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냐 싶은 이야기이고, 어찌보면 나나라는 인물은 정말 제 정신이 아니다 싶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나나>를 읽으며 안타깝고 애처로웠습니다. 나나가 안타깝고 애처로웠습니다. 나나라는 인물을 보면서 어이없다거나 허망하다고 느끼지 않고 안타깝고 애처롭게 느꼈던 것은 아마도 에밀 졸라 <목로주점>에 나오는 나나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린 시절의 나나...학대와 가난에 시달리던 여자 아이. 그런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나나>에서의 행동이 잘 했다는 것이 아니라, <나나> 속 나나의 모습 속에서 <목로주점>의 나나가 떠오르며 제 마음을 흔들었던 겁니다. 지금 그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와 함께, 그녀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면...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왜 그녀가 그토록 자신의 성적 매력에 집착하게 되었을까요? 왜 그렇게 사치를 하고, 왜 그렇게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했을까요? 왜 그렇게 남들이 자신을 떠받들도록 하고 싶었을까요? 그러면서도 문득 문득 하느님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그녀는 사랑을 기다리면서도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만들기 어려웠던 건 걸까요? 퐁땅과 함께 지내며 두들겨 맞으면서도 관계를 끝내기 보다는 매달리며 버티기나 하고...두들겨 맞고 무시당하면서도 나나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종교에 '빠져' 살며 안식을 구하다, 나나에 '빠져' 살며 안식을 구하던 뮈파 백작도 불쌍했습니다. 하느님도 연인도 그를 구원해 줄 수 없음에도 매달리고 애원하다 스스로 무너져가는 불쌍한 사람...
- 에밀 졸라, <나나>, 동서문화사, 2008
뮈파는 머리에 열이 나서 걸어서 가기로 했다. 마음속의 갈등은 이미 끝나 있었다. 새로운 생명의 물결이 40년에 걸친 그의 사상과 신념을 떠내려 보내 버린 것이다.
...
오늘밤 단 한 시간이었지만그는 자기가 나나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것을 느꼈다. 좋다. 나나를 내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천주天主를 버리고 온 재산을 팔아 치워도 아깝지 않겠어. 청춘이 마침내 눈을 뜬 것이다. 냉정한 가톨릭교인읜 가슴속에, 중년 신사의 분별 속에 젊은이의 탐욕스런 욕정이 갑자기 불타오른 것이다. - 784
나나는 침대에서 내려가기 위해 퐁땅을 타 넘으려고 했다. 퐁땅은 가뜩이나 졸려서 죽겠는데 타넘기까지 하려는 통에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힘껏 따귀를 갈겼다. 너무 세게 때려서 나나는 머리를 베개에 처박고 벌렁 나자빠졌다.
...
나나는 얼굴을 베개에 묻고 소리없이 울었다.
'폭력을 쓰다니 비겁하잖아.'
...
그러다가 어느새 화끈거리는 볼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잠이 들어 버렸다....아침에 눈을 뜨자 그녀는 드러난 두 팔로 퐁땅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네?"
나나는 그를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었다. 이 사람한테라면 얼마든지 맞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
마음속의 불안을 웃는 얼굴로 감추고 나나는 모든 것을 너그럽게 보아 넘기고 있었다. 잔소리를 하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그것만이 걱정이었다. - 866
"세상에, 그렇게 악랄할 수가! 그것도 다 질투 때문이에요...하지만 상관 없어요. 그 따위 인간들은 상대도 않을 테니까요! 어디 두고 보자. 웃는 놈들을 여기 끌고 와 눈앞에서 땅바닥을 핥게 해줄 테니!...모든 빠리 사람들에게 멋있는 여자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줄 테야!"
나나는 멋있는 여자가 되었다. 말하자면 남성의 어리석음과 욕정에 붙어사는 거리의 후작 부인이 된 것이다. - 928
어린아이를 잊고 있는 날에는 여전히 소란스러운 생활로 돌아갔다. 브로뉴 숲의 산책, 연극의 첫공연, 메종 도레나까페 앙글레에서의 만찬과 야식, 나아가서는 마비유 쇼, 경마 등 군중들이 몰려드는 모든 유흥장과 구경거리. 그래도 공허감을 메꾸지 못해 괴로워했다. 언제나 무언가에 넋을 잃고 있으면서도 혼자가 되면 녹초가 된 듯이 늘어져 버린다. 곁에 사람이 없으면 금방 울적해진다. 공허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는 제 자신과 얼굴을 맞대야만 하기 때문이다. - 942
여기저기 모여서 마시던 사람들도 몰려 왔따. 도처에 흩어져 있던 샴페인이 모두 나나의 주위에 모여든다. 이윽고 마차 주위에는 단 하나의 군중, 단 하나의 소음밖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쳐드는 글라스에 둘러싸여 여왕처럼 서 있는 나나, 바람에 휘날리는 금발, 햇빛을 받아 백설처럼 빛나는 흰 얼굴, 자만이 절정에 이른 그녀는 다른 여자들이 분해서 발을 동동 구르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977
나나는 뤼시, 까롤닌느, 그 밖의 여자들이 보내는 선망의 눈초리를 즐겼다. - 980
나나는 언제까지나 자기 이름을 들으면서 황홀한 기분에 잠겨 있었따. 들판 전체가 메아리친다. 군중이 자기에게 갈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늘빛 같은 청색과 백색의 옷을 입고 금발을 바람에 나부끼며, 나나는 여왕처럶 군림하고 있었다. - 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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