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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순돌이 아빠^.^ 2020. 3. 15. 08:37

책 제목이 좀 이상하죠? ^^


근데 정말 감동적인 책이에요.

인간의 뇌에 관한 책인데...감동이에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서 감동인 것도 있지만...그것과 함께 올리버 색스가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마음이 더 감동이에요.


그러고 보니...뇌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 곧 인간의 마음과 행동과 삶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니

그에 대해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뻐요. 


배울 것도 많고

재미도 있는데

감동까지 안겨 주니 

별점을 5조5억개 주고 싶어요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2020


고차적인 신경학과 심리학 연구에서는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대단히 중시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

이러한 새로운 방법은 어떤 사람을 '바로 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근본적인 신경의 세계를 다루고, 옛부터 제기되어온 머리와 마음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정신(심리)과 물질(육체)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그러나 이 두 영역을 동시적으로 다루고 분리할 수 없도록 결합시켜 실행하는 연구가 가능하다면 범주가 서로 다른 그 두 영역을 접근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매커니즘과 생명이 교차하는 장소로 다가가 병리적 기술과 '한 인간의 역사'가 맞물리는 지점에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11


병이란 결코 상실이나 과잉만이 아니다. 병에 걸린 생명체, 다시 말해서 개인은 항상 반발하고 다시 일어서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혹은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고 하고 아주 기묘한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반드시 반응한다. 이러한 수단을 조절하거나 유도하는 것은, 분명히 신경조직에 대해서는 과도학 요구일 수도 있겠지만, 의사인 우리들의 기본적인 의무이다. 아이비 맥킨지는 이 점을 당당하게 서술했다.


도대체 '병의 본질'이라든가 '새로운 병'이란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의사는 자연학자와는 달리 다양한 생명체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을 이론화하는 것보다. 단 하나의 생명체, 역경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하나의 개체, 즉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 마음을 둔다. - 23


<선한전쟁>은 스터즈 터클이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한 것을 편집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인생의 충실감을 맛볼 수 있었다고 말하는 남녀(특히 남자전투원)의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자신들의 생애에서 가장 생생하고 충실한 의미를 가진 시기였다. 그에 비해 그후의 시기는 빛바래고 활기없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도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당시의 전투나 동지애, 도덕적 확신과 열의를 다시 체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로의 몰입, 현재의 감정이나 기억에 대한 차디찬 열의 등... - 65


고양 상태란 단순히 건강하고 충실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힐 지극히 불안하고 도를 지나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행과 추악한 행위를 초래하는 일도 있다. 지나치게 흥분한 환자는 통합과 억제를 잃은 상태, 어떤 종류의 '과잉'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충동과 이미지와 의지에 압도되는 상태이며 생리적인 광폭성에 사로잡힌(혹은 내몰린) 상태인 것이다. - 158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떤 곳에 결함이 있어서 몇십 년이나 지독하게 고생한 환자가 기적처럼 갑자기 좋아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변덕스럽고 위험한 '과잉,;의 상태로 이행했을 뿐인 것이다. 기능은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는 자극을 받는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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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은 이처럼 특별한 능력과 고뇌,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낳는다. 그래서 통찰력이 있는 환자는 뭔가 이상하고 모순된다고 느끼게 된다. 어떤 투렌 증후군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에너지가 너무 과한 것 같아요. 너무도 활기차고, 힘도 넘쳐요. 너무도...열벙에 걸린 것 같은 에너지, 그러니까 뭔가 병적인 특출함이라고 할까요" 


'위험하리만치 좋은 몸 상태'와 '병적인 특출함, 그것은 기만적인 행복감이다. 그 밑에는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것은 과잉이 놓은 무시무시한 함정이다...전자는 도취로 일한 일종의 이상 증세로 나타나고, 후자는 흥분에 대한 광적인 탐닉으로 나타난다. - 160 


며칠 후에 세 번째 만났을 때 그는 아주 우울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치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 같았다(수액검사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받기 위해서 진정용 할돌을 투여받았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그 도형을 그려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정확하면서도 평범하게, 원래의 형태보다 조금 작게 그렸따(할돌 때문에 작은글자증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림에는 앞의 두 그림과 같은 재미와 동적인 움직임도 없었고 상상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전에는 정말 생생하게 보였는데, 치료를 받고 나니 모든 게 죽은 듯이 보여요"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에도, 엘도파를 투여해서 '각성'을 일으키게 한 뒤에 그림을 그리게 하면 도움이 되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에 나무를 그리라고 하면, 그들은 왜소하고 빈약한 데다 잎이 완전히 떨어진 겨울나무를 그리는 경향이 있따. 그러나 엘도파를 투여해서 각성시키면 생생하고 힘이 넘치며 잎이 무성한 나무, 생기로 가득찬 나무를 그린다. 잎이 푸르디푸르게 우거지고 물오른 가지에 꽃이 만발해 있다. 심지어 잎이 갖가지 다양한 모양으로 등장한다. - 184


그는 자기 눈앞에 보이는 살아 있는 동생의 절망스러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톰슨 씨의 내적인 현실성에 다른 어떤 것보다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상실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것은 현실감의 상실, 감정과 의미 그리고 영혼의 상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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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는 말하자면 '미아'와 같은 상태였다. 따라서 정서의 세계에 몰두하거나 그것과 순수하게 교류함으로써 잠시나마 구원받을 수 있었다...그에게는 구원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감정과 의미를 되살릴 가능성이 있다. 감정과 의미가 지금은 상실되거나 잊혀졌지만 그는 그것을 애타게 다시 갖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톰슨 씨는 시끄럽고 화려한 언행과 끊임없는 농담으로 현실세계를 대신하고자 했다(만일 세계가 절망감으로 가득 찬다고 해도 그는 그와 같은 절망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끝없는 농담 속에 배어나오는 관계와 현실에 대한 명백한 무관심으로 인해 그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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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경우 가장 큰 '실존적인' 비극은 기억에 있지 않았따. 그의 기억이 완전히 황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기억에만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느낀다는 기본적인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루리야는 이러한 무관심을 '균일화'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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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톰슨 씨의 치료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맥락을 다시 연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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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조용한 정원, 인간이 없는 세계에서는 사회적인 요구나 인간적인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정체성의 혼미 상태에서 벗어나고 흥분상태에서 해방되어 유유자적한 평정을 되찾는다. 정적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분위기가 주어지고, 나아가 주위가 인간을 제외한 온갖 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에야만 그는 비로소 평온과 충족감을 맛보는 것이다....그는 이 일체감을 통해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가식이 아닌 진정한 존재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 198-201


'복잡한 정신 상태'라 함은 과거에 경험한 정확하고 상세한 환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대뇌피질의 발작을 일으키기 쉬운 장소에 가벼운 전기자극을 줌으로써 그것을 재현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의식이 완벽하게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환자에게 자극을 주자 곧바로 지극히 생생한 멜로디의 환각이 생겨났다. 사람들과 정경의 환각도 일어났다. 그 같은 환각이 수술실이라는 무미건조한 분위기에서도 대단히 현실감 있게 추체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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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도 알겠고, 내가 뇌졸중을 일으킨 노인네이며 양로원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전 지금 아일랜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도 들고요.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펜필드도 지적했지만 "그렇나 간질성 환각, 몽상은 결코 공상이 아니라 기억이다. 지극히 명확하고 선명한 기억이며, 더구나 당신에 체험할 때의 감정과 함께 떠오른다." 그러한 기억은 대뇌피질이 자극을 받았을 때마다 되살아나는데, 평상시에 떠오르는 기억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 234


나는 M부인에게 항경련제를 투여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음악성 발작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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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발작의 원인은 생리학적이면서 동시에 환자 고유의 것이기도 하다. 뇌의 어떤 특정 부위에 이상이 생겨서 일어날 뿐 아니라 개개의 심리적 조건과 심리적 필요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다. 데니스 윌리엄스는 그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31번째 환자는 모르는 사람들 틈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간질발작을 크게 일으켰다. 발작 초기에는 집에 있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간절한 바람을 느꼈다.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운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소름이 돋고 몸이 더워지거나 차가워진다. 그다음에는 발작이 멈추거나 아니면 경련으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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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부인의 경우, 옛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 깊숙한 곳에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그녀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꿈속에서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긴 환각 속에서 그녀는 사라진 중요한 어린 시절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녀가 느꼈던 것은 단순한 '발작성 쾌락'이 아니라 뼛속 깊이 스며드는 깊은 환희였다. 그것은, 그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인생을 굳게 닫아걸었던 문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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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부인은 발작이 일어나면 인생에 생기가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발작을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과 현실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뿌리 없는 풀처럼 살았던 그녀가 아무리 원해도 얻을 수 없었던 소중한 감각이었다. '나에게도 정말로 얼니 시절이 있었다. 집이 있었고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귀여워했다'와 같은 따뜻한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치료를 받아 환각을 없애고 싶어했던 m부인과는 달리, c부인은 항경련제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회상이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필요해요.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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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병이 곧 건강이고 병에 걸리는 것이 곧 치료되는 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뇌졸중이 치료됨에 따라 c부인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공포를 느끼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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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필드는 언제나 이러한 관점에서 의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신발작은 의식의 흐름(혹은 의식된 현실) 가운데 일부분을 포착해서 경련을 통해 그것을 재생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

뇌줄중에서 회복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발작이 일어나서 행복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자세한 부분까지 낱낱이 떠올릴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었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어느 모로 보나 만족스럽고 완전한 존재가 되었답니다"

...

그렇게 한다면 우리 시대에 새롭고 멋진 '실존적인' 과학, 실존적인 요법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과 체계적인 생리학을 결합함으로써 병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 234-251 


중요한 것은 그가 손상을 입은 곳이 대뇌피질이 아니라 후각로뿐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일어난 일은 아마도 후각과 관련된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하게 발달한 나머지 생긴 '통제된 환각증'일 것이다...향기를 맡고 싶다는 소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향기가 '진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 271


어느 시대에나 종교문헌은 '환영vision'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문헌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숭고하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을 눈부신 광채와 함께 경험했다...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경험이 히스테리성 황홀 상태인지 혹은 정신병적인 황홀상태인지 아니면 간질이나 편두통 혹은 중독 때문에 생겨난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 281


황홀 상태에서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환영에 대해 신을 향한 경외심과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가꾸어가는데 도움을 받았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환영이 하찮고 꺼림칙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생리적인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지고한 황홀감에서 나오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 285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구체성'이다. 그들의 세계는 생기 있고 정감이 넘치고 상세하면서도 단순하다. 왜냐하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추상화를 통해 복잡해진 것도, 희박해진 것도, 통일된 것도 없다.


자연 만물의 본래 모습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오히려 반대이겠지만, 신경학자들은 '구체성, 구체적인 사상'을 열등하고, 고려할 가치가 없고, 통일성이 결여되었고, 퇴보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체계화, 조직화에 관한 한 당대 제일인자로 불렸던 쿠르트 골드슈타인 등은 인간의 정신에 추상화와 분류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일단 뇌에 손상을 입으면 인간은 고상한 영역으로부터 인간적이라고조차 말할 수 없는 차원 낮은 '구체성'의 수렁으로 대동댕이쳐진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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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구체성이야말로 기본이다. 현실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으로, 개인적이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구체성'이다. 만일 '구체성'을 상실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P선생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골드슈타인의 사고와는 정반대로 '구체성'에서 전락해서 '추상성'으로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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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에 나오는 자제츠키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의 추상능력이나 서술 능력이 아무리 황폐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도덕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인간인 것이다. - 291-292


그녀는 깊고 따뜻하며 정열적인 사랑을 할 줄 알았다. 그녀는 할머니를 끔찍하게 사랑했다....자연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공원이나 식물원에 데리고 가면 몇 시간 동안이나 즐겁게 놀곤 했다. 

...

리베카는 일상생활 속의 간단한 설명이나 가르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심오한 의미를 지닌 시 속의 비유와 상징을 이해하는 데는 거의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에게 감정을 나타내는 말, 이미지나 상징을 나타내는 말은 하나의  세계였다. 그녀는 그 세계를 사랑했고, 그 속으로 놀랍도록 깊게 파고들었다. 그녀는 개념적인 이해력이 없는데도 시적인 언어는 잘 알아들었다.

...

그녀는 그때까지 사람들의 눈에 '우둔한 여자애' '바보' '굼뱅이'로 비쳤고, 사람들은 실제로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사실 지능이 뒤떨어졌고 그 점에 대해서는 그녀 자신도 알았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결점투성이에 무능하다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온화하고 성숙한 감정을 지니고 충실히 살아가는 인간, 보통 사람들에 못지않은 깊고 고상한 정신을 지닌 인간이었다. 리베카는 자신이 지적으로는 불완전하다고 느꼈지만, 정신적으로는 충실하고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 298, 299


만일 장애가 없었다면 그는 카루소와 같은 대가수가 되었을까? 아니면 음악적 재능의 발달은 어느 면에서는 뇌장애와 지능장애에 대한 보상이었을까?...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친밀한 부자관계 및 정신 지체인 아들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을 통해서 음악적인 소질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정열까지 그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마틴을 사랑했고, 그도 아버지를 열렬히 사랑했다. 그리고 부자간의 애정은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공유함으로써 더욱 끈끈하게 맺어졌다. - 312


오라토리오나 수난곡과 같은 대곡을 부를 때뿐 아니라 작은 교회의 성가대와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그는 음악에 몰두하는 순간 자신이 정신 지체라는 것과 슬프고 비참한 존재라는 것 따위를 모두 잊었다. 그럴 때면 자신도 중요한 일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자신도 어엿한 한 사람의 인간이자 신의 아들이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313


지적장애인인 마틴이 이렇게 정열적으로 바흐에 몰두하는 것은 신기한 일인 동시에 감동적이기도 했다...지능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흐는 그를 위해서 존재했고, 바흐야말로 그의 생명이었다. - 317


마틴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교회로 돌아가 노래를 부른 다음부터 그는 자신감을 되찾고 우뚝 일어나 다시 한번 진실한 존재가 되었다....그는 이제 감정도 없이 비인간적이고 직관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격을 갖춘 인간이었다. 그는 존엄을 갖춘 예의 바른 사람으로서, 지금은 의료원 동료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 318


쌍둥이 형제를 테스트한다는 생각과 연구를 위한 '대상'으로 삼는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깊숙한 내면 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춘다든지 시험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하낟. 그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려고 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조용히 관찰해야 한다.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생각하며 둘이서 조용히 무얼 하고 있는지를, 설령 그 몯느 것이 기묘하게 여겨질지라도 오히려 공감하는 마음의 자세로 지켜보아야 할 따름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겠지만, 거기에는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을 신기한 것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필시 근원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어떤 힘이요, 심연이다. - 325


그는 지하실에 살면서도 내면세계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그는 사진잡지, 특히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박물지 성격의 잡지에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발작을 일으키고 호되게 꾸지람을 받는 생활의 반복 속에서도 연필을 발견하고 그리을 그렸다.


어쩌면 그 그림들은 호세를 외부세걔, 특히 동식물 등의 자연계와 ㅇ녀결시켜주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와 스케치하러 다닐 때도 그는 자연을 대단히 좋아했다. 이와 같은 자연과의 관계가 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현실과의 실마리였다. - 365


나는 이 그림이 상징적인 것이라고...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그마한 물고기와 커다란 물고기, 호세와 나를 그린 것인가? 그러나 매우 중요하면서도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 그림에는 내 지시가 아니라 호세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난 충동이 나타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요소, 살아 있는 상호작용을 집어넣고자 하는 충동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그림에는(그의 인생에도) 항상 상호작용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징적인 형태를 취하기는 했지만 오늘에야 간신히 놀이 속에서 상호작용을 되찾은 것이다. -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