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평화.함께 살기/삶.사랑.평화-책과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20. 3. 5. 07:38

양파가 대빵 크게 나오는 첫 화면부터 좋았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나오는 영상이 정말 좋았어요. 색감도 그렇고 질감도 그렇고 영상의 내용도 그렇고...그림 같기도 하고 연극 같기도 하고...





이 영화를 통해 제 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여성의 삶입니다. 스칼렛 요한슨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바로 위에 주인 마님이 있고 그 위에 주인 남자인 화가가 있지요. 그리고 그 화가 위에는 자신을 후원해 주는 돈 많은 놈이 또 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하녀가 되었는데, 하녀의 존재는 일과 돈의 교환으로 끊나지 않습니다. 17세기의 네덜란드가 정말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정말 있을 법한 일입니다. 돈 때문에 일을 하러 갔는데, 거기에는 천대 받고 무시 당하는 일도 벌어지지요. 일-돈 교환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위-아래가 생기는 겁니다. 


하녀이자 여성이라는 존재는 성적인 폭력과 지배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 돈 많은 놈이 저지르는 일이지요. 돈과 일자리 때문에, 물리적 힘 때문에, 동네 사람들의 소문 때문에 저항하기 어려운 여성을 괴롭히고, 강제로 섹스를 하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이란 놈들이 하인이나 종을 상대로 이런 일을 많이 저질렀던 건 아닐까 싶어요.


물리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주변 사람들의 소문과 수근거림의 희생자가 되고, 일자리도 잃게 되는...가해자에게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피해자에게는 고통이 끊이지 않을 수 있는 일이지요. 가해자 남성은 돈도 있고 힘도 있으니 그냥 어쩌다 젊고 예쁜 하녀를 한 번 건드린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피해자 여성은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지요.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주인 마님의 삶은 하녀의 삶과는 여러가지가 달라요. 그렇다고 크게 박수 쳐 주고 싶은 건 아니에요. 아이를 낳고 낳고 또 낳고...그렇게 몸과 마음은 지쳐가지요. 사랑 받고 싶은 남편의 마음은 점점 젊은 하녀에게로 옮겨 가구요. 예쁜 보석을 바꿔가며 몸에 걸어도 쇠락해가는 모습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러다 하녀를 향한 질투와 분노, 남편을 향한 원망과 응어리가 터져나올 때는 참 불쌍해요...그림을 앞에 두고 나는 못 느끼고 저 년은 느끼느냐며 소리칠 때는 정말...ㅜㅜ







이 영화속 한줄기 빛이라면 예술적인 감정과, 그 감정의 교류가 아닐까 싶어요. 스칼렛 요한슨과 주인 화가의 관계이지요. 주인-하녀이지만 그들은 예술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느낍니다. 정말 소중한 일이에요. 돈 때문에 후원자의 요구에 따라 사는, 주변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없는 외로운 마음이 자신을 알아주는 또 다른 마음을 만났다고 할까요? 함께 나누고 싶고 함께 느끼고 싶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기쁘고 반갑고 떨릴 수 밖에요.


가난한 삶 속에서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해내기 바빴던 삶에 그림이, 빛이, 색이, 형태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고 할까요? 매일 매일이 똑같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느낌이, 또다른 시선이, 변화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을까요? 설레고 흥분되는 순간이지요. 이제는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해요. 그냥 멍하니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고 생동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요. 무언가 배울 수 있고 무언가 느낄 수 있다는 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들뜨게 하는지...^^






아...어쩌면 그런 것들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줄 희망일지 몰라요. 그게 설사 짧은 순간일지라도...밝게 스며드는 빛 앞에서 주인-하녀의 관계는 녹아버리고, 그 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누군가로 변할 수 있어요.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느낌과 감정에 대해 묻게 될지도 몰라요. '이걸 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어떻게 생각해요?' 라고 묻게 되는 거지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가 아니라 '제 생각에 그건...' '이게 좀 더 좋지 않을까요...'가 되는 거지요.  


경직되고 꾸며진 표정들이 화려한 식탁 위에서 아무리 웃고 떠들어도 공허할 뿐이에요. 무력감만 늘어가지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의 색을 느낄 수 있고, 그 일렁이는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설레임이 무언지도 알게 될 거에요.



아픈 몸에는 약이 도움이 될 거고

닫힌 마음에는 예술이 도움이 될 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