마음을 풀어 줬어야 하는 건데..."
A : "아니야. 너 때문에 생긴 일도 아니고. 그냥 답답해서 하는 소리야"
B : "그래 알겠어...근데...난 왜 이럴 때 애인의 답답한 마음 하나 풀어주지 못하는 거지? 정말 바보야"
A : "어?...그게 아닌데...너무 걱정하지마. 니가 그동안 나한테 많은 것을 해 줬잖아. 지금도 내 옆에 있어서 내게 힘이 되고 있구"
B : "그래 맞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니 옆에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네.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없고, 위로의 말도 할 줄 모르고..."
A : "아냐 아냐. 니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 줄 니가 잘 몰라서 그래. 내가 눈이 높아서 아무나 선택하지 않거든. 하하하"
A는 B에게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으면서 위로 받고 싶었지만...오늘도 B가 자신을 미워하는 말들을 쏟아내자 결국 A는 언제나 그랬듯이 또 B를 위로하는 것으로 마무리.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 되고, 두 번 되고, 열 번 되면 A도 지치지 않을까요? B로부터 위로를 받기는커녕 늘 자신이 무언가를 해 줘야 하니 말입니다. B가 자신을 미워할 때 A가 위로해 주지 않으면 B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여기면서 더 크게 자기를 공격하는 일도 벌어지구요.
이러다 보니 A는 늘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말한마디 까딱 잘못했다가는 언제 B의 자기 공격이 시작될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A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B의 자기 공격을 막기가 어렵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B 앞에서, 자기 공격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말들과 행동을 차단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B는 그렇게 못난 사람도 아니고 멍청한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그 마음이 자신을 그렇게 여기도록 만들어져 있을 뿐이지요. 그렇게 자신을 여기도록 만들어져 있는 큰 힘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겁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자존감을 가지세요' '자존감을 높여 보세요'라는 말만으로는 해결이 안 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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