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가 재밌었다거나 재미 없었다거나 감동적이었다거나 졸렸다거나...뭐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할텐데...
일단 이 영화는 보고 나서 감동적이라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영화가 별로여서 그런게 아니라...감동이라기 보다는...음 뭐랄까...숙연해지고...경외심 같은 게 들고...영화에 대한 경외심이라기 보다는 산다는 것, 삶이라는 것에 대한 경외심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아요.
그리고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게...기분이 좋지 않아서 가라 앉는 게 아니라...삶을, 세상을 차근히 달리보게 만들어서 가라앉는다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왠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비행기를 타고 지금의 내 삶과는 조금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기도 하고...
차 한 잔에도 사연이 있고, 이리저리 얽힌 관계가 있을 수 있어요. 차 한 잔을 통해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는 거지요. 차 한 잔을을 건네는 사람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면요.
이웃이 건네는 죽 한 그릇에도 그들이 살아온 삶의 역사가 담겨 있을지 몰라요. 남들이 보면 그냥 별 것 아닌 죽 한 그릇 속에 서로를 걱정하고 아껴주려는 마음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구요. 그들은 그렇게 살아 왔고, 그렇게 살아 남았던 거지요.
제 몸에 상처를 내는, 남들에게는 그저 이상하게 보이는 행동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구요. 그러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먹고 살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요. 이상한 행동 속에 절박한 이유가 있는 거지요.
거북이를 그저 거북이라고 생각하고 발로 툭 찰 수도 있를 거에요. 아이들을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고 윽박지를 수도 있을 거구요. 하지만 아이들이라고 감정이 없겠어요? 아이들을 감정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요.
발밑을 지나는 작은 동물들도 삶을 이어가기 위해 부지런히 제 몸을 움직이고 힘겨운 노력을 이어가요.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곡괭이로 땅을 파는 사람이 있고, 뜨거운 햇볕 아래서 밀과 보리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는 것럼 말이에요.
그저 멀리서 무심히 바라보면 그냥 나무이고, 그냥 마을이고, 그냥 사람일 수도 있어요. 흙먼지 이는 마른 땅 위에 이리저리 서 있는 나무들처럼요.
그런데 가까이서 직접 느껴보고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이 살아 있고,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정치도 좋고 예술도 좋고 종교도 좋은데...그런 사상이나 신념이나 뭐 그런 것들을 앞세우면 잘 안 보이던 것들이...그런 선입견이나 나의 필요를 잠깐 내려놓고 바라보면 글들이 꿈틀대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숨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너무 빨리 달리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걸으면 보이는 것처럼요.
산다는 건 무얼까요?
무엇이 우리 마음을 풍족하게 하게 할까요?
어찌하면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때로는 어딘지 모를 낯선 곳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닐까요?
나 아닌 다른 삶 속에서 나를 찾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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