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있는 날이어서 투표를 하고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총선과 잘 어울리는(?) 연극이었습니다.
헨리4세는 왕이었던 리처드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지요. 그리고 헨리4세와 함께 리처드를 몰아냈던 무리들은 다시 헨리4세를 몰아내려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헨리4세는 혼자 말을 합니다. 백성들은 편히 자는데 자신은 편안히 잠조차 들 수 없다고...
영국의 국왕으로 높은 옥좌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을 말 한마디로 부릴 수 있지만 정작 밤에 잠조차 제대로 못 자는 거지요.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누군가 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일으키겠지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거지요. 사람만 바꿔가면서 이 놈 저 놈 계속해서 싸움을 벌이니 왕도 왕의 칼도 잠들 수 없는 거겠지요.
이긴 놈은 자신을 정의라고 하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겠지요. 거친 투쟁 속에서 승리를 거뒀으니 이 승리가 영원할 것 같이 느껴지구요.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왕자 앞에서 헨리4세는 말합니다. 이제 쉬고 싶다고...
인간이란 존재가 계속해서 투쟁과 긴장 속에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이제는 모든 것을 놓고 쉬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요?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동안 내내 불안 속에 떨어야 했으니 말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권력을 쥐고 있으면 편안해야 할텐데 오히려 불안에 시달리다니.
명예란 것도 비슷한 건 아닐까요. 그토록 바라던 명예를 얻었다고 하지요. 명예를 얻은 뒤에 우리 삶은 무엇이 달라질까요? 명예를 얻었다는 기쁨은 정말 천년만년 계속되는 걸까요. 혹시 명예를 얻었다는 기쁨보다는 언젠가 명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더 크게 감싸는 건 아닐까요. 한 편의 영화로 유명해진 배우가 계속해서 그 유명세를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 또 특별한 것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듯 말입니다.
명예를 얻어 우리가 갖게 되는 건 평안과 휴식이 아니라 부담과 불안인 것은 아닌지.
왕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 폴스타프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놉니다. 권력과 명예를 가진 인간은 늘 긴장하고 투쟁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데, 권력과 명예를 갖지 않은 인간은 즐겁게 웃고 떠드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 권력과 명예로 얻을 수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권력과 명예를 얻으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어쩌면 환상인 게 아닐까요? 그 환상과 열망이 너무나 강해서 죽음을 무릎 쓰고 권력의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온갖 일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며 왕이 되기를 기다렸던 왕자, 그가 왕이 되고 나서 만나게 되는 삶은 아버지 헨리4세의 삶과 얼마나 다를까요? 폴스타프를 비롯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실컷 먹고 놀고 하던 시절보다 왕이 된 이후가 정말 더 행복하고 즐거울까요?
영화보다 연극이 좋은 점은 생동감과 입체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우의 표정 하나 말소리 하나를 직접 느낄 수 있으니까요.
마음 울컥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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